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세대는 요즘 착잡하다. 각자 자리는 달랐지만 산업화의 한 축으로,그리고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 체제가 자리잡아 가는 것으로 여겼다. 현재 한국의 주축 세력인 그들은 뭔가 방향을 잘못 잡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리둥절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해방 직후에서 한국전쟁까지 첫 격동기를 거쳐 ‘판을 바꿨던 시기’는 지난 80년대였다. ‘운동권’에 몸담은 이들은 길거리에서,현장에서 몸을 던져 투쟁했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아 취업한 이들은 운동가들의 희생에 마음 한 켠 미안함을 담고 응원을 마다하지 않았다.민주화라는 시대적 공감대가 있었다. 6.29 당시 쏟아져 나온 넥타이 부대는 양쪽이 접점은 이룬 클라이맥스였다.
90년대 이후 한국은 민주화의 굳건한 토대 위에 무한 경쟁의 시장경제를 축으로 맹렬히 달려온 끝에 여러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선두권팀 첼시는 푸른색 삼성 로고가 선명한 유니폼을 달고 뛴다.현대자동차는 월드컵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한류와 케이팝 열기는 ‘코리아 브랜드’의 힘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 사회에 양극화라는 크나큰 난제를 남겼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1인당 GDP 2만 달러 턱걸이를 거듭해왔다. 이러한 ‘감속 성장’은 투자 부진 속에 청년실업과 조기퇴직을 낳았다. 취업에 실패를 거듭해온 젊은이들은 물론 취업은 했으나 비슷한 일을 하면서 임금 격차가 큰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불만은 쌓여만 간다. 정규직 근로자 중심의 노조는 해법을 내놓지 못한 가운데,특히 고임금 대기업 근로자들과 기업주의 방관에 지쳐가고 있다.시장경제원리로 작동해온 국가경영과 기업경영이 상당한 저항을 맞고 있는 듯 하다.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라는 화두는 이런 맥락에서 세를 얻었다.
80년 정치적 민주화에 이어 한국은 이제 ‘경제적 민주화’ 또는 ‘민주적 경제’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20여년 넘게 축적된 밑바닥 민심은 꿈틀거리는 단계를 넘어 표출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닥쳐온 안철수 신드롬은 이러한 맥락으로 읽혀진다. 박원순 이석연 변호사 같은 시민단체 대표가 기존 정당을 제치고 진보와 보수 양쪽의 ‘장외대표’로 대중의 호응을 받는 색다른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이들의 정치적 참여가 바람직한지 아닌지는 당사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수면 하에 잠겨있는 젊은 세대들의 불만이 새로운 인물을 통해 투영되고 있다. 80년대 아날로그 시대에 젊은이들은 길거리로 진출해 시위대에 직접 합류하거나 마음 속으로 지지하면서 뭉쳤다.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와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를 활용해 의견을 집결하고 있는 셈이다. 80년대엔 민주 대 독재라는 정치적 대립각이 명백했다. 지금은 축적된 부의 분배방식을 둘러싼 경제적 대립이 바탕에 있다. 여기에 공정한 룰의 지배에 대한 입장 차이가 덧붙여 있다. 80년대엔 독재정권이라는 ‘공공의 적’이 명백했지만 지금은 기성세대와 올드보이, 기 득권층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이들이 새로운 정치사회 결사체로 결집할 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신세대의 정치 참여가 새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기존 정치권의 조직과 수적 우위에 함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치적 파워를 재충전하려는 범386세력이 신세대를 끌어들이거나 이들과 연대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안철수 신드롬은 소위 ‘반MB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시적 현상이라는 해석도 있다. 7080을 포함한 기성세대,기득권층이 모르고 지나쳤거나, 알고도 애써 외면하는 사이에 새로운 세력이 크게 세를 불려왔다는 점에 이견은 없다. 다시 격동의 시절이 다가온 것인지 아닌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확 앞당겨진 정치의 계절이 무르익으면서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