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년 전부터 골프를 하면서 필드에서 연습 스윙(소위 가라 스윙)을 없앴다.
티잉 구역에 오르면 멀리 에이밍을 하고 평평한 곳을 찾아 티를 꽂은 후 그립과 셋업을 완성하면 바로 클럽을 휘두른다. 언젠가 고수와 함께하면서 그의 깔끔한 진행 모습이 멋진 데다 시간도 줄일 수 있어 따라하게 됐다.
평소 1~2번 클럽을 휘두르는 연습 스윙을 없애니 처음엔 불편하고 미스 샷도 나왔지만 이젠 자연스러워졌다. 요즘엔 오히려 연습 스윙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연습 스윙을 없애기로 마음 먹은 결정적인 계기는 지독한 늑장 골퍼와의 플레이였다. 셋업하고 5번 연습 스윙을 하는가 하면 스탠스를 취하고도 30초 이상 미동을 하지 않아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린에서의 거북이 퍼트도 동반자를 무척 불편하게 만든다. 퍼트 자세를 유지한 채 한없이 생각하고 겨냥하니 내 퍼트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이후 필자의 골프는 연습 스윙 없애기로 일관됐다.
골퍼들이 가장 기피하는 상대는 늑장(슬로) 플레이어다. 이들은 상대에게 지장을 준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자신이 신중하게 플레이를 한다고 여긴다. 특히 동반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묵인하면 동반자들의 플레이를 방해한다는 생각이 아예 없다.
얼마전 김주형이 준우승한 디 오픈에서 우승자 브라이언 하먼이 그 사례다. 대회기간 그의 퍼트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웠다. 3m 미만 거리 59개 중 58개 퍼트에 성공했다.
그는 우승을 안았지만 갤러리와 시청자들의 야유도 한몸에 받았다. 수없이 왜글(waggle)을 하고 자세를 취한 뒤에도 30초 이상을 끌면서 스트로크(stroke)를 했다.
골프를 하면서 말을 상냥하게 하고 약속만 잘 지키는 것만이 매너가 아니다. 적당한 플레이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매너다. 이를 소홀히 하면 동반자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진행을 매끄럽게 하면 오히려 스코어가 더 좋아진다는 얘기도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스며들 틈이 없고 연습장에서 익힌 노하우가 그대로 발현된다는 이유에서다.
프로경기에서는 처음 클럽을 휘두르는 데 40초를 주고 10초 추가 시간을 준 후부터는 40초에 샷을 할 것을 권장한다. 이를 어기면 첫 번째는 경고, 두 번째는 1벌타, 세 번째는 2벌타가 주어진다.
경기 도중에 파 3홀과 파 4홀에서 한 홀이 비어 있는 상태도 지연 플레이로 본다. 그린에서는 60초를 주고 페어웨이나 러프에서 볼을 찾는 시간도 예전 5분에서 3분으로 단축됐다.
지연 플레이가 일어나는 상황과 예방법을 알아본다. 우선 골프 도중 동반자 사이에 시비와 다툼으로 오랜 시간을 허비한다. 심하면 다른 동반자는 물론 캐디마저 말리지 못한다.
골프를 시작하기 전에 룰을 확실히 정하고 시비가 발생하면 다른 동반자 사정도 감안해 적당하게 타협한다. 아주 미세하고 완벽한 룰은 프로선수들조차 잘 모르므로 경기위원을 부른다.
경기를 빠르게 진행시킨다고 필자처럼 연습 스윙을 없앨 필요는 없다. 1~2번 스윙으로 끝내고 순서가 오면 바로 제자리에 가서 에이밍 후 스탠스를 취하고 샷을 한다. 여러 번 연습 스윙을 한다고 훌륭한 샷이 나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걱정과 두려움이 뇌리에 스며들어 멘털과 몸을 무력화해 미스 샷으로 연결된다.
모두 순서대로 샷을 하는데 혼자 멍 때리거나 딴짓을 하다가 순서가 돼서야 장갑 끼고, 공 꺼내고, 티 꺼내고, 수 없이 연습 스윙을 하면 환장한다. 상대 플레이를 예의 주시하다가 차례가 다가오면 곧바로 샷을 한다.
캐디들이 가장 기피하는 유형으로 ‘섰다맨’이 있다. 이는 페어웨이에 가만히 서서 이 클럽 저 클럽 가져오라고 소리치거나 손짓하는 골퍼다.
5번 이상 연습스윙을 하다 멈추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캐디, 5번 우드로 바꿔줘”라고 골프장이 떠나갈 듯 소리치면 동반자들 멘털이 붕괴된다. 늘 예상되는 클럽 2~3개를 들고 다니는 습관을 들인다.
캐디 도움이 필요하면 한꺼번에 조언을 구해야 한다. 페어웨이에서 에이밍 지점을 물어보고 혼자 연신 연습 스윙을 하다가 한참 멀어진 캐디에게 다시 거리가 얼마냐며 되묻는다고 상상해보라.
원래 그린에서 마크는 플레이어가 직접 하는 게 맞다. 캐디 힘을 빌려 라인을 읽고 공을 놓았다면 그대로 스트로크해야 한다. 1~2번 캐디에게 도움을 받았다가 아니다 싶으면 본인이 직접 라인을 읽고 공을 놓는다.
캐디 탓을 하면 안 된다. 컨시드 받으면 연습 퍼트를 하지말고 공을 바로 들고 바로 홀 아웃한다. 필자도 요즘 들어 컨시드를 받으면 바로 공을 집어든다.
그리고 동반자 중에 한 사람이라도 OK를 외치면 다른 사람은 불만이 있더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안 된다. 퍼트 당사자의 심리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컨시드 룰을 확실히 정해놓을 필요가 있다. 퍼트에 실패한 후 홀 아웃하지 않고 ‘복기 퍼팅’을 하면 동반자 시선을 교란하면서 플레이에도 방해를 준다. 물론 진행 시간도 지체된다.
늘 공을 1개만 가지고 다니는 골퍼도 종종 있다. 미스 샷으로 공을 분실하면 다른 공을 가지러 카트로 오거나 동반자에게 빌려달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여분의 공을 가지고 다니도록 한다.
동반자가 혹시 알까기를 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볼을 같이 찾아주는 것도 진행 속도를 늦춘다. 자기 샷을 한 후에야 상대 공을 찾아준다.
절친이 거북이 골퍼라면 충고해야 할지 말지 난감하다. 확실한 팩트를 가지고 적절한 분위기에서 얘기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런 충정을 가진 나부터 늑장 골퍼가 돼선 안 된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당시 동료들과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 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