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여러 기사 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결혼 지지’ 입장을 밝혔다는 게 가장 쇼킹했다. 미국의 동성 결혼 찬성률이 50%가 넘는다지만 대통령의 입에서 동성결혼 지지입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보적 입장이란 관점에서 오바마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논평도 나왔으나, 모든 성적 터부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을 하는 필자는 진보적 개념이 모자라서인지 왜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가 민감한 동성애 문제를 건드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몇 해 전 올리버 스톤이라는 할리우드의 거장이 영웅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를 영화화하면서 동성애와 관련된 알렉산더의 인간적 측면을 조명하려다가 영웅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일이 있었다. 세계 최초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3개 대륙에 걸친 제국과 헬레니즘 문명을 성립시킨 알렉산더 대왕을 마더 콤플렉스가 있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무시하며, 동성 연인 헤파이스티온을 생의 전부인양 살아가는 것처럼 그려 위대한 알렉산더를 한 단계 아래로 끌어내린 듯했다. 이 영화는 개봉 직후 평단으로부터 거의 재앙에 가까운 혹평을 받고 흥행에서도 참패했다. 그리스에선 올리버 스톤 감독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 정도였다.
알렉산더와 헤파이스티온 간의 동성애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려면 당시 분위기를 알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남성 간의 동성애가 만연했을 뿐 아니라 찬미의 대상이었다. 속칭 플라토닉 러브는 단순한 정신적 사랑이 아니다. 플라톤이 말한 가장 이상적 사랑인 필리아(Philia)는 남성끼리 하는 정신적 사랑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 역시 아내와 자식이 있었지만 제자 겸 동성 연인 알키비아데스가 있었다. 그럼에도 영화에서는 알렉산더의 동성애를 보편적 사랑이 아닌 모자간 갈등이 빚어낸 일탈의 창구로 해석해 그의 대제국 건설과 정책 결정이 마더 콤플렉스와 동성애로부터 나온 것으로 지나치게 설정했다.
다시 오바마로 돌아와 실업증가와 경제악화라는 벼랑에 몰린 현시점에 대선을 앞둔 지도자로서 동성애를 꺼낸 것은 절대 영리한 것은 아니다. 물론 오바마는 이를 개인적 지지라고 밝혔다. 이런 입장 정리는 대선 이슈가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 공격받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오바마의 동성결혼 지지 발표 이후 그의 지지도가 공화당 대선후보 롬니에게 3%포인트 뒤진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 흑인교회 목회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공식 지지 철회”를 밝히거나 “11월 대선에서 오바마가 질 것”이라고 대담한 예측을 내놓은 이도 있었다.
스톤월 폭동으로 불붙은 동성애자 인권운동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역사를 짚어보자.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분수령은 1969년 6월 27일부터 5일 동안 벌어진 ‘스톤월 폭동’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당시 경찰이 뉴욕시 그린위치 빌리지의 무허가 동성애자 나이트클럽, 스톤월을 단속하자 손님으로 앉아있던 동생애자들이 경찰에 격하게 저항했다. 경찰만 보면 움츠러들던 그들이 기존 통념과 가치관에 맹렬히 항거하면서 오랫동안 금기시 되던 동성애 논쟁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1974년에는 동성애에 관한 일반인의 시각을 크게 전환케 한 일대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공식적으로 동성애를 ‘정신병’이 아닌 ‘정상’이라고 밝힌 것이다. 중세 이후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화형을 당하고 성도착자로 간주되어 온갖 차별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후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더욱 활발해져 1982년 제1회 게이 올림픽대회가 열렸고, 제4회 대회에선 1988년 서울 올림픽 다이빙 부분 금메달 수상자였던 루가니스가 시범경기에 참석해 자신이 게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제2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에이즈의 확산으로 주춤해졌다. 루가니스도 에이즈에 감염됐다.
주춤하던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클린턴 행정부의 진보노선으로 다시 활기를 찾았다. 클린턴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이전부터 게이의 군 입대를 보장하겠다고 밝혔고, 실제 군부와 공화당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행동규제를 조건으로 동성애자의 군 입대를 허용했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나라다. 핀란드, 네덜란드, 덴마크를 비롯한 일부 유럽국가가 동성애자의 결혼을 인정하자 미국은 이런 기류가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법적인 결합이다’라는 내용의 긴급 법제정 조치를 취했다. 동성애자들이 동성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결혼을 요구하는 만일의 사태를 서둘러 막아버린 것이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 서울 시민 중 누군가는 성소수자입니다.”
오바마가 동성애자 결혼지지를 밝힐 즈음 대한민국 서울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 5월 10일 종로구 원남동과 혜화동 등 두 곳에 있는 종로구청 광고 게시판에 위의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공공기관이 동성애 광고를 허용한 건 국내에서 처음이다. 동성애 단체와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는 편견을 없애는 첫걸음이라며 쌍수를 들었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반(反)동성애 단체들은 “사회 법질서를 어지럽히고 병들게 하는 동성애를 ‘인권’이란 이름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며 반발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4일엔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권익에 관심을 갖고 어려움을 경청하여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자 기독교와 보수단체가 박 시장을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 등 무려 230여 개 시민단체들은 “인권이란 명분으로 포장해 그릇된 성 인식을 퍼뜨리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연예계에선 이전부터 동성애가 꾸준히 화제가 됐다. 2000년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같은 시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 하리수 씨의 등장으로 ‘성소수자’란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이외에도 2005년 영화 <왕의 남자>가 크게 흥행하면서 영화 속 동성애자를 연기한 배우 이준기가 스타덤에 올랐고, 2008년 영화 <쌍화점>에서도 동성애를 다뤘다. 2010년엔 지상파 방송에서도 남성 간 사랑을 그린 내용<인생은 아름다워>가 주말 가족드라마로 제작돼 방영되기로 했다.
이제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가 됐다. 대학에서는 동성애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고 동성애자 모임 인터넷 사이트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제는 동성애자가 취업·승진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처한다면 이는 소수자 인권보호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럼에도 기존 결혼제도까지 바꾸는 건 정치·종교·철학·생물학적으로 복잡한 수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의료보험, 세제 등의 혼선과 이를 악용한 허위 동성결혼 등 현실적 준비도 필요하다. 동성애 인정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