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았던 19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각자 나름대로 승패 원인을 따지고, 논공행상이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른 쪽에서는 짙은 아쉬움에 빠져 드는가 싶더니, 어느덧 12월 대선을 향해 다음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4·11 총선은 지역주의와 이념 대결 그리고 세대 차이라는 구도가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되새겨보게 했다. 젊은 세대들이 인물 중심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새로 나타나, 뿌리깊은 지역주의가 엷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밑바닥을 흐르는 변화의 흐름은 감지됐지만 대세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유권자들은 늘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공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인물에게 표를 던진다. 다만 희생의 시효가 이미 만료됐다고 여겨지면 민심은 야멸차게 돌아선다. 때로는 허망한 권세를 믿고 떵떵거리던 정치인들을 족집게처럼 솎아내기도 한다.
한국 정치사는 4·19혁명을 거쳐 6·3세대, 386(7080세대)으로 민주화를 향한 여정에서 헌신한 이들이 단계적으로 핵심 그룹의 한 축을 맡아 왔다. 현재 다수를 차지하는 7080세대들은 민의에 의해 ‘옥석이 가려지는 시점’에 와 있다. 386에서 486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하며 정치권의 주축을 형성했지만 그들은 화려했던 민주화투쟁의 과거 경력에만 기대어서는 자리를 지키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386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기업인과 샐러리맨들은 그들이 몸을 던져 투쟁할 때 ‘소시민적 삶’에 안주하려 했다는 자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들의 마음 속 부채의식이 386의 정치적 원동력이었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고, 기성 정치인을 닮아가는 그들에게서 더 이상 참신함은 찾기 힘들어졌다. 민주화가 ‘완성된’ 나라에서 ‘각을 세우는’ 투쟁적 정치 행태는 40대 후반에서 50대에 접어든 기성세대이자 기득권층의 일원이 된 이들 대다수에게 부담스러움으로 더 크게 다가온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상대가 취약하기도 했지만 한국사회가 안정화되고 실용주의로 이행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CEO 대통령,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이 먹혀 들었던 배경이다.
지난 총선에서 새단장을 한 새누리당이 20대 벤처기업가를 비상대책위원에, 20대 여성을 야권 대선후보에 맞설 지역구 의원 후보에 내세운 것은 이례적이었다. 일자리와 사회적 입지에서 고심하는 젊은 층에 어필하려는 시도였다. ‘안철수 현상’의 대응방안이기도 했다.
최루탄이 난무하던 민주화 시위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많지 않은 학생들이 모여 등록금 인하 투쟁을 하는 게 요즘 대학 캠퍼스의 풍경이다. 대학생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취업, 즉 돈 문제이고 경제적 이해관계다.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차지하는 시기에 태어난 신세대가 중심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화두가 궁금해진다. 신세대의 부모세대, 즉 기성세대는 피땀 흘려 노력한다면 무언가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을 체득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근성이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사회 전반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양극화를 낳았다. 외환위기 이후 희생자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여기에 새로운 정치적 세력의 등장을 암시하는 답이 있을 것 같다. 취업에 실패했거나 일자리를 잡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2030 젊은 세대들이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취업을 하든 창업을 하든, 좋은 시절이었던 7080년대 고도 성장기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신세대가 결집해 불만을 터뜨린다면 ‘투쟁’의 대상과 목표는 무엇일까. 경제와 복지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나 남북관계를 보는 시각이 충돌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공적인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의 대결이라는 한계가 있다. 모두가 공감하는 희생으로 인정받기는 힘들다.
신세대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고, 사회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어떤 지향점으로 수렴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결핍을 별로 몰랐고, 사고의 유연성을 가졌다. 어려서부터 외국 문화를 받아들여 글로벌 마인드가 체화돼 있다. 그들이 만들어 낼 ‘새로운 대한민국’은 달라질 게 분명하다. 기성세대는 신세대가 자유롭고 발랄하게 창의와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기다리는 게 답인 것 같다. 2020년이면 모든 기성세대는 이미 힘을 잃었을 것이니 적응하는 일만 남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