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다. 절기상으로 봄의 문 앞이다. 똑똑, 문을 두드리면 봄이 함빡 반가운 표정으로 문을 열어줄까. 아니, 아직 창밖은 겨울이다. 바람은 가로수들의 가지가 꺾이도록 불어대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이 얼어 반들거리는 하늘은 녹을 기미가 없다. 그럼 봄은 어디서 오는가.
오래된 노래 가사처럼 우리들 마음속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오래된 노래, 라고 중얼거려 본다. 건물들 사이의 좁은 하늘로 새들이 날아간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을 무렵, 질퍽거리는 길을 따라온 봄은 매번 달짝지근하고 시끄러웠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학교 앞, 얼음이 녹은 길가에 달고나 장수나 뽑기 장수, 또는 싸구려 책장수들이 모여 좌판을 벌이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이들의 가난한 주머니를 노렸고 가난한 아이들은 무엇이든 구경거리가 필요했다. 당연히 사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더 많은 풍경이었지만 매해 봄마다 돈 없는 우리들은 학교 앞에 벌인 좌판 앞을 하릴없이 서성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반복되는 봄날 속에서 간절히 원한다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간절히 원했던 건 종이 상자 속에 담긴 봄날의 병아리였다. 나는 그때 병아리를 갖고 싶었다. 부화되자마자 길가로 나온 녀석들이었다. 슬쩍 만져보았고 잠시 손에 쥐어보기도 했다.
만졌지만 잘 만져지지 않았고 손에 쥐었지만 부피감이 거의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눈앞에서 삐약거리는 그것들이 그토록 없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무게 없이 존재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면 나에게는 병아리가 단연 최고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들을 구경할 능력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돈이 없어서 슬프다고 생각했다.
내 가난을 원망하며 종이 상자 앞에 앉아 병아리들을 바라보았다. 보송보송한 솜털을 바라보았고 좁쌀만 한 녀석들의 콧등을 바라보았고 또 제각각 미묘하게 다른 녀석들의 생김새를 바라보았고 날개가 돋을 자리를 눈으로 더듬어 보았다. 나는 점점 종이 상자 바깥으로 구출해낼 내 병아리를 찾기 시작했고 드디어 내가 만든 조건에 부합한 병아리를 찾아냈다. 말하자면, 내가 만들어낸 내 첫 이상형인 셈이었다.
병아리를 살 수 있는 방법에는 쉽고 빠른 방법과 귀찮고 시간을 필요로 하는 방법이 있었다. 이성적인 판단이나 도덕적 잣대로 스스로의 행동을 규제하기에 나는 어렵고 급했다. 물론 병아리 장수가 곧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얘기만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쯤은 더 망설였을 테지만 말이다. 나는 쉽고 빠르게 술에 취한 아버지의 바지에서 동전을 꺼냈다.
영악하게도 ‘주웠다’는 말까지 준비해 둔 참이었다. ‘주웠다.’ 이토록 쉽고 간단하게 써먹을 수 있는 단어가 있다니. 나는 간절히 원하는 걸 갖는 것이 예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병아리는 이제 내 것이었다.
그날 나는 병아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백하자면, 병아리가 어느 날 날개를 활짝 펴고 날기를 바랐던 것 같다.
병아리가 날 수 없는 슬픈 내력을 가진 조류라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병아리는 어쩌면, 잘 키우면, 아마도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정말 노란색 날개를 활짝 펴고 눈부신 흰 가슴털을 휘날리며 높이 멀리 날아오르기를, 바랐다. 봄바람이 부는 언덕을 넘어 푸른 물이 오르는 나무들 위를 날아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쪽을 향해서,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행복했다. 물론 아주 짧은 행복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시끄러웠고 더러웠고 약한 게 문제였다. 내가 춥고 더럽고 좁은 상자 안에서 구출해낸 병아리는 따뜻한 방안 책상 밑에서 모이도 먹지 않고 밤새 삐약거렸다.
처음 이 삼일 동안에는 밤중에도 몇 번이나 일어나 녀석을 살폈다. 이런 내 성의를 줄곧 모르쇠로 일관하는 녀석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비록 쉽고 빠른 방법을 통해 얻게 된 것이기는 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내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내 것이었던 그 병아리가 죽는 데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녀석은 모이도 먹지 않고 연달아 물똥만 죽죽 싸다가 어느 봄날 조는 듯, 잠든 듯 구석에 앉아서 영영 눈을 뜨지 않았다.
그때 내가 울었는지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어느 사이엔가 나는 아마 그 녀석이 날 거라는 희망을 버렸던 모양이다. 녀석은 화단에 묻혔다. 봄이었지만 땅을 파는 일이 쉽지 않았다. 봄은 생각보다 싸늘했다. 병아리가 다 병아리지 뭐. 나는 그렇게 나를 위로했을까.
그러고도 나는 꽤 오랫동안 봄마다 병아리를 샀다. 물론 한 번도 내가 샀던 병아리가 날았던 적은 없다. 모두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병아리들을 나는 언 땅에 묻어 주기를 반복했다.
왜 그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지금도 그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아마 처음 느꼈던 간절한 마음에 충실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 따위였을 수도 있다.
그저 분명한 건 내가 매해 병아리를 사면서 꾼 꿈이 ‘이번에는 꼭’ 날 수 있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내 병아리가 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때 날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봄이 아니었으면, 봄마다 학교 앞으로 찾아오던 그 병아리들이 아니었으면, 결코 꾸지 못할 꿈이었다.
웅크리고 있던 나무의 눈들이 벌어지고 꽃다발을 든 졸업생과 신입생이 거리를 오가는 2월이다.
봄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는 나는 다만 좁은 하늘 사이로 새들이 날아가는 것을 볼 뿐이다.
얼어붙은 하늘 위를 날아가는 그들의 행로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동안에는, ‘난다’는 행위를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에는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 뿐이다. 겨울을 지난 ‘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니까.
더 이상 날기를 꿈꾸지 않는다는 말은 반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꿈꾸기를 포기할 수 없고 그 꿈은 해마다 찾아오는 병아리들처럼 우리 곁을 서성거릴 테니까 말이다. 병아리들조차 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계절이다. 또한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동안에는 언제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