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카카오가 시장을 열고 주도하고 있는 웹툰은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세로 스크롤 방식으로 보는 온라인 만화를 의미한다. 한국이 종주국인 웹툰 시장에 아마존에 이어 애플 등이 뛰어들면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한국이 지식재산권(IP) 경쟁력을 갖춘 웹툰 생태계의 세계적 저변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다만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북미 등 세계 시장에서 이제 막 독점적 위치를 가진 웹툰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네카오 입장에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는 의미로도 분석된다.
미국 상장을 준비 중인 네이버와 최근 웹툰 사업 전략을 재편한 카카오는 글로벌 웹툰 플랫폼 시장의 왕좌를 지키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네이버웹툰의 미국 법인이자 본사인 ‘웹툰엔터테인먼트’는 5월 31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며 본격적인 기업공개(IPO) 작업에 착수했다.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는 증권신고서에 담긴 서한을 통해 “기술의 힘을 이용해 웹툰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를 개척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다음 10년 동안 가장 크게 성공한 IP 프랜차이즈를 웹툰이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나스닥 상장은 IPO 준비, 증권신고서 제출, 로드쇼, 공모가 책정, 상장 순으로 이어진다. 업계에서는 상장까지 4~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발행 규모와 공모가액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블룸버그는 올 2월 웹툰엔터테인먼트의 기업가치를 30억∼40억달러(약 4조1550억∼5조5400억원)로 평가하고, 이번 상장으로 최대 5억달러(약 6925억원)를 조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웹툰엔터 매출액은 지난해 12억8000만달러로 전년 10억달러 대비 28% 증가했고, 순손실은 같은 기간 1억3300만달러에서 1억4500만달러로 9% 늘어났다. 웹툰 엔터테인먼트 지분은 네이버와 라인야후가 각각 71.2%, 28.7%를 보유하고 있다. 자회사로는 네이버웹툰과 일본 라인망가 운영사인 라인디지털프론티어, 영미권 인터넷 소설 기업 왓패드를 거느리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6월 웹툰 캐릭터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캐릭터챗’을 출시했다. 웹툰·웹소설·코믹(만화) 플랫폼사가 직접 소비자향 챗봇을 내놓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회사가 보유한 IP를 기술과 연계해 웹툰 생태계를 확장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캐릭터챗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학습됐으며 네이버웹툰이 엄선한 일부 웹툰 캐릭터와 대화를 나눠볼 수 있는 기능이 핵심으로 제공된다. 이를 통해 이용자들은 웹툰 속 캐릭터와 소통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챗봇은 네이버의 AI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미국 나스닥 상장 절차에 착수한 네이버웹툰의 기업가치 부양에 AI 등 신기술 접목이 핵심적인 요소라는 분석도 나온다.
네이버웹툰은 수십억뷰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하며 글로벌 단위 팬덤을 보유한 웹툰·웹소설 ‘메가IP’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일례로 웹툰 한류의 기폭제가 된 웹툰 ‘외모지상주의’의 경우 지난해 9월 누적 조회수 100억회를 돌파하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한국 웹툰 수출을 넘어 외국 작가와 그들의 새로운 스토리를 찾아내고 이를 웹툰·웹소설·드라마로 제작하는 ‘글로벌 스토리 생태계’를 만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시장에서는 ‘네이버웹툰이 이를 위해 IP와 AI 접목이라는 승부수를 꺼내 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네이버웹툰은 전 세계 150개국 이상에서 약 1억7000만명에 달하는 월간활성사용자(MAU)를 보유하고 있다. 웹툰 창작자는 2400만명, 월간유료사용자는 780만명에 달한다. 이 같은 생태계를 기술과 접목하는 데 성공한다면 웹툰엔터의 기업가치 부양은 물론 네이버웹툰이 표방해온 ‘스토리 테크’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질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네이버웹툰은 나스닥 상장으로 확보한 실탄을 바탕으로북미와 일본 등 세계 시장 공략은 물론 AI 서비스 개발에도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웹툰엔터는 이번 IPO를 계기로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IP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현지에서 웹소설과 웹툰 IP를 확보하고 영상화, AI 서비스 등으로 확장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네이버웹툰 생태계 확장과 함께 (웹툰에 활용되는) 네이버의 AI 기술 가치를 재평가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생성형AI 기술은 창작자들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강력한 ‘도구’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다음 세대의 엔터테인먼트 프랜차이즈는 수백만달러를 들여 전문 작가, 감독, 프로듀서가 대본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사용자의 창의력을 활용하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네이버웹툰은 AI 챗봇 외에도 IP와 AI를 결합한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네이버웹툰은 AI를 활용해 사진을 웹툰 그림체로 변환시켜주는 ‘툰필터’ 서비스를 지난해 내놨다. 챗봇 이후로는 AI와 웹툰 IP를 활용한 ‘캐리커처’ 서비스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또 네이버웹툰은 유해 콘텐츠를 자동으로 걸러내기 위한 AI 필터링 솔루션인 ‘엑스파이더(Xpider)’를 독자 개발해 현재 주요 서비스에 활용하고 있다.
