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스마트폰 유영(游泳)’은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건만, 어젯밤도 스마트폰 알고리즘에 당했다. 잠깐 들여다 본 유튜브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40분이 흘렀다. 덕분에 얻은 건 찰나의 도파민과 시력 감퇴, 그리고 일자목.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도파민네이션’의 저자 애나 렘키교수는 “스마트폰은 컴퓨터 세대에게 쉴 새 없이 디지털 도파민을 전달하는 현대판 피하 주사침이 됐다. 우리는 도파민, 자본주의, 디지털이 결합된 탐닉의 사회, 도파민네이션에 살고 있다. 이제 누구도 중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역설한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를 통해 짧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계속해서 새롭고 중독적인 쾌감을 추구하는 세태 속에 ‘도파밍’이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과 게임에서 아이템을 수집하는 파밍(farming)을 합친 도파밍은 마약·알코올 중독처럼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하고 우울증, ADHD 등 정신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그리고 그 영향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에겐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디지털 디톡스’ 정책을 도입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프랑스는 이미 2018년에 교내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디톡스법’을 만들었고 미국 뉴욕시는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위해를 끼친다며 틱톡, 인스타그램 등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숏폼 플랫폼들이 수익 확대를 위해 의도적으로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유해한 알고리즘을 설계했다는 이유다. 중국은 18세 미만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하루 최대 2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 평균 깨어있는 시간의 1/3을 스마트폰에 쓰는 ‘스마트폰 과소비국’ 대한민국은 정작 정확한 실태조사도, 특별한 대응책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파민 중독 세대로 알려진 Z세대, 이른바 ‘젠지족’ 사이에 얼마 전부터 불고 있는 ‘독파민’(독서와 도파민을 합친 신조어) 열풍이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에 지친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최애’(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인플루언서)가 즐겨 읽는 책 정보를 SNS로 공유하고 따라 읽으면서 독서모임, 필사 등 경험을 나누며 즐거움을 추구하는 트렌드다. 이들에게 독서는 희소하고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날로그적이고 올드한 활자, 텍스트가 ‘디지털 네이티브’인 젠지족에겐 오히려 신선하고 힙하게 읽힌다. 수십만원씩 회비를 내고 독후감을 써야만 참여할 수 있는 독서모임 ‘트레바리’가 성업 중이고, 필사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6월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엔 15만 명이 몰려 사상 최대 관람객을 기록하기도 했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기술의 발전이 주는 편리함은 누리되, 도파밍에 매몰되지 않고 나만의 속도에 맞게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균형감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가을, ‘도파밍’ 말고 ‘독파민’에 빠져보자. 최애 인플루언서를 따라서 읽든, SNS 인증샷용으로 읽든, 젠지가 아니면 어떤가.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9호 (2024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