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식당. 서울 한남동의 한식 다이닝 레스토랑 ‘공기(Gongi)’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한종용 오너셰프는 ‘퓨전’ ‘이노베이티브’ 등 외식업계에서 흔히 쓰는 수식어에도 손사래를 쳤다. ‘오늘날 우리가 한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는 뜻에서다. 진솔한 모습의 셰프를 닮은, 정갈하고 담백한 분위기의 공기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한식다운 한식을 선보인다. 섬세한 손길로 올린 음식이지만 누구나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한식의 따뜻한 정(情)이 담겨 있다.
공기는 지난 2018년 12평 남짓의 작은 공간으로 출발했다. 당시 홀에는 단 6명의 손님만 앉을 수 있었지만 공기만의 특색 있는 다이닝 경험에 조금씩 단골손님이 생겨났고, 꼬리에 꼬리를 문 입소문 덕분에 오픈 2년 만인 2020년 11월 같은 한남동에서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했다. 최대 50인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프라이빗 룸에서 조용히 식사에 집중할 수도 있고, 최대 16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2층 공간을 대관해 단체 행사를 할 수도 있다.
‘공기’라는 브랜드 이름은 밥을 담아 먹는 데 쓰는 ‘공기(空器)’와 숨을 쉴 때 들이마시는 ‘공기(空氣)’ 모두를 아우른다. 이를 통해 살면서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 셰프는 “공기를 열기 전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서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한 적이 많았다. 그렇게 콘셉트와 비주얼이 우선시돼서 운영하는 식당들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며 “우리도 비주얼에 신경을 쓰긴 하지만 공기는 무엇보다 음식의 맛이 1번이다. 손님들이 편하게 오셔서 드시고 돌아가실 때 머릿속에 ‘센스 있는 한식’을 떠올리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기는 분기별로 메뉴에 변화를 준다. 손님은 코스 메뉴를 이용할 수도 있고 단품 메뉴를 주문할 수도 있다. 가지새우강정, 미나리새우전, 항정살쌈장구이, 목살고추장찌개, 매콤국물닭목살, 한우꾸리살육회 등 술안주로 먹기에도 좋은 10여 개 메뉴를 단품으로 판매한다. 단, 예약 시에는 준비를 위해 코스 메뉴와 단품 메뉴 중 어느 쪽을 이용할 것인지 사전에 정해야 한다. 테라스 좌석은 점심과 저녁 1팀씩만 예약을 받고 있다. 디너 타임에 테라스 좌석을 이용하고자 할 때는 최소한 와인 1병을 함께 주문해야 예약이 가능하다.
공기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메뉴는 단연 채끝등심구이다. 한 유명 인플루언서가 SNS에 음식 사진을 올리면서 공기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투뿔(1++) 등급 한우를 저온에서 30일 정도 진공 상태로 숙성시킨 뒤 구워낸 것으로, 깊은 우육의 맛과 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잘라 미디엄 굽기로 구운 채끝등심 위에 고추냉이를 올리고, 고기를 찍어 먹을 수 있는 영국산 말돈 소금(저염 소금)을 그릇에 함께 제공한다. 뜨거운 물을 가득 담은 그릇 위에 따뜻하게 데운 접시를 올리고 그 위에 고기를 올려 서빙해 오랜 시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인기 메뉴는 ‘한우쑥떡갈비와 들기름 국수’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떡갈비 같지만 떡갈비를 한입 베어 물면 안에 든 부드러운 쑥떡이 치즈처럼 길게 늘어지면서 쫀득한 식감과 고소한 맛을 배가 한다. 한 셰프는 “부드럽게 다진 한우 채끝 부위에 돼지고기와 약간의 지방을 섞고 그 안에 쑥떡을 넣은 뒤 구워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고기 위에는 생율(밤)을 그라인더로 갈아 올렸다. 쌈무에 싸서 먹을 때 올라오는, 치즈처럼 고소하고 쿰쿰한 향의 주인공은 누룩 소금이다. 이처럼 공기는 친숙한 음식이지만 곳곳에 공기만의 ‘킥’을 숨겨놔 특별한 다이닝 경험을 선사한다.
함께 곁들여지는 들기름 국수는 최근 유행하는 들기름 막국수를 재해석해 만든 메뉴다. 가느다란 이탈리아 파스타면 중 하나인 카펠리니 면을 들기름에 마늘 슬라이스와 함께 볶아 오일 파스타처럼 만든 뒤 그 위에 김 가루와 여린 잎, 제철 우니(성게알)를 올렸다. 일반적인 들기름 막국수보다 담백하고 훨씬 산뜻한 느낌이다. 특히 떡갈비의 짭조름하고 달달한 맛과 들기름 국수의 고소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한 셰프는 “한우 쑥떡갈비와 들기름 국수 조합이 인기가 좋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채끝등심구이보다 많이 나가고 있다”며 “본래 봄 메뉴로 선보인 음식이었지만, 손님들 반응이 워낙 좋아 지금은 상시 운영하는 메뉴로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캐비어통깨치킨도 공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통깨를 베이스로 청양고추 가루를 살짝 넣어 만든 매콤한 반죽을 닭다리살 순살에 입혀 튀겨내고, 간장소스와 참기름으로 완성한다. 튀김옷이 얇고 바삭해 마치 스낵을 먹는 듯한 식감을 주고, 청양고추의 매콤함이 간장소스의 달콤짭짤함에 감칠맛을 더해줘 여러 입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튀김옷 안의 통깨를 씹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함은 덤이다. 캐비어통깨치킨은 ‘세 가지 맛 치킨’으로도 불리는데 캐비어를 올린 메시포테이토와 된장사워소스, 방울토마토 피클이 곁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캐비어 메시포테이토와 함께 먹을 때는 깊은 훈연 향을 느낄 수 있다. 치킨을 된장사워소스에 찍어 먹을 때는 느끼함이 확 잡힌다. 또 방울토마토 피클과 함께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에 빠져든다.