AI 기술 접목에 있어 웹툰 생태계의 핵심인 ‘창작자’와의 연결과 소통도 중요한 요소다. 네이버웹툰은 이에 대해 ‘창작자가 우선’이라는 철학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네이버웹툰은 AI 챗봇 개발에 있어 캐릭터와 IP 활용에 앞서 작가들의 동의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터 업계에서는 전 세계 웹툰 플랫폼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네이버웹툰이 웹툰·웹소설 IP를 활용한 AI 서비스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K-콘텐츠의 글로벌 도약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적으로 막대한 팬덤을 보유한 웹툰·웹소설을 활용한 다양한 AI 서비스가 ‘킬러콘텐츠’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재료’는 충분한 상태다. 네이버웹툰은 지난 10년 동안 100개 이상의 스트리밍 시리즈·영화, 200개 이상의 책, 70개 이상의 게임, 1100만개 이상의 소비자 제품군을 포함해 총 900개 이상의 작품을 제작·각색했다고 밝혔다.
웹툰·웹소설이 AI 기술과 융합된 콘텐츠로 진화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믹스’도 주목된다. 미디어 믹스란 미디어 산업에서 IP를 소설, 영화, 만화, 게임, 캐릭터 제품 등 여러 미디어로 출시하는 것을 뜻한다. 캐릭터와 AI의 융합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캐릭터.AI는 임의로 캐릭터를 생성하고 성격과 언어습관, 캐릭터의 배경 등을 학습하는 버추얼 챗봇 플랫폼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카카오의 웹툰을 비롯한 콘텐츠 자회사인 카카오픽코마는 유럽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 유럽 진출 약 3년 만에 사업을 접는 것이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웹툰 시장 성장세가 당초 예상보다 더딘 가운데 현지 업체들의 출혈 경쟁이 심화하자 수익성이 높은 지역에 집중하기 위해 내린 결정으로 풀이됐다.
일본 웹툰 시장에서 1위에 오른 카카오픽코마는 글로벌 무대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청사진 아래 2021년 9월 프랑스 파리에 유럽 법인을 설립했다. 프랑스를 거점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한다는 구상이었다. 그해 11월 사명도 종전 카카오재팬에서 카카오픽코마로 바꿨다.
카카오픽코마는 프랑스에 설립한 ‘픽코마 유럽’ 현지 법인을 완전히 철수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관련 절차를 추진중이다. 회사 측은 상반기 중 법인 청산 절차에 착수해 연내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유럽 현지에서 서비스 중인 종합 디지털 만화 플랫폼 ‘픽코마’는 오는 9월 서비스를 종료한다. 유럽 현지 사정에 정통한 IT 업계 관계자는 “유럽 진출 결정 당시와 비교해 달라진 성장 속도에 대해 픽코마 내부적으로 다각적인 검토를 진행했고 사업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 (철수)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21년 카카오픽코마가 유럽 법인을 세울 당시만 해도 프랑스는 유럽 콘텐츠 시장의 중심지로 전 세계 플랫폼 기업들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를 교두보로 유럽 전역을 공략하겠다는 것이 회사 측 구상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웹툰 시장이 당초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법인 철수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시장조사 업체 코그니티브마켓리서치는 프랑스 만화 시장이 연평균 3.1%씩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전 세계 평균(5.1%)을 밑도는 수치다. 특히 디지털 만화로 전환되는 속도가 둔화되는 추세다.
