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마치 신(神)처럼 바다와 후지산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생각을 화폭에 거침없이 담아내고, 그의 시선을 따라 자유롭고 단순화된 세상은 색채만큼이나 다시 강렬하게 생각을 자극했다. 1856년 파리의 한 인쇄소에서 펠릭스 브라크몽(Fe‘ lix Bracquemond, 1833~1914년, 프랑스 판화가)이 일본 도자기를 감싸고 있던 포장지의 그림을 처음 본 순간은 그만큼 강렬했다.
일본 에도시대 풍속화인 우키요예(浮世繪)의 거장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의 작품이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순간이다. 사실 작품이랄 것도 없다. 도자기가 깨지지 않게 사용한 완충재가 준 인상(impression)이기에 더 극적이다. 브라크몽은 호쿠사이의 화첩 망가(manga)를 구해 자신이 받은 자극을 새로운 화풍을 찾아 고민하던 마네, 모네 등 지인들에게 전하기 시작한다. 원근감과 형태를 중시하던 당시 미술계에 반기를 들고 색채와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던 신진세력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은 힘이 되기에 충분했다. 마네, 모네, 드가, 고흐 등 인상파 화풍을 선도한 이들에게 호쿠사이를 포함한 우키요예 다색 판화는 그런 함의를 가진다. 미술사적으로 19세기 프랑스 미술계를 강타한 자포니즘(Japonisme)은 그렇게 시작됐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족과 귀족이 몰락하고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며, 산업혁명으로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며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였다. 왕이나 귀족과 같은 권력자를 위한 고전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새롭게 떠오르는 부르주아 계급의 수요에 적합한 예술이 필요한 시기였다. 특히, 1826년 프랑스의 니엡스(Joseph Nice‘ phore Nie’ pce)가 ‘그라의 창문에서 바라본 조망’이라는 세계 최초의 사진을 탄생시킨 이후 1841년 영국에서 칼로타입이라는 새로운 인화법이 개발되어 사진의 대량 복제가 가능해지며 미술계에서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게 과연 예술인가?’라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도전 속에서 작품 속에 창작자의 생각을 투영하는 예술의 진보.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 인상파의 존재 가치다.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명제가 적용되기 충분하다.
프랑스 예술계가 당시 필요로 했던 이러한 가치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도자기 포장 완충재로 쓰인 하찮은 종이 위에 구현한 나라. 일본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열기는 폭발적이었다. 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고흐의 ‘탕기영감의 초상’, 마네의 ‘에밀 졸라의 초상’ 등 우키요예의 영향을 받거나 배경을 우키요예풍의 그림으로 채운 작품들이 넘쳐났다. 급기야 자포니즘은 미술의 영역을 넘어 일본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면서, ‘일본 문화가 프랑스 사회에 끼친 영향으로 정의’되는 사회현상으로 발전했고, 현재까지도 영향을 이어가고 있다.
자포니즘 이전에도 동양, 특히 중국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미술사적으로 로코코 시대에 해당하는 17세기 말 전후 시기는 절대왕정이 극에 달했던 때로 권력자를 향한 사치의 일환으로써 예술이 소비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통칭해 중국풍의 취미라는 뜻의 시누아즈리(Chinoiserie)라고 부른다. 권력에 급급한 예술은 프랑스 혁명과 함께 사라지고, 시누아즈리 또한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지고 만다.
새로운 시대다. 프랑스 혁명 이후 상황에 비견할 만큼 세상이 변하고 있다. 무선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통신의 발달과 디지털 디스플레이의 괄목할 만한 진전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생활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는 일상에서 과거에는 감히 할 수 없었던 예술적 경험들을 여유 있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시대다. 일방적인 향유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누구나 창작자가 돼 자유로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샤넬의 패션쇼를 가장 잘, 그리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더 이상 전통적인 잡지가 아니다. 블랙핑크 제니의 SNS가 더 영향력이 있다는 걸 간파하고 그녀의 SNS를 통해, 그녀의 시선을 따라, 지구촌 수천만 명이 샤넬의 패션쇼를 감각적으로 공유하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프랑스도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지난 9월 6일자 프랑스의 유력지 <레제코(Les Echos)>의 커버스토리 제목은 ‘케이팝과 프랑스 패션, 세기의 결혼(K-Pop et Mode, le mariage du sie’ cle)’이다. 그들은 결론 내린다. “프랑스 젊은 세대들의 심장은 이제 한국의 상상력 리듬과 함께 뛰고 있다.” 실비아 옥타부르 문화부 연구위원은 기사에서 “프랑스 명품들은 호감을 일으킬 수 있는 미래를 고심해왔는데, 한국은 미래에 대한 꿈을 연결할 수 있는 목적지가 됐다”라며 프랑스 패션 명품과 K-POP의 결합 이유를 설명한다. 아울러 한국 문화가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어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앵글로-색슨 문화의 헤게모니에 대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새로운 세대를 이끌 문화 아이콘으로 K-컬처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부르주아의 탄생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프랑스 혁명 시대의 예술적 모티브를 구현할 방법을 일본 우키요예에서 찾은 것처럼, 21세기 대중이 주도하는 디지털 문화 환경에 적합한 예술적 영감을 구현할 방법론을 한국에서 찾고 있다. 문화를 소비하면서 생산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공유하는 신인류의 중심, 한국의 젊은 세대에 주목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명제를 다시 정의 내린다. ‘표현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우리의 디지털 일상이 프랑스 문화의 영감이 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