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용인 인근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고,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한 달여쯤 되었다고 합니다. 출퇴근은 다소 불편하지만 가족과 함께 주말다운 주말이라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 했습니다. 현관 마루에 앉아 주변 산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또 행복해 했습니다.
지난 해 봄, 저 역시 이 친구와 함께 용인 인근의 농가들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결국 주저앉았지만 조립식 주택에서부터 한옥까지 시공에 필요한 절차와 견적을 문의하며 우리는 탈서울의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도시생활을 하는 40대 남자 대부분은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굳이 전원생활이 아니라도 서울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들 말합니다. 어린 시절 도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도시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도 그 로망이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이들이라면 아파트가 아닌 마당이 있고 텃밭이 있는 단독주택이라도 좋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서구화되고 현대문명에 길들여져 디지털화 돼 있는데 왜 과거의 아날로그식 삶으로 되돌아가려 하는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또 출퇴근 고생길은 고사하고 단독주택이 사람의 손길을 얼마나 많이 필요로 하는지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어머님 말씀도 다가옵니다. 그래도 시골로, 단독주택으로 가려고만 합니다.
사회학적으로 혹은 심리학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따지는 것은 별반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쫓기듯 살아온 지난 삶과는 달리 미래에 대한 여유로운 희망쯤으로 대신하면 어떨까요. 당장 현실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규격화되지 않은, 최소한 나를 향한 자유로운 삶의 공간을 꿈꾸는 것이라면 또 어떨까요.
불현듯 학창시절 전남 담양의 식영정에서 만났던 조선시대의 문호 송강 정철의 삶이 떠오릅니다. 국어책을 통해 당대를 대표하는 가사문학의 대가로만 알았던 송강의 다른 삶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서인(西人)의 영수로 동인(東人) 세력을 축출한 피비린내 나는 당파싸움의 핵심에 송강이 있었던 겁니다. 권력을 향한 정치인으로서의 삶과 조선시대 최고의 문인으로서의 삶은 결코 오버랩 될 수 없는 두 얼굴이었습니다. 삶의 환경이 만들어낸 각기 다른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서울을 버리고, 직장을 버리고 귀농을 감행한 이들을 만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질적 욕심이 아니라 정신적 욕심이 오히려 더 강해진다고….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용인에 새로운 둥지를 튼 이 친구를 만난 후부터 주말이면 자동차는 1년 전처럼 자꾸 용인 쪽을 향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