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채널을 돌리다 한 화면에서 멈췄다. 낯선 아이슬란드에서 문을 연 한식당에 외국인들이 식당 건물을 둘러쌀 정도로 줄을 섰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모인 개방적인 메가시티도 아니고,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지도 않은 곳에서 오픈런을 방불케 할 만큼 긴 대기줄이 놀라웠다.
그런데, 음식을 맛본 현지인들의 반응은 더 놀랍다. Bibimbap(비빔밥), Galbijjim(갈비찜)등 모두 한국어를 영어식으로 표기한 메뉴판이었지만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식사하는 내내 음식을 음미하고 그 맛에 감동하는 표정과 칭찬 일색이었다. 메인 메뉴부터 반찬까지 싹싹 비워 잔반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국뽕스런 반응은 좀 과하지 않나’ 의아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예상됐는지 제작진은 ‘절대 섭외한 손님들이 아니다’라고 예능감 있게 (?) 자막을 올린다.
해외에서 작은 한식당을 차리고 운영하는 과정을 담은 이 예능 프로그램은 이에 앞서 2017년 발리, 2018년 스페인 섬마을을 거쳐 지난해엔 멕시코에서 분식점을 열기도 했다. 시리즈 초반만 해도 손님이 없어 거리로 호객하러 나가고 근처 인기식당에 가서 잘되는 이유를 분석하기도 하면서 힘겨운 모습들이었는데, 지금은 밀려드는 주문에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격세지감이다.
K-푸드가 세계로 진격하고 있다. 구글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레시피가 비빔밥이다. 냉동 김밥과 불닭볶음면은 없어서 못팔 정도로 해외에서 인기다. 라면, 치킨, 소주, 과자도 해외에서 반응이 좋단다. 덕분에 올해 7월까지 농축산식품 수출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이 추세라면, 올해 사상 최대치 수출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되면, 지난 2021년 이래 4년 연속 수출 100억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K-푸드의 이같은 인기는 K-POP, K-드라마 등 한류의 확산과 더불어 유튜브, SNS 챌린지 등을 통해 한국 음식에 대한 저변이 넓어진 덕분이다. 물론 그동안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도 적지 않았다. MB정부 때 ‘한식 세계화’를 역점사업으로 정하고 2017년까지 세계 5대 음식으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큰 성과 없이 정치적 공방에 시달리기만 했다.
관(官)이 주도해 단 몇 년간의 계획으로 한식을 세계화한다는 것은 발상부터 불가능한 목표였다. 특히 한식과 같이 문화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섞이고 스며들며 쌓이다 어느 순간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이지 단기간에 목표를 세워 자본을 쏟아붓는다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기꼬망 간장’이 세계를 제패하는 데는 100년이 걸렸다. K-컬처가 세계인들의 가슴에 파고들고 있는 지금, 세계시장을 뚫기 위한 기업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이 이제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있다.
프랑스 음식은 호화롭고 고급스럽다는 인식처럼, ‘약식동원(藥食同原)’인 한식은 건강식으로 포지셔닝하기에 적합하다. 한식에 이런 스토리를 담고 조리법의 간편화, 표준화를 통해 산업화한다면 에스닉 푸드인 김치나 고추장도 세계인의 소울푸드가 될 수 있다. 정부는 한국 식문화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한국의 음식 문화를 본격적으로 세계화할 때다. 이제 시작이다.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8호 (2024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