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시위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튀니지에서 시작한 민중봉기가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튀니지의 지네 엘아바디네 벤알리 종신대통령과 이집트의 4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축출됐다. 현재 리비아에서는 유혈 내전이 진행 중이다. 바레인과 예멘이 다음 차례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민중봉기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슬람 근·현대 역사에서 민주화 시위는 드물다. 이들의 민주화 시위는 독재정권의 종말을 그대로 보여준다. 역사 발전의 길은 자유의 길이라는 진리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의 지난 반세기 역사도 되돌아본다. 한국의 건국세력과 산업화 세력은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조국을 선진국의 문턱까지 끌어올렸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이후 경제사회지표들은 한국의 성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1961년 이집트의 1인당 국민소득(GDP)은 151달러였다. 당시 한국은 91달러였다. 이집트의 형편이 약간 나았다. 50년 뒤인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1만9830달러로 이집트의 2070달러보다 거의 10배 규모다. 우리는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남들은 산업화는 몰라도 민주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건국 이후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까지 최단기간에 소망스러운 결과를 이루어낸 역사는 경이롭다. 오천년 역사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총명하며 가장 축복받은 세대가 지금 한국에 살고 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지금의 모습은 지난 시절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모든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수많은 희생, 위기, 좌절, 배반을 딛고 전진한 결과들이다.
이중 산업화의 성공을 여는 방아쇠 장치(triggering device)로서 박정희 정권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은 독재와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했다. 정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박 정권 시절 사회구성원들이 소망스럽게 여기는 가치배분의 중심에는 국가가 있다. 사회적인 갈등을 국가가 관리했다. 노동자, 농민, 중소기업의 불만은 국가가 관리했다. 기업들의 위험조차 관리했다. 국가는 위험부담을 덜어주고 방향과 전략을 제시했다. 정책금융을 통해 기업에게 특혜를 줬다. 이것이 당시의 산업정책이고 국가정책이다. 관주도의 불균형 성장모델이다. 부작용도 적지 않아 민주는 더디고 늦어졌다. 사회의 양극화는 물론 인간의 존엄과 자유도 침해됐다.
이와 같은 국가의 중심에 박정희라는 개인이 있다. 무자본, 무기술, 무자원, 영토대비 인구과다, 국토면적의 협소함이라는 최악의 조건을 치열하게 극복했다. 보릿고개를 없애겠다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시대정신과 국가관리 철학에 충실했다. 18년 통치기간 동안 개인적인 치부보다는 공동체의 파이를 키우는데 매진했다. 전략의 효율적 설정은 물론 전술의 일관성과 인사관리도 돋보인다. 박정희라는 리더는 현재 홍역을 앓고 있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리더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바람직한 리더십을 다시 생각하고 소망하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