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물리적 도구를 먼저 떠올린다. 도끼, 창, 바늘, 바퀴, 책, 호미, 톱니, 증기기관 등은 확실히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기술들이다. 자연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적절한 도구로 만들어 자기 역량을 강화하는 힘이 있기에 인류는 자연을 뜻대로 길들여 지구의 정복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석기, 청동기, 철기 등으로 역사를 구분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기술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까지 왔는지 알려주는 중대한 지표이다.
그러나 미국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에 따르면, 인류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모두가 함께 익혀야 할 궁극의 기술은 도구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서로 관계 맺어 공동체를 이룩하는 공생의 기술, 즉 사회적 기술이다. 좋은 인간관계, 진한 우정과 사랑, 단단한 사회적 연결, 유대감 넘치는 공동체는 좋은 삶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다. 일찍이 농민운동가 전우익 선생은 말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저녁 무렵이 되면, 온 동네 아이들이 놀이터에 모여들어 북적인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있다. 길게 보면 인생엔 방 안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바깥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무리 잘해도 혼자라면 시시하고 시무룩할 뿐이다. 사람살이의 진정한 즐거움은 동료들과 무언가를 함께할 때 생겨난다.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에게 다가서고 한 데 어우러져 행동할 때 우리 삶은 비로소 만족스러워진다.
브룩스는 사회적 기술을 얼마나 익혔느냐를 기준 삼아 인간을 디미니셔(diminisher)와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로 나눈다. 디미니셔는 자기 능력을 믿고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사람이다. 이들은 타인을 대할 때 무한한 호기심을 품고, 끝없이 새로운 면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모든 걸 이미 안다는 착각에 빠져 타인을 무시하며,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타인을 이용해 먹으려고만 든다. 그 탓에 이들 앞에 선 사람들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자신을 하찮거나 보잘것없다고 여긴다. 따라서 디미니셔의 세계는 갈수록 줄어들고 좁아진다.
일루미네이터는 다른 사람에게 끝없이 관심의 빛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꾸준히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들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더 크고 더 깊고 더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게 한다. 그들은 그윽하고 애정 넘치고 관대하고 수용적인 시선을 통해서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금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하려 애쓴다. 한마디로 일루미네이터들은 사회적 기술을 갖춘 사람들이다. 사회적 기술의 출발점엔 수용성, 즉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힘이 있다. 일루미네이터들은 섣불리 남에게 충고를 던지고 자기 생각을 늘어놓으며 강요하기보다 타인이 문제를 이해하고 스스로 생각과 감정을 해소할 때까지 천천히 기다릴 줄 안다. 사람은 자기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종자기의 듣는 귀가 있을 때만 백아의 거문고는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종자기가 죽어 태산 같은 웅장함과 황하 같은 도도함을 알아주는 이가 없어지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후 더 이상 악기를 연주하지 않았다. 인간은 타인에게 인정받거나 소중히 여겨진다고 느낄 때 강력한 창의성을 발휘한다. 일루미네이터가 보이는 사회적 기술은 리더십의 요체이기도 하다. 미국 벨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몇몇 연구원들은 다른 연구원에 비해서 월등한 생산성을 발휘하고 특허받은 기술도 많이 개발했다. 그 원인을 추적한 결과 연구소 경영진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학력도, 직위도, 연봉도 이들의 놀라운 창의성과 거의 관련이 없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로지 전기 엔지니어인 해리 나이퀴스트와 자주 아침과 점심을 먹었다는 사실뿐이었다.
나이퀴스트가 일루미네이터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성장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같이 밥 먹는 동안 그는 동료들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져서 생각을 북돋울 줄 알았다. 나이퀴스트 덕분에 자기의 숨은 재능을 알아차린 동료들은 창의적 발명으로 응답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공동체 전체가 창의적으로 변한다. 이는 인류사의 중심 동력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른 모든 기술에 앞서서 사회적 기술부터 함양해야 하는 이유다. 브룩스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또한 나를 결정한다. 일루미네이터는 디미니셔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경이로움을 발견할 가망성이 높지만, 불안에 빠진 사람은 세상에서 위험 요소만 찾아낼 뿐이다.
삶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고, 인격과 성품은 나날의 사소한 행위가 쌓여서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결국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아이리스 머독이 말하듯, 인간은 다른 사람을 바라봄으로써 성장한다.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세상에 어떤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진다. 이타적 관심을 일으켜서 이기주의에 저항하고, 편견을 극복하려고 분투하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해간다. 살면서 마주치는 숱한 갈등과 고통 속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은 좋은 관계를 대가로 받는다. 이는 나이 들어갈수록 삶의 행복을 결정하는 핵심 자질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으로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도 배운다. 다른 사람의 잠재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것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일루미네이터는 타인을 능동적 창조자로 바라봄으로써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도 쉽게 벗어난다. 다른 사람 처지에 서보는 일, 다른 사람의 인생에 들어가보는 일, 타인이 사물을 바라보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나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자신을 혁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브룩스는 말한다. “어떤 사람을 소중한 동료로, 이웃으로, 연인으로, 배우자로, 친구로 만드는 것은, 누군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고, 자기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힘이 있을 때 삶은 갈수록 좋아지고, 이를 잃을 때 삶은 서서히 지옥으로 변한다. 행복은 물리학이나 경제학의 길을 따라오지 않는다. 행복은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 즉 인문학의 길을 따라온다. 일루미네이터가 되어 삶을 번창시키고 싶다면, 먼저 사회적 기술부터 익혀야 한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