현지 시장이 ‘레드오션화’되고 있는 점 또한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유럽 최대 규모 만화 출판사인 메디아파르티시파시옹은 올해 초 웹툰 사업에 진출했다. 프랑스 현지 메이저 업체인 ‘픽소매거진’은 디즈니 지식재산권 을 기반으로 한 구독형 웹툰 플랫폼을 만들었다. 현재 프랑스 시장에서는 델리툰, 태피툰, 포켓코믹스 등 다양한 플랫폼사가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지에서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플랫폼 ‘픽코마’는 현지에서 사용자 100만명을 확보하고 현지 웹툰 플랫폼 앱 순위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견조한 생태계를 구축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수익성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카카오픽코마는 유럽에서 웹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200만유로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픽코마 유럽은 2022년 1000만유로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프랑스 시장 특유의 콘텐츠 이용 방식과 라이프스타일 등으로 인해 현지화 전략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생태계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향후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카카오픽코마가 유럽 시장 진출 거점인 ‘픽코마 유럽’ 법인 철수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주력인 일본 시장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카카오픽코마는 일본에서 웹툰·웹소설 플랫폼을 운영하는 카카오의 자회사다. 카카오 공동체의 미래 먹거리 핵심 축인 카카오픽코마의 글로벌 사업 전략이 ‘다각화’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재편됐다는 분석이다. 유럽 시장을 포기하는 대신 카카오픽코마는 일본 웹툰 시장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카오픽코마는 지난해 일본에서 연간 거래액 1000억엔(약 9000억원)을 넘겼다. 일본에서는 빅테크가 잠재적인 플랫폼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어 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애플과 아마존은 각각 ‘버티컬 리딩 코믹스(세로 읽기 만화)’와 ‘아마존 플립톤’이라는 웹툰 서비스를 일본에 출시했다. 일본 최대 규모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쿠텐은 자체 웹툰 앱인 ‘R-툰’ 서비스를 개시했다. ‘드래곤볼’ 등으로 유명한 일본 슈에이샤는 웹툰 플랫폼 ‘점프툰’을 출시할 예정이다.
카카오 공동체 차원에서 웹툰 등 IP 관련 시너지 효과를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카카오는 지난 4월 그룹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에 콘텐츠 IP 관련 조직을 신설했다. 카카오픽코마 등 그룹사 간 IP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미국 시장은 카카오엔터가 2022년 8월 설립한 타파스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계속 공략할 방침이다. 카카오엔터는 현지 웹툰 플랫폼 ‘타파스’와 ‘래디시’를 인수한 뒤 타파스엔터를 출범했다.
웹툰 시장에는 아마존과 애플이 진출한 상태다. 애플의 전자책 플랫폼인 애플북스는 지난해 일본 이용자를 대상으로 ‘세로 읽는 만화(웹툰)’ 페이지를 신설한 바 있다. 애플은 웹툰 플랫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3년 이상 공을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애플은 “180여 명 규모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100여 개 웹툰 만화 시리즈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플북스에는 국내 웹툰 전문 스튜디오인 케나즈(KENAZ)가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도 지난해 일본에서 ‘아마존 플립툰’이라는 이름으로 웹툰 서비스를 내놨다. 아마존 역시 키다리스튜디오와 레진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회사들에서 콘텐츠를 공급받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마존은 국내 웹툰 업체들이 사용 중인 유료화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일본은 전 세계 웹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받는 중요한 시장이다. 애플과 아마존이 북미 진출 대신 일본 시장이라는 우회로를 택한 이유로 분석된다.
애플과 아마존이 일본에서 ‘예열’을 마친 후 북미 시장에서 본격적인 웹툰 플랫폼 사업을 펼칠 경우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넷플릭스를 통해 K-콘텐츠가 세계적 인기를 얻었듯이 국내 웹툰 제작사들 기회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빅테크의 웹툰 진출과 관련해 김준구 대표는 지난해 4월 간담회에서 “(애플·아마존과 같은) 빅테크 회사들이 웹툰 부문에 뛰어들었지만 빅테크들과의 경쟁이 두려운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네이버웹툰은 일본과 북미 등 세계 시장에서 ‘1등 웹툰 플랫폼’으로 자리잡았지만 빅테크의 참전으로 향후 치열한 경쟁 구도가 형성될 수 있는 만큼 미연에 경쟁력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특히 이들 빅테크는 경쟁력 있는 IP를 공급받기 위해 더 많은 혜택을 무기로 다수의 국내 웹툰 제작사들과 접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 등 자사 디바이스에 애플북스를 기본 내장하고 있어 강력한 판매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황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