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리옹행 테제베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
짧은 영어라서 였을까? 유리창 안에서는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거듭 몸짓 발짓으로 소통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프랑스 파리 중앙역의 알파벳 소문자 i에 동그란 테두리를 두른 만국공통의 인포메이션 창구에서였다. 비교적 깔끔하게 차려입은 6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은 어리숙한 동양인을 외면하는 듯 했다. 자격지심의 속단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10년이 훨씬 지난 일이지만 선명하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달 중순 서울 워커힐에서 열린 12회 세계지식포럼에는 200여 명에 가까운 해외 석학, 글로벌 CEO들이 연사로 한국을 찾았다. 글로벌 위기에서 스마트혁명과 공정사회, 아프리카까지 다양한 이슈들이 다뤄졌다. 물론 유럽 재정위기로 촉발된 위기 국면과 해법, 리더십에 가장 큰 관심이 쏠렸다. 세션에서 논의되는 내용과 시각이 중요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온 서방 연사들의 태도에 호기심이 생겼다. 포럼의 대주제이기도 한 아시아모멘텀, 아시아권의 급부상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유럽연합 무역장관은 당일 아침 워싱턴에서 날라온 한미FTA 비준 소식에 다소 떨떠름한 태도를 보였다. 협상 능력이 떨어지고 인적·물적 자원 동원이 부족해 FTA를 체결하기 어려운 개도국과 중간 크기의 선진국에는 다자무역 체제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솔직한 편에 속했다. 그는 “서양에서 동양으로 힘의 이동은 이미 대세”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소비 시장인 유럽과 미국이 침체되면 중국이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미국 쪽 연사들은 아시아, 특히 중국을 인정하는데 조금 더 진전된 자세를 보였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유럽을 향해 “먼저 은행에 초점을 맞춰 금융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위기를 넘어 의미 있는 성장에 관해 분명한 의지를 가져 달라”고 말했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 패권의 쇠퇴를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중국 등 신흥국의 역할을 주문했다. 지난해 참석했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은 더욱 파격적이었다. 그는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탄 데 대해 ‘서방의 오만’이라고 볼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자에게 “만다린어 잘 하세요?”라고 반문하면서 “내가 20세 전후 나이라면 중국에 살면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겠다”면서 노골적인 ‘중국 편들기’를 서슴지 않았다.
유럽의 지도자들의 체면은 지금 말이 아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어 놓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대체로 그들은 아직 마음 속 깊이 위기에 처한 제 나라와 유럽공동체의 부실이 수용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우리 속담처럼 저력이 있다는 속내를 보였지만 초조함이 조금씩 비춰졌다. 따지고 보면 유럽인들은 근대에 식민지 수탈로 자신들이 일한 것보다 ‘뺏어서’ 부를 축적했다. 물론 산업혁명이라는 큰 물줄기를 먼저 만들어낸 창의성이 힘의 원천이었다. 세계 2차대전 이후에 식민지에서 독립한 개발도상국, 후진국에서 원자재와 노동력을 ‘싼 값’에 사들여 여전히 호사를 누렸다. 대체로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 옛 식민지 연고국가들에서 독재자들과 적당히 작당한 결과였다.
21세기는 또 다른 세기다. 개도국 내에 민족주의가 고조된 영향이지만 이제는 자원을 ‘거의 시장가격’에 사들여올 수밖에 없게 됐다. 서방 선진국의 높은 소비수준은 관성에 따라 이어지고, 복지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필요한 자원과 상품은 ‘더 높은 값’을 치러야 했으니 곳간이 빌 수 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아시아 시대는 그냥 오지는 않을 듯 싶다. 과연 아시안 스탠더드가 어느 정도 먹힐 수 있을까? 민주주의와 법에 의한 통치라는 서방의 잣대를 완벽하게 이행하지 못한다 해도 자체동력이 얼마나 되는지 미지수다. 슈퍼 파워로 우뚝 선 중국의 리더십이 세계인들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 같다. 3~4년 전에 비해 중국 연사들이 국제 컨퍼런스에서 중국어로 자기 입장을 옹호하는데 목청을 높이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