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겪으며 두 개의 높은 벽이 만들어졌다. 하나는 국제사회의 규제 장벽이다.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결의안 1718호가 부활되고 더 강력한 1874호 채택을 가져와 북한이 타국과 갖는 대부분의 거래가 규제 대상이 되었다.
또 하나는 2010년의 천안함 피폭,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우리 국민의 마음에 생긴 장벽이다. 우리 정부가 큰 시야와 통일철학을 가지고 남북관계 개선을 향해 나아간다고 해도 이 장벽을 넘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협상해야 할 상대방 또한 여전히 만만하지 않다.
어느 방향으로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그들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이제 핑계할 거리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국제사회나 우리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금강산 및 개성관광사업 재개나 5·24조치 이전에 진행되었던 사업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우리 정부의 의지와 선언만으로도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 당국도 따져야 할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현재 19억 달러에 이르는 남북교역액이 5·24조치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약 30억 달러를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무역총액이 2010년 41억 달러임을 감안할 때 북한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규모다.
다음 단계에서 고려해 볼 수 있는 남북협력사업은 몇 가지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물 제공 방식으로 물자가 투입되고, 우리 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한다. 개성공단은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 개성공단이 남한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중소기업 진출의 한 통로로서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국제사회가 동참할 수 있는 사업이면서 장기적으로는 통일 과정에 기여하는 사업이 되어야 한다. 이는 남북관계가 복원된다고 하더라도 쌍방 간에 무슨 일이 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여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군사적 문제가 발생하면 경제논리는 어느덧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은 복잡하지만 이러한 리스크를 분산해 줄 것이다.
북한 또한 체제 유지 등을 고려하여 협력사업의 우선순위를 따진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을 참조하면 협력사업 발굴에 도움이 된다.
경제분야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된 경공업분야는 남북관계만 복원된다면 협력사업을 넓혀갈 여지가 많다. 다음으로 언급된 분야는 농업부문이다. 이는 군용으로 전용할 수 없는 방식의 식량 지원, 비료 공급, 농약 제공, 양어장 설치 등으로 협력해 나갈 수 있다.
다음으로 언급된 내용은 인민경제 선행부문, 기초공업부문이다. 그 가운데서 북한 당국이 절실히 개선되기를 원하는 부문이 전력공업 육성이다. 전력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산업가동률이 현격히 낮아진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전력사업에 협력하기 위해선 북핵문제가 진전되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밖의 선행부문이나 기초공업부문을 육성하는 것도 미국이나 유엔의 규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철도 수송 능력을 높이기 위한 협력 가능성은 높다고 판단된다. 개성공단사업을 하면서 남북철도는 이미 연결된 상태이다. 하지만 북한 내 철로 및 기반의 노후화로 평균속도가 30∼40㎞/h에 불과하여 정상적인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경의선 전구간의 개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경의선 개보수를 통한 진정한 의미의 중국횡단철도(TCR) 연결로 인해 남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는 막대하다.
한반도에서 유럽까지 물류 운송체계가 완성되면 북한은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보수 비용은 약 1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나 우리가 얻는 물류비용 절감, 운임수입, 산업연관효과 등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10년 안에 이 투입자금 대비 2배 이상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북한은 공사 과정에서 노동자 임금 수입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북한 내 통과 물동량 증가로 인한 물류운임 수입을 얻게 될 것이고,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업은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 외에 정치적·사회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본 사업을 통한 남북 간 신뢰 구축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이며, 또한 인적·문화 교류를 통한 한민족 동질감 회복에도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더 나아가 향후 한반도 통합시대에 경제적·사회적 통일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신뢰가 형성되면 여러 부문에서 협력사업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향후 예상할 수 있는 우선순위 협력가능사업을 열거해 본다. 원산과 나선지역을 잇는 원라선 개보수, 주요 도로 개보수 사업, 항만 확장사업, 북창 및 평양 화력발전소의 증설 및 개보수 사업 등을 들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등과 같은 지역개발사업인 황금평특구 및 나선특구 개발사업 등에 우리 기업의 진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 활발히 논의된 러시아횡단철도사업, 한·러 가스관사업도 한·중·러·일 다자국간 협력사업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대규모 사업이 전개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책적 결정만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국내외의 장벽만을 생각하며 현재에 머물다 보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북한의 실체를 분명히 인식하고, 방향성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해야만 국제사회나 국민들의 장벽을 서서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세월의 아픔과 경험이 남북관계 개선에 디딤돌이 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