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현재 세계적인 트렌드 중에서도 가장 화제의 중심에 놓인 아이템 중 하나다. 2023년 각종 트렌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 최근 부상하는 ‘조용한 럭셔리’ ‘스텔스 웰스 패션’ ‘올드머니 미학’을 충족하는 필수 아이템으로도 견고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진주는 고생대 초기인 약 5억 3000만 년 전 연체동물이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그 존재가 확인됐다. 실제로 인류의 곁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해온 보석 중 하나인데, 고결하고 깨끗한 자태를 자랑하며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두꺼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식초에 녹여 마셨다는 진주 귀걸이를 비롯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과 존 스타인벡의 소설 등 다양한 스토리를 통해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인류를 매혹해왔다.
양식 진주가 발명된 20세기 이후 진주는 가브리엘 샤넬, 오드리 헵번, 다이애나 스펜서 등 시대의 아이콘들의 영향으로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친근한 대상으로 거듭났다. 최근에는 해리 스타일스, 마크 제이콥스, 퍼렐 윌리엄스 같은 남성 유명인들의 진주 사랑에 힘입어 ‘젠더 뉴트럴’ 룩의 대표 주얼리로도 진화했다.(과거에도 영국의 찰스 1세나 인도의 마하라자 등 상류층 남성들은 진주를 애용했다) 심플한 목걸이든 화려한 하이 주얼리 작품이든 진주는 시대와 성별, 나이를 초월해 착용자를 격조 있고 우아한 모습으로 변신시켜주는 독특한 매력이 일품이다.
하지만 이 같은 파워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주의 높은 가격이 시장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양식 진주의 공급 부족이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타히티를 비롯한 많은 진주 양식장에는 핵 주입 단계에 필요한 중국과 일본 기술자들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공급이 크게 축소됐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과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어린 진주조개의 폐사율이 증가했고, 진주조개의 건강한 유지를 위한 인력 부족으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의 폭발적인 수요로 세계적인 공급 부족이 더욱 심화되는 상황이다. 그나마 보편적인 성장 주기를 고려할 때, 2024년 이후에는 공급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공급 확보를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클래식 주얼리의 대명사로 사랑 받는 진주는 디자인과 스타일 만큼이나 가치 평가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다이아몬드보다 다양한 종류, 품질, 스타일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다음의 몇 가지 핵심 요소만 숙지한다면 올가을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만족하는 우아한 룩을 완성할 수 있다.
광택은 고급 진주를 논할 때 꼭 고려해야 하는 필수 요소다. 진주가 반사하는 빛의 품질을 의미하는데 내부에서 발산되는 빛과 표면에서 반사되는 광채를 포괄한다. 광택이 훌륭한 진주는 거울과 같이 밝고 선명한 빛 반사를 보이지만, 광택이 좋지 않은 진주는 둔하고 흐릿한 느낌을 준다. 진주는 여러 겹의 진주층이 쌓여서 성장한 것이므로 진주층이 두껍고 균일할수록 광택도 높아진다. 표면에 자신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치는지 확인해보자. 이미지가 선명할수록 광택이 좋은 것이다.
진주의 형태는 전체적인 윤곽을 판단하는 것으로 완벽한 구형, 타원형, 페어형(물방울), 버튼형, 바로크(불규칙한 모양) 등으로 분류된다. 진주는 살아있는 생명체 안에서 형성된 유기질 보석이기 때문에 채굴 후 기계로 다듬어지는 광물 보석과 비교할 때 균일한 결과물을 얻기가 쉽지 않다. 완벽한 구형이 가장 높이 평가되는 이유다. 한편 바로크 진주는 특유의 유기적 형태로 인해 독창적인 개성을 뽐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진주의 크기가 클수록 가치가 높지만, 진주의 종류에 따라서 평가방식이 다르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아코야 진주에서는 10㎜ 이상이 드물지만, 남양 진주와 타히티 흑진주는 15㎜ 이상은 물론이고 때로는 20㎜까지도 가능하다. 양식 진주는 다이아몬드와 달리 캐럿이 아닌 밀리미터(㎜)로 유통되며, 천연진주는 그레인(grain) 단위로도 표기할 수 있다(1그레인=0.25캐럿).
“진주는 조개의 자서전이다”라는 말처럼 진주의 색상은 모패의 종류가 좌우한다. 연한 핑크빛이 도는 백색의 아코야 진주나 실버-화이트 또는 골드 톤의 남양 진주 등 마음에 드는 색상을 선택하면 된다. 진주의 색은 크게 보디 컬러, 오버톤, 오리엔트의 3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진주가 가지고 있는 기본 색인 보디 컬러는 진주의 가장자리에서 가장 잘 관찰된다. 오버톤은 보디 컬러 위에 나타나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반투명한 색인데, 로제(핑크), 실버, 크림, 그린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러한 오버톤이 모든 진주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오리엔트는 진주 표면에서 관찰되는 독특한 무지갯빛을 말하며, 명료할수록 가치가 높다. 연한 보디 컬러보다 어두운 보디 컬러에서 더 뚜렷하게 보인다. 또한 진주의 표면이 깨끗할수록 광택이 더욱 돋보이므로 균열이나 흠이 적은 진주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드 목걸이를 고를 때는 진주알이 서로 얼마나 잘 매치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진주는 너무 건조하거나 습한 장소에 오래 보관하면 부식되거나 깨지기 쉬우므로 온천, 목욕탕, 사우나에서는 절대 착용하면 안 된다. 땀, 화장품, 기름 성분 등이 묻으면 즉시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내는 것이 좋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과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 <젬스톤 매혹의 컬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