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1983년은 나의 고교시절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몇 가지 단상들 중 두꺼운 책 두 권이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10대 고등학생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던 책들이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그 시절이었던 1983년에 영어로 출간된 토플러의 인터뷰 내용을 30년 뒤인 지금 한국어로 번역해 내놓은 것이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만큼 긴 시간이 지난 뒤 이 ‘옛 책’을 새삼 들추어본 건 ‘도대체 토플러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서였다. 이런 식의 시간여행은 의외의 지적 인사이트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미래를 보는 눈의 감을 벼려주기도 한다.
30년 전에 토플러는 ‘탈 대량화 경제’를 생각했다. 1983년이면 아직 PC라는 것이 낯설었던 시절. 그때 토플러는 컴퓨터를 활용한 짧은 수명주기의 개별 고객 맞춤형 대량생산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 하에서의 상품들은 수명 주기가 짧고 개별 고객들에게 특화되어 있을 텐데, 이 같은 생산방식은 컴퓨터 및 컴퓨터를 활용한 생산방식이 발전하면서 가능해질 것입니다. 탈 대량 생산방식 하에서는 수많은 부품들이 개별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합되면서 최종 생산품의 종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30p)
앞으로 개별 고객들에게 특화된 상품을 싸게 공급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전망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하지 않은가. 그때 토플러가 이야기했던 ‘전자 오두막(Electronic Cottage)’도 눈에 띈다. 정보혁명으로 인한 재택근무다.
“전자 오두막에서 일하게 되는 사람들은 지식근로자들(Sophisticated Workers)이 될 거라는 점 말입니다. 그들은 중세시대의 농노들처럼 단순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영리한 사람들이고, 퍼스널 컴퓨터와 영상장치, 통신장비 등을 이용해 새로운 유형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유형의 집단행동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전자식 파업’ 같은 집단행동을 보게 될 수도 있죠. 저는 오히려 미래 사회에서 사무실이나 공장에 남겨질 사람들의 근로조건이 더 걱정됩니다.”(46p)
그때 이미 토플러는 불과 몇 년 전 우리 곁으로 다가온 ‘새로운 유형의 네트워크’를 이야기했다. 토플러는 또 ‘창의성이 중시되는 노동’도 이야기했다.
“제2의 물결 경제에서는 노동자들을 더 많이 땀 흘리게 만드는 기업들이 더 높은 수익성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3의 물결 경제에서는 그와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땀 흘리면서 더 많이 일하는 게 아니라 영리하게 일해야 성공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성공법칙이죠. 이제 땀은 예전만큼 많은 것을 보상해주지 않습니다.”(65p)
요즘 우리가 말하는 ‘스마트 워킹’이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토플러가 30년 전에 한 ‘오늘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는 어떻게 그런 미래를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토플러라는 사람 개인을 파악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진짜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젊은 시절 5년 동안 공장에서 천공 프레스를 돌리는 등 노동자로 일했던 것, 그리고 노동계 언론사의 기자로 시작해 프리랜서 잡지 기자, 신문사의 백악관 담당 기자, 포춘지 기자로 일하며 자신을 ‘단련’했던 것. 토플러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표현했다.
“저는 제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훨씬 전부터 글을 쓰고 또 썼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과정 그 자체가 저를 변화시켜주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면 생각이 분명해지고 저의 시간과 생활이 정돈됩니다.”(34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