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오거스타내셔널 여자아마추어 대회에서 애나 데이비스라는 미국 선수가 늑장 플레이에 따른 벌타로 컷 탈락해 주목을 끌었다.
그녀는 1·2라운드 합계 4오버파 148타로 컷 통과 기준에 1타 모자라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녀의 컷 탈락이 주목되는 이유는 퍼트 늑장 플레이로 1벌타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자 아마추어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 둘째 날 경기위원회는 17번 홀 퍼트 과정에서 데이비스에게 늑장 플레이를 이유로 벌타를 부과했다. 원래 파를 잡았는데 1벌타를 받아 보기로 내려앉자 한 타 차이로 컷 탈락했다. 2년 만에 정상을 노리던 꿈이 늑장 퍼트로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그린에서도 늑장 플레이를 하면 벌타 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골퍼는 흔치 않다. 공을 홀에 집어 넣겠다고 집중한 플레이어에게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해 더운 날씨에도 꾹 참는다.
골프 규칙에 ‘플레이어가 홀에서 플레이하는 동안이나 홀과 홀 사이에서 플레이를 부당하게 지연하면 안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어기면 횟수에 따라 1벌타-일반 페널티-실격 순으로 처리된다.
엄밀하게는 주위에서 방해 받지 않고 플레이 순서가 된 이후 40초 안에 스트로크할 것을 권장한다. 다만 퍼트, 파3홀 티샷, 어프로치샷, 칩샷 등을 처음 하는 플레이어에게는 10초를 더 부여한다. 즉 이들 경우 첫 플레이어에게는 50초가 주어진다.
그린에서 룰과 매너는 엄중하다. 아무리 장타에다 아이언을 잘 다뤄도 퍼트에서 실패하면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여주 소재 골프장에서 외국인이 낀 모임에 초청받은 적 있다. 그 외국인의 그린 플레이와 스코어 기록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린에 올라선 뒤로 캐디 도움 없이 본인이 마크하고 라인을 직접 살폈다. 캐디가 마크를 대신하려는 순간 화들짝 놀라며 본인이 신속하게 마커를 놓았다.
캐디에게 수건을 달라면서 공을 본인이 닦으려고 했지만 동반자들의 설득으로 결국 캐디가 대신했다. 첫 홀부터 마지막 홀까지 플레이를 철저히 본인 주도로 진행했다. 때로 컨시드를 줘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퍼트를 했다.
그린에서 마크 규정을 헷갈려 하는 주말 골퍼가 의외로 많다. 그린에서 공은 본인이 직접 마크하고 라인을 읽는 게 올바른 습관이다.
국내 골프장에선 보통 진행 관계로 캐디가 마크하고 공을 놔준다. 구력이 오랜 골퍼들도 캐디가 놔준 공을 치기만 하는데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프로선수들은 그린에 올라오면서 경사를 훑은 다음 마크 하고 라인을 읽는다. 이 때 공을 집어들기 전 원래 자리를 표시하기 위한 도구가 볼 마커(Ball Marker)다.
마커는 반드시 인공물이어야 하는데 플라스틱, 금속, 나무 등 소재는 상관없다. 동전이나 물병 뚜껑도 상관없다. 숏 티 등도 마커로 가능한데 작은 돌멩이나 낙엽, 나뭇가지 등은 인공물이 아니어서 이들을 사용하면 1벌타다. 단 정해진 규격이 있다.
마커 높이는 1인치(2.54㎝), 너비는 2인치(5.08㎝) 이하이고 화살표 등 방향표시가 된 마크는 사용하면 안된다. 정렬을 도와주는 도구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규정인데 위반하면 2벌타다.
마커는 공 바로 뒤나 옆에 놓아야 하고 공을 먼저 집고 마크하면 1벌타를 먹는다. 동반자가 마커를 치워달라고 요청하면 주변 지형지물과 마커를 연결한 직선 상에서 좌우 원하는 방향으로 옮긴다.
마커를 원래 위치로 정확하게 옮길 수 있도록 기하학적 기준을 잡기 위해 나무나 조명등 같은 주변 지형지물을 선택한다. 상대방 퍼트 후 마커를 제자리에 놓지 않고 퍼트하면 2벌타이며 고의라면 실격이다.
간혹 동전치기라는 수법으로 핀에 더 가깝게 마크하는 경우가 있는데 역시 오소 플레이로 2벌타를 먹는다. 예전에는 공 뒤로 약간 떨어진 곳에 마크하면 무방했지만 2019년 룰이 바뀌어 금지됐다.
마커를 옮겨달라고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반자가 퍼트한 공이 상대 마커에 맞으면 어떻게 될까. 공은 벌타 없이 멈춘 지점에서 그대로 진행하고 상대 마커가 움직였다면 원래 자리에 갖다 놓으면 된다.
동반자의 거듭된 요청을 무시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고의로 마크하지 않거나 마커를 옮겨주지 않는 경우도 가정할 수 있다. 이는 골프 정신을 위배한 것으로 공식 대회에선 경기위원이 판단해 벌타를 주거나 실격 여부를 판단한다.
더운 여름 허리 숙이기가 귀찮아 마커를 제거하지 않고 퍼트하면 1벌타를 받는다. 마커가 라인 정렬에 도움을 준다고 판단한다.
프린지와 그린에 공이 걸쳐 놓이기도 하는데 공 밑부분이 조금이라도 그린에 닿았다면 마크할 수 있다. 공 밑바닥 일부가 그린에 떠 있는 상태에선 마크하면 1벌타를 받는다.
공이 홀에 비스듬하게 꽂힌 깃대와 그린에 맞붙어 있어도 마찬가지다. 공 밑부분이 그린과 수평면을 기준으로 조금이라도 홀 안에 들어가 있으면 홀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마크하고 다시 퍼트를 한다.
골프계 구성(球聖)으로 칭송받는 바비 존스(1902~1971)가 1925년 US오픈 마지막 날 자진신고로 1벌타를 먹은 유명한 사건이 있다. 1타 차 선두를 달리던 그는 러프에서 어드레스를 하던 순간 공이 움직여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신고했다. 결국 공동 1위로 연장전에 들어갔다가 상대에게 우승을 넘겨줬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당신은 만약 내가 은행 강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칭찬할 것인가.” 잇단 매스컴 칭찬에 대한 그의 반응이었다.
나와 동반 플레이를 펼쳤던 그 외국인은 종이 스코어 카 드가 없다는 캐디 말에 메모지를 직접 꺼내 따로 자기 스코어를 적었다. 캐디가 카트에 달린 스마트 스코어 카드에 트리플 보기 이상을 더블 보기로 낮춰서 적자 정확한 스코어로 정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터치에 멀리건, 컨시드도 없었다. 평소 80대 중반을 기록하던 필자도 그날 그를 따라 하다가 98타를 쳤다. “가장 지키기 어려운 비밀은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다.”(파뇰)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 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