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20년 내에 중국은 미국의 친구가 될까,아니면 적이 될까?’
외환위기가 막 터졌던 무렵인 1998년 미국 워싱턴DC의 한 대학에서 연수를 한 적이 있다. 수도라서 그런지 중국의 정치와 경제, 외교 안보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자주 열렸다. 인민해방군 정복을 차려입은 군 장성이 발표자로 등장한 적도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구제금융을 토론하는 자리도 있었지만 중국 쪽에 훨씬 많은 청중이 몰렸다. 꽤 시일이 흘렀지만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미국인들은 중국을 잠재력 라이벌이 아니라 현존하는 라이벌로 꼽고 대응방안을 찾고 있었다. 글로벌 슈퍼파워로서 ‘세계 경영’을 하는 미국 입장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이 미국에 도움이 될지, 위협이 될지는 최대 관심사일 수 밖에 없었다.
여러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은 한쪽으로 모아졌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내에는 친구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이 잠정 결론이었다. 막 경제 성장 궤도에 접어든 중국이 미소 냉전체제 붕괴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우뚝 선 미국에 맞서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만일 미중 간에 외교적 마찰이 심해진다면, 중국에 이해관계가 많이 걸려 있는 미국 글로벌 기업들이 나서서 미국 의회를 말리는 쪽으로 나설 것이라는 주장도 곁들여졌다.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이익을 위해 로비스트를 자처할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10년이 넘은 시점에서 옛 얘기를 꺼내는 것은 지금 똑같은 질문을 던져볼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1990년대 말 미국인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중국은 치고 올라왔다. 아마도 20~30년 앞당겨졌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 10월 세계지식포럼에서 유라시아 그룹의 데이비드 고든 리서치센터장은 “시진핑이 집권하고 첫 6개월 동안 굉장히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변혁기를 맞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자국주의를 강조하고 다른 나라와 갈등을 만들어 내부 불안을 다스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 중국은 지난 10년은 좋은 이웃이었지만, 앞으로 10년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방 전문가들과 서방 언론이 갖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을 대변한다. 서방 시각으로만 봐서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지난 20여년간 서방 쪽 예측은 번번이, 여지없이 빗나갔다.
중국은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독특한 측면이 많다. 중국식 사회주의 속에 ‘국가 자본주의’를 적절하게 가동한다.일당 독재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지만, 공산당이 주도하는 리더그룹이 결정하면 행정조직 말단까지 그대로 전달돼 시행된다. 글로벌 위기 때 경기 부양을 위해 시행한 가전하향 자동차하향이 좋은 사례다.
토지가 국유라는 점,공기업 중심으로 돼 있는 게 위기가 닥쳤을 때 정책을 펴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지역 개발사업이나 부동산 정책이 쉽다. 공기업 지분을 외국이나 증시에 내다 팔아 재원조달을 하기 쉬운 구조다.
3조50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는 ‘경제적 핵무기’나 다름없다. 들고 있는 것만으로 위력을 발휘한다.
관료주의와 공기업 부패, 빈부격차, 지역 간 격차, 언론 자유의 한계 등은 늘 지적되고 있다. 서구적 관점이나 잣대가 아니더라도 중국의 내재적 위험요인이다. 하지만 더 잘 살게 되는 쪽으로 국가가 움직이고 있다면 중국인들이 반정부 투쟁에 나설리 만무한다.
앞으로 10여년간 쾌속 항진하기는 힘들지라도 순항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때론 큰 파도를 만나고,태풍이 몰아칠지라도 중국이 헤쳐나갈 방책과 실탄이 넉넉한 편이다.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는 “중국은 중국인들의 눈으로 봐야 잘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중화사상이 근대 개혁의 걸림돌이었지만 중국의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이자 사상적인 방화벽”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식 대안’ 이 잘 먹혀들 것으로 본다. 고든 센터장과 다른 시각이다.
최근 중국이 영토분쟁에서 보여준 중국 네티즌이나 국민들의 분노를 볼 때 중국이 국가주의적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부가 적절하게 통제한다면, 다가올 10년 동안은 주변국들과 선린우호 관계 쪽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넘어 중국과 ‘연대’해야 하는 입장이다. 좌고우면이 아니라 정면 대응이 상책이다. ‘친중파’들은 그들대로, ‘친미파’들은 또 그들대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네트워크를 확대 재생산하면 된다. 한국은 강대국 틈에 끼어 스스로 중심을 잡고 나아가야 하는 게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