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은 또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게 됐다. 백주대낮에 침몰하던 세월호를 바라볼 때만큼이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태였다.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이 몸을 던져 2시간여 만에 비상계엄을 막아냈으니 천만다행이랄 수 밖에. 누가 어떤 경로로 기획하고 실행에 나섰을까 엄히 따지곤 있지만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란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장관급 탄핵을 남발하고 예산을 멋대로 쳐낸 다수당의 횡포가 크다 한들 계엄이 해법일 순 없다. 계엄은 45년 전 신군부의 쿠데타와 수많은 광주시민의 희생을 떠올리게 한다. 자유의 상실과 폭력, 죽음으로 이어지는 두려움이다. 계엄군의 군홧발을 경험한 기억은 여전히 아프다. 이번 사태는 그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놨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과 함께 파멸을 자초했다. 전임 정부의 원전산업 해체를 비판하며 중동 세일즈에 나서 쌓은 이미지도 한 방에 날렸다. 오랜 기간 수많은 이들이 애써 구축한 K-브랜드도 허물어 버렸다. 그러잖아도 힘겨운 한국경제를 더 거센 격랑으로 몰아 넣었다. ‘X맨’이라는 오명도 뒤집어 썼다. 제1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결론으로 치닫던 참이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계엄이 무위로 돌아갔지만 그 불길은 경제와 민생을 다 태울 기세로 번져 걱정이다. 환율은 치솟아 기업들이 아우성을 친다. 경영계획을 원점에서 다시 짜야 할 판이다. 환율 급등을 걱정하며 금리를 찔끔 내렸다가 결국 추가인하에 나섰던 한국은행은 헛고민한 셈이다. 증시는 연일 파란불을 오간다. 기업들은 시계 제로의 불확실성 속에 뭘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가라앉은 내수는 더 얼어붙었다. 경제손실이 매일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탄식도 흘러나온다. 탄핵안 가결로 불확실성이 다소 걷혔지만 불안해 하는 외국인 투자자 이탈은 이어진다.
그나마 정부가 다시 돌아가니 한숨을 돌렸다. 총리가 발 빠르게 정치권 협조를 구하고, 경제부총리도 S&P·무디스·피치를 접촉한 건 잘한 일이다. 경제장관들이 대책을 낸다는데 빠를수록 좋겠다. 정부는 동분서주하는데 정치권은 아직 제정신이 아니다. 여전히 여당이라며 계엄을 엄호하는 국민의 힘. 이제 여당이 사라졌으니 주도권을 확실히 다지겠다고 드는 민주당. 어느 쪽도 박수받긴 힘들다. 국민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국회 담장을 넘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탄핵의 시계는 이미 돌기 시작했다. 여당은 초토화된 마당이다. 이젠 여와 야가 따로 없다. 서로 표 계산에 얽매여 주판알만 튕기다간 공멸이다.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를 붙는 건 당분간 눌러 두라. 남발한 국무위원 탄핵 건도 일단 미루는 게 순리다. 사태에 깊이 연루된 인물들을 빨리 속아내는 게 급하지만 꼬투리 잡기로 정부를 멈춰 세워선 곤란하다.
여야가 정치적 타산을 넘어서는 게 지금처럼 절실한 때도 없었다. 이참에 정관계 주요 인사가 모두 머리를 맞댈 초당적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하루빨리 가동하기 바란다. 주도권 다툼에 보낼 시간이 없다.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정치인 모두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정파를 초월해 협력하라. 대권을 누가 잡느냐는 위기를 넘은 뒤에 따져도 절대 늦지 않다.
[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2호 (2024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