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일일시호일 | `매일매일 좋은 날` 똑같은 것 같지만, 늘 새롭고 좋은…
김소연 기자
입력 : 2022.06.09 16:49:06
수정 : 2022.07.05 15:51:12
6월 8일 개봉한 오랜만의 대작 영화 <브로커>. 송강호, 강동원, 아이유, 배두나 등 스타 배우가 총출동하는 데다 송강호의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화제인 이 영화의 감독은 세계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진 고레에다 감독. 그 고레에다 감독의 뮤즈로 유명했던 배우가 키키 키린이다.
우리말로 풀어내면 ‘매일매일 좋은날’쯤 되는 영화 <일일시호일>은 키키 키린의 유작으로 유명하지만, ‘차’가 등장하는 영화 하면 첫손에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도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는 모리시타 노리코가 본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은 같은 제목의 에세이 책이 40만 부 이상 팔려나가는 등 대히트를 치면서 드라마로 제작됐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스무살의 노리코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도 못했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른다. 그러다 엄마의 권유로 우연히 시작한 다도. 25년 동안 일은 몇 번이나 벽에 부딪히고, 정신적인 슬럼프도 경험하고, 이별과 만남을 되풀이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와중에도 노리코는 토요일이면 반드시 다도를 하러 갔다. 숯 냄새와 솔바람 속에서 오로지 오감으로 마음을 맑게 가라앉히고 그렇게 자신이 계절의 일부이고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아간다. 그리고 항상 똑같은 것 같은 다도지만, 매일매일 새롭고 좋은 날 안에서 늘 새롭고 좋은 다도였음을 깨닫는다.
키키 키린은 영화에서 노리코의 다도 선생님 다케다 아주머니로 나온다. 그녀는 매년 연초에 다회를 열고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또 새해 첫 다회가 다가왔네요. 한 해 한 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만 최근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매해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이구나, 하고요.”
<일일시호일>에는 일본 말차에 곁들여지는
다양한 ‘화과자’가 등장해 눈이 호사스럽다.
영화에서는 형식미의 극치를 달리는 일본 다도를 배우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그 지루하리만치 잔잔한 과정을 오롯이 따라가다 보면 “인생이 꼭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임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다실에 들어갈 때는 항상 왼발부터 들어가는 거야. 문지방과 다다미 가장자리 선은 절대 밟지 않도록 해야 해…. 다다미 한 장에 여섯 걸음으로 걷도록 해. 그리고 일곱 걸음째에 다음 다다미로 넘어가는 거야.”
손수건을 접는 방법에서부터 다실에서 걷는 법, 가마에서 찻물을 뜨는 법, 그리고 그 물을 다완에 따르는 법 등 모든 것에 복잡한 절차가 있다. 왜 이렇게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고, 그 절차를 꼭 지켜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왜 그렇게 하느냐”라는 노리코의 질문에 다케다 선생님은 “이유는 상관없어. 일일이 왜냐고 물으면 나도 곤란해. 의미 같은 건 몰라도 되니까 어쨌든 그렇게 하도록 해”라고 답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일본 다도는 ‘기교와 형식에만 치우쳐있다’고 폄하하는 반면, 일본 다도를 공부한 사람들은 “형식에 마음이 담긴다”고 주장한다.
중국에서 태동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차 문화는 3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꽃피웠다. 3국에서 차를 마시는 것을 부르는 단어를 보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 중국에서는 ‘다예(茶藝)’라고 불렀다. 실제 중국 차 문화에는 예술적 기교가 많이 녹아있다. 중국에는 ‘다예사’ 자격증이 있다. 다예사는 다양한 차를 각각의 방법에 맞게 잘 우리는 게 주된 역할인데, 다예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차를 우리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예술적인 움직임을 익히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일본 다도에서는 무릎을 꿇고앉아 한없이 경건한 마음가짐 몸가짐을 바탕으로 집중해서 말차를 격불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 문헌에서는 ‘다례(茶禮)’라는 표현이 주를 이룬다. 차를 만들고 마시는 모든 과정에서 예절을 중시했다. 일본은 ‘다도(茶道)’다. 차를 준비하고 우리고 마시는 과정을 정확하고 정갈하게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수양이 이뤄진다고 믿었다. ‘다도’의 의미를 생각하면 일본 다도인들이 형식미에 목숨을 거는 것도 이해가 간다.
노리코가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다도를 익히고 또 익힌 것은 한 잔의 말차(抹茶)를 제대로 말아내기 위해서다. 말차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앙증맞은 화과자를 감상하는 것은 보너스다.
물을 끓이고, 다완을 준비하고, 선명한 암녹색 가루에 물을 더해 잘 젓는다. 차를 만드는 일에 깊이 집중하고 있노라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진공 같은 상태가 찾아온다. 마음속에서 쳇바퀴를 돌려대는 걱정은 모두 잊고 지금 이 순간에 온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말차는 대접 크기 ‘다완’에 말차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 대나무로 만든 ‘차선’으로 격렬하게 저어(격불) 만든다.
보통 차를 마신다고 하면 ‘잎차나 티백을 우려 마시는 것’을 연상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잎차를 갈아 분말로 만든 말차에 물을 넣고 대나무를 잘라 만든 차선(tea shaker)으로 솔솔 저어 거품을 내어 마신다. 차 문화는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넘어갔는데 삼국 중 유독 일본에만 말차 문화가 남아있다. 어째서일까?