낙지탕탕이숙회 역시 공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색 있는 메뉴다. 한 셰프는 “산낙지를 살짝 데친 뒤 식초 물에 하루 정도 재우는데, 이때 낙지살이 탱탱해진다”고 말했다.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에서는 이렇게 해산물을 레몬즙이나 라임즙 등에 재워뒀다 먹는 음식을 ‘세비체’라고 한다. 마늘종장아찌와 섞은 낙지숙회 세비체 밑에는 방아잎과 함께 으깬 아보카도가 깔린다. 낙지의 탱글탱글함과 마늘종장아찌의 아삭함, 아보카도의 부드러움이 한데 어우러져 지루할 틈 없는 다채로운 식감으로 입안을 가득 채운다.
코스 메뉴는 런치 코스(6만8000원)와 시그니처 디너 코스(8만6000원), 스페셜 디너 코스(12만원) 등 총 세 가지로 운영된다. 런치 코스는 채수와 도토리묵으로 시작해 시그니처 전채인 ‘공기(매일 가장 신선한 재료를 선정해 내는 찬 음식)’, 통깨순살치킨, 한우쑥떡갈비(또는 채끝등심구이 +9000원), 공기 반상(밥과 국, 찬), 디저트로 진행된다. 디너 코스는 여기에 미나리새우전 등이 추가된 7코스와 9코스로 구성된다. 코스 중간에 곁들임 메뉴를 추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런치 코스에 미나리새우전을 추가하거나 시그니처 디너 코스에 항정살쌈장구이를 추가하는 식이다. 와인, 샴페인 등 주류 페어링과 콜키지 서비스도 제공한다.
한종용 셰프는 중학교 때부터 일찍이 요리를 시작했다. 친구가 요리학교에 간다는 이야기에 요리를 처음 접한 이후 푹 빠지게 됐다. 대학에서 조리학을 전공하고, 미국 마이애미의 호텔 다이닝에서 1년간 인턴십 과정을 밟았다. 졸업 후에는 최현석 셰프가 운영했던 ‘엘본더테이블’에서 파인 다이닝을 경험했다. 대학 시절에도, 실무 현장에서도 아메리칸 프렌치, 이탤리언 등 양식을 주로 했던 그가 한식에 매료된 건 광주요그룹의 한식 다이닝 레스토랑 ‘비채나’에서 일하면서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한식으로 파인 다이닝을 하는 곳은 비채나 외엔 없었다.
이런 그의 생각에 불을 붙인 건 공기를 열기 전 떠났던 1년간의 세계 일주였다. 세계 다이닝 업계를 주도하는 미국 뉴욕의 중심에서조차 한식이 붐을 일으키며 큰 주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 셰프는 “워낙 요리만 하며 살았기 때문에 사업적으로는 생각을 못 했었는데, 대전에서 헤드셰프로 일하면서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오픈해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며 “일을 그만두고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일본, 유럽, 미국 곳곳을 다니면서 좋은 레스토랑을 많이 다녔고, 사진으로 남겨 공기를 오픈할 때 벤치마킹하는 데 활용했다”고 말했다. 공기의 브랜드 로고와 인테리어는 물론, 웹페이지와 소품 하나까지도 철저한 준비와 고민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그동안 공기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주변에서 다가오는 기회도 많았다. 서울 핵심 상권의 백화점, 오피스 등으로부터 입점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고 투자를 하겠다며 가게 확장을 제안하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때마다 한 셰프는 ‘아직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거절했지만, 덕분에 지금의 공기가 있기까지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 셰프는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으로 레스토랑을 사업화할 생각이다. 가깝게는 공기의 직영점을 서너 개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같은 한남동에 문을 연 솥밥집 ‘숨 라이스바’는 좀 더 캐주얼한 형태로 가맹사업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기(Gongi)
장르 모던 한식
위치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45길 4 1·2층
헤드셰프 한종용 셰프
영업시간 월~토 12:00~21:30(15:00~17:30 브레이크 타임)
가격대 메인 2만~3만원대, 런치 코스 6만8000원, 디너 코스 8만6000원/12만원
프라이빗 룸 3개(2~3인석 1개, 4~5인석 1개, 8인석 1개, 최소 주문금액 있음)
전화번호 0507-1404-7753
주차 발레파킹 또는 유료 주차장
송경은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