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은 현대의 종교다.”
다니엘 코엔 프랑스 파리고등사범학교 교수의 말이다. 성장, 즉 부의 무한 증식에 대한 신념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핵심 가치이다. 국내총생산(GDP)은 한 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요, 경제 성장률은 한 공동체의 밝고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 60년간, 우리 역시 성장을 목표로 삼아 돌진해 왔다. 그 분투와 노력의 결과는 달콤했다. 한국은 극빈국에서 선진국까지 비약적 성장을 이룩한 몇 안 되는 모범 국가이고,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저성장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기술 혁신은 약해져 중국 등 후발 주자에게 쫓기고, 극심한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을 치유하지 못해 사회 분열의 늪에 빠져 있다.
성장이 약해지면, 야만적 세상이 열릴 수 있다. 환대의 믿음이 약해지고, 협력의 이상이 후퇴하며, 우애의 지평이 희미해진다. 저출생으로 상징되는 세대 갈등은 그 도화선의 하나다. 암울한 미래를 위해 헌신할 사람은 없다. 성장의 불길을 되살리고, 진보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조엘 모키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의 ‘성장의 문화’(에코리브르)에 따르면, 성장은 지극히 현대적 현상이다. 성장에 대한 갈망은 산업혁명 이후 유럽에서 지배적 사유 양식으로 자리잡아 약 200년에 걸쳐 지구 전체로 퍼졌다. 그 배경엔 유용한 지식에 대한 믿음, 다시 말해 과학과 기술이 가져온 가속적 혁신에 대한 신앙적 숭배가 놓여 있다.
기술 진보와 경제 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풍부한 자원, 뛰어난 과학 기술, 거대한 시장, 활발한 무역, 높은 교육 수준, 능력 있는 관료제도 등이 아니다. 송나라 이래 중국은 그 모든 요소를 갖추었으나 끝내 근대적 경제 성장을 이룩하지 못하고, 서양에 역전당했다. 부에 대한 관용적 태도, 유용한 지식에 대한 투철한 신념, 무엇보다 지식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토론하는 개방적 문화 풍토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장을 서구 세계의 중심으로 가져온 힘은 물질적 토대보다는 문화, 즉 인간 태도와 적성에서 나왔다.
태도는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동기를 불어넣고, 적성은 거기서 얻은 지식을 더 높은 생산성과 더 나은 삶으로 바꿀 힘을 준다. 태도와 적성을 결정하는 힘은 문화에서 나온다. 자연법칙을 이해하게 사람을 부추기고, 그 규칙을 기술에 적용해 인간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도록 권하는 문화 없이 산업혁명은 불가능했다. 경제 후생에 맞춰 집단 지식을 쌓으려 애쓰는 이런 인간 중심적 문화를 모키르는 ‘성장의 문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문화를 장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부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성장의 문화는 유럽에서도 낯선 사유였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시절 우주의 본성과 기원에 관한 질문에 흥미를 느꼈으나, 곧장 탐구를 멈추었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과학 기술은 사유 중심에 들어서지 못했다. 페트라르카는 조롱했다. “묻고 싶다. 짐승과 새와 물고기와 뱀의 본성을 아는 것이 과연 어디에 유용한가? 인간 본성, 우리가 태어난 목적을 모르거나 심지어 등한시하는 건 과연 어디에 유용한가?” 그에게 유용한 건 인간 본질과 삶의 의미에 대한 탐구였다.
이런 정신적 분위기를 통째로 바꾸어 놓은 것은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이작 뉴턴 같은 ‘문화적 사업가’였다. 현대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사업가들도 모험정신에 충만했다. 1500년경 출현한 그들은 실패와 위험을 견디면서 낡은 지식에 기대어 대대로 물려온 지대를 누리려는 기득권 세력과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베이컨은 지식은 생산 활동에 유용하게 쓰여야 하고, 과학은 산업 현장에 적용해야 하며, 사람들은 자신의 물질 조건을 개선할 의무가 있다는 사상을 전파했다. 그는 실용 기술을 고리 삼아 과학 탐구와 경제 발전을 결합하는 사고방식을 만들어 냈다. 이는 지식의 힘으로 경제를 바꾸고, 경제의 힘으로 지식을 바꾸는 자기 강화적 되먹임 시스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산업혁명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인류 진보의 동력이 자연 탐구에 있다는 믿음이 싹틔웠을 때, 뉴턴은 자연법칙을 찾아내는 아름다운 도구를 발명했다. 수학이었다. 단순하고 간략하며 우아한 법칙으로 만물의 운동법칙을 설명한 뉴턴의 사고방식은 찬탄을 불러일으키면서 다른 모든 근대 학문의 모델이 되었다. 이는 관찰과 실험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질서를 발견하며, 이를 통해서 자연을 지배하는 데 쓰일 유용한 지식의 빅뱅을 불러왔다.
베이컨과 뉴턴의 도전정신이 이룩한 문화적 토대는 과학의 힘을 빌린 기술, 즉 유용한 지식의 성장과 확산이 물질 진보와 사회 혁신의 보증수표가 되고, 품격 있는 사람들이 기꺼이 열정을 투자할 만한 일이라는 사고를 확립했다. 이를 이어받은 것이 계몽주의였다.
계몽주의는 사회 진보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신념을 퍼뜨리고, 부를 쌓거나 물질적 재화를 축적하는 활동을 당연시하는 규범을 세웠다. 더 나아가 현실에 뛰어들어 성장을 일으키는 정책 수단을 마련하고 제도 변화를 촉구했다. 저자는 이들이 무엇보다 ‘편지 공화국’의 시민이었음에 주목한다. 계몽의 인터넷이었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들은 국경을 초월해서 지식을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유럽의 치열한 국가 경쟁과 다중심 정치 환경이 이런 지식 혁명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편지 공화국에서 과학자들의 지적 탐구를 자극한 것은 ‘보일의 법칙’과 같은 동료들의 인정과 명예, 그리고 생계 걱정 없이 자유롭게 탐구와 모험에 나설 수 있게 해주는 재정 후원이었다. 정치와 경제의 권력에서 자유로운 아이디어 시장의 존재는 과학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낳았고, 이는 산업혁명과 경제 성장의 원천이 되었다. 문화 없이는 과학도, 기술도, 성장도 없다. 성장의 문화는 자연에 대한 탐구를 중시하는 사고, 기존의 지식과 질서를 가차 없이 폐기할 수 있는 사회 진보에 대한 믿음, 유용한 지식이 진보를 이루는 열쇠라는 신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권력의 제한, 표현의 자유, 지적 경쟁, 종교적 관용, 인권 보장, 자유 무역, 재산권 신성화 등이 결합한 우연한 결과가 산업혁명을 불러왔다.
‘최초의 질문’(민음사)에서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위기에 빠진 한국 사회가 성장의 문화를 이룩하려면 미래 지향적 기업가정신, 자본 축적과 재투자를 진작하는 기업 제도, 혁신 활동을 뒷받침하는 금융시장, 산업 생태계의 창조적 파괴를 촉진하는 시장경쟁제도, 지식 활동을 장려하는 특허제도, 사회적으로 지식을 축적하는 인재 육성 시스템, 다양한 아이디어 원천을 접하도록 자극하는 개방 무역 체제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