“대학 본관 드높은 지붕 위 구름은 바보 / 내 발바닥의 티눈을 핥아주지 않는다”
김춘수 시인의 시 한 대목이다.
내 기억으로 구름을 가장 만만(?)하게 본 글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인간이 구름을 만만하게 본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인간에게 구름은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구름은 그 생김새 때문에 설화나 신화의 주요 소재였고 문학과 예술의 상상력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에 불과한 구름이 인간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었던 건 손으로 만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구름을 이성적이고 명확하게 분석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반의 일이다.
겨우 그 정도밖에 안됐냐며 웃을지 모르지만 당연한 일이다. 비행기가 발명되기 이전에 구름을 연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비행기 발명의 역사와 같은 궤도를 걸었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가 처음 비행에 성공하기 100여년 전 쯤 구름의 정확한 속성을 진단한 과학자가 있었다. 루크 하워드(1772~1864)라는 영국의 과학자였다. 그의 삶을 소개한 책이 <구름을 사랑한 과학자>(리처드 험블린, 사이언스북스)다.
그의 논문 ‘구름의 분류에 관하여’는 기상학 전체는 물론이고 인류 전체의 상상력에 한 획을 그었다. 하워드는 “구름은 수증기가 상승하면서 응결되어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한 술 더 떠서 그는 구름에도 종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는 외로웠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구름 분류법은 현대 분류법의 기본이 됐다. 그는 구름의 이름을 지으면서 다른 나라 학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라틴어 단어를 사용했다.
라틴어로 머리카락을 뜻하는 권운(Cirrus), 더미 또는 퇴적이라는 뜻의 적운(Cumulus), 층이나 판을 뜻하는 층운(Stratus) 등의 용어는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전 세계가 지금도 하워드가 명명한 이름을 쓰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요즘 들어 인간은 슈퍼컴퓨터와 복잡계 이론을 바탕으로 기상을 연구하고 있지만 구름에 관한한 하워드의 이론에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의 이론은 노년에 접어들어 정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그는 스타가 됐다. 그러나 하워드는 도무지 개인적인 조명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구름이 주목을 받아야지, 왜 내가 주목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곤 했다. 역시 천재의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천재 피카소의 울분
피카소 ‘게르니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파리는 세계의 수도였다. 적어도 예술에서만은 그랬다.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방세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예술가들이 하나 둘 이 언덕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몽마르트르는 예술의 수도가 됐다. 가난했던 예술가들은 서로 의지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작업실과 음식을 나누었다. 친구와 애인은 물론 창녀까지 영감을 주는 모든 대상들이 몽마르트르에서는 예술이 됐다.
단 프랑크의 3권짜리 소설 <보엠>은 20세기 초 몽마르트르를 무대로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실화소설이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한 명의 키 작은 스페인출신 화가가 파리에 온다. ‘파블로 디에고 도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로 후안…’으로 시작하는 무려 열아홉 번이나 띄어쓰기를 해야 할 만큼 긴 이름을 가진 열아홉 살의 청년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서 맨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만을 뽑아 ‘파블로 피카소’라고 불렀다.
파리에 온 피카소는 다른 스페인 출신 화가들의 작업실과 방을 전전하면서 살았다. 훗날 그림으로 엄청난 부를 쌓아 올렸던 피카소도 이 시절 비참한 가난에 허덕였다.
어느 날 한 장사꾼이 피카소를 찾아왔다. 그는 피카소에게 그림을 700프랑에 사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나 싼 값을 부르자 피카소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 피카소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비타협적인 고집을 후회했다. 다음날 자기 발로 찾아온 피카소에게 장사꾼은 또 다시 값을 깎는다.
500프랑을 부른 것이다. 화가 난 피카소는 상점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도저히 방법이 없어 다시 상점을 찾았을 때는 300프랑으로 가격이 내려가 있었다. 결국 피카소는 300프랑에 그림을 팔았다.
그러나 피카소는 꿈까지 팔지는 않았다. 자기가 행하는 예술과 자기가 서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꿈은 결코 팔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예술은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