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광산의 카나리아 (Canaries in a coal mine)
입력 : 2011.06.09 16:01:02
수정 : 2011.10.06 18:00:33
목재소의 불은 거침없이 타올랐습니다. 이웃동네 사람들까지 떼거지로 몰려나와 목재소 옆을 흐르는 개울의 물을 퍼 나르고, 소방차에서는 쉼 없이 살수가 이뤄졌지만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습니다. 양철 지붕을 제외하곤 모든 게 마른 나무뿐이었던 목재소는 꼬박 반나절 동안 시뻘건 불기둥을 하늘로 쏘아 올렸습니다.
멀지 않은 야산 능선에는 전깃줄 위의 참새 떼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팔짱을 낀 채 불구경을 하며 이런저런 말들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걱정만 할 뿐 어느 누구도 야산을 내려가지는 않았습니다. 개울물을 퍼 나르고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들에게 목재소 화재는 간만에 보는 흥미로운 구경거리일 뿐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 역시 친구들과 능선에서 시꺼멓게 잿더미로 변해가는 목재소를 바라보는 구경꾼이었습니다. 보탠다면 어린 마음에도 불에 타는 목재소에서 멀지 않은 ‘우리 집은 괜찮겠지’ 하는 걱정이 전부였습니다.
지난 3월11일, 이웃나라 일본의 대지진을 접하며 어린 시절의 목재소 화재가 떠올랐습니다. 능선에서 팔짱을 끼고 불구경하듯이 이런저런 말들을 쉽게 쏟아내는 이들도 볼 수 있었고, 1면 톱기사로 반사이익 운운하는 신문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다른 나라가 아닌 일본의 대지진이라는 점에서 속으로 웃었던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진에 이은 쓰나미, 화산폭발, 원자력 방사능 유출 등으로 이어진 자연과 과학의 종합 패키지 재해는 인간의 얄팍한 심술에 죄의식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웃의 슬픔을 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광산의 카나리아(Canaries in a coal mine)’입니다. 좋게 해석하면 전조(前兆)현상이고, 달리 해석하면 남의 불행을 통해 나의 안위를 챙기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 갱도에 들어가는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앞세웠다고 합니다. 카나리아는 유독가스에 유난히 민감한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날아가던 카나리아가 죽었다면 갱도에는 유독가스가 있다는 반증입니다. 광부들이 갱도에 들어가지 않을 것은 당연합니다.
일본의 참사를 접하며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그렇다 하더라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경계심이 전 세계적으로 표면화되고 있는 것 역시 광산의 카나리아 효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불행으로 재현되지 않도록 단속에 나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한 동안 떠들썩하다 시간이 지나면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또 낮아지겠지요. 원전의 경우 체르노빌 때도 그랬으니까요. 이기(利器)와 흉기(凶器)이라는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무시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일본의 참사가 갱도로 들어간 카나리아의 무의미한 죽음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