말차는 송나라 때 차를 마셨던 방식이다. 송나라는 역사 상 중국 차 문화가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다. 송나라 때는 찻잎을 갈아서 만든 말차와 용봉단차가 유행했다. 둘 다 가루에 물을 붓고 팔이 아플 때까지 휘저어 거품이 빽빽하게 올라오게 만들어 마시는 방식의 차다.
송나라 말차 문화는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대 황제 주원장이 용봉단차를 만드는 백성의 고생이 심하다 하여 가루차를 전면 폐지하고, 잎차를 우려마시는 방법만 허가해 찻잎을 가루로 내어 마시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나라에도 말차 문화가 있긴 했다. 고려 시대 유물을 보면 ‘금속으로 만든 차 격불기’가 있다. 차 숟가락 뒤에 거품을 낼 수 있는 도구가 달려있는 다구다. 한국은 조선 시대에 차 문화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기에 당연히 말차 문화 역시 사라졌다.
반면 당시 송나라 말차다법을 수입한 일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말차 문화를 오롯하게 지켜왔다. 그 결과 원조국인 중국은 물론 거쳐 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말차 문화가 일본에서만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녹차를 마시지 않나? 녹차와 말차가 다른 게 무어인가? 그게 그거 아닌가?
최근에는 말차를 베이스로 한 다양한 ‘말차 베리에이션 티’가 인기다. 사진은 성수 ‘맛차차’의 라벤더 말차라테.
결론적으로 말하면 녹차와 말차는 완전히 다른 차다. 녹차를 마시기 위해 재배한 녹차 잎차를 가루로 만든 게 말차가 아니다. 말차는 재배 방식부터 녹차와 다르다.
말차는 보통 채옆 20일 전쯤 녹차밭에 지붕을 만들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빛을 가려주는 이유가 있다. 그래야 엽록소가 증가해 더 진한 녹색을 띠기 때문이다. 또 고소한 감칠맛이 배가된다. 말차와 녹차는 제다 과정도 다르다. 잎을 따서 살청(덖기)-유념(비비기)-건조의 과정을 거치는 녹차와 달리 말차는 증열(찌는 것)-냉각-건조-분쇄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 과정을 전부 거친 차만이 ‘말차’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고, 공정이 복잡한 만큼 녹차보다 가격이 비싸다. 또 말차는 녹차잎을 그대로 분쇄하는 게 아니라, 줄기와 잎맥을 제거하고 갈아내기 때문에 줄기와 잎맥까지 그대로 우려내는 녹차보다 쓴 맛이 훨씬 덜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차가루로 말차를 어떻게 만들까. 말차를 만들 때는 국그릇 크기 정도 다완을 사용한다. 다완에 말차가루를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붓고 차선으로 저어 거품을 만들어낸다. 거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격불’이라 한다. 말로 하면 쉬워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격불할 때 나름 격렬하게(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주 우아하게) 팔을 휘저어야 하는데 팔도 아플 뿐더러, 색도 보기 좋고 거품도 보기 좋게 만들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차선으로 젓는 대신 진동거품기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말차는 잎차로 우린 녹차 10잔에 해당하는 영양적 가치가 있다고 알려졌다. 찻잎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항산화물질을 그대로 섭취하는 덕분에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말차에 우유와 설탕을 첨가하면 말차라테가 되고, 말차가루를 넣어 말차케이크를 만들기도 한다. 말차는 녹차에 비해 훨씬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보통 말차는 단독 음용에 활용하고, 베이커리 등에는 말차가 아닌 녹차가루를 사용한다. 진짜 말차케이크도 있지만 가격이 녹차케이크보다 한결 비싸고 보관도 까다롭다.
다시 <일일시호일> 얘기로 돌아가보자.
새해 첫 다회에는 반드시 그해의 십이지와 관련된 도구가 등장한다. 일 년의 마무리는 언제나 ‘올해도 무사히 보내고 마지막 날을 맞이했습니다’라고 쓰인 족자와 십이지 다완과 함께했다. 그 뒤로는 나무 상자에 넣어서 선반 안쪽 깊숙이 보관하게 되고, 12년 후 다시 그 십이지의 해가 돌아올 때까지 햇빛을 보는 일은 없다.
“말도 안 돼요, 12년에 한 번이라고요? 그럼 이 다완은 살아있는 동안 서너 번밖에 못 쓴다는 거잖아요.”
그때 “말도 안 돼!” 하고 외쳤던 스무 살의 나를, 지금의 내가 십이지 다완을 보며 그리워한다.
“지난번에 이 다완으로 연한 차를 마셨을 때 나는 서른둘이었지. 어찌어찌 책을 한 권 막 냈을 때였어. 다음에 이 다완으로 차를 마시게 되는 나는 쉰여섯, 과연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인생을 보내고 있을까?”
십이지 다완을 바라볼 때면 다들 아득한 저편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게 된다.
‘십이지 다완을 바라보면서 돌아보는 자신의 인생’.
인생은 대단한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작은 것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 작은 것이 모여 그려진 인생이 뒤돌아보니 매일매일 좋았고 또 한없이 소중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리도 또 깨닫는다. 노리코는 다도를 통해 인생을 배웠고, 노리코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인생을 배웠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