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TV+의) 구독자 수 증가가 우리의 기대치를 뛰어넘고 있다. 메시가 인터 마이애미에 합류한 것이 우리를 도왔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발표에서 애플TV+가 독점 중계하는 메이저리그사커(MLS)에 합류한 메시 효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터 마이애미 구단주인 호르헤 마스는 메시가 MLS에 합류하자 경기 중계 구독자 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엑스(X·트위터)에 밝혔다. 업계에서는 현재 MLS 시즌 패스의 유료 구독자 수가 200만 명을 훌쩍 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스포츠 팬들이 ‘풋볼(미식축구)’이 아니라 ‘싸커(축구)’에 열광하고 있다. 그리고 메시의 미국 영입 뒷단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애플은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효과에 환호하고 있다.
불과 지난해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올해 발롱도르(최고 권위의 축구 개인상) 수상이 유력할 정도로 전성기가 끝나지 않은 메시다. 올여름 PSG(프랑스)와의 계약을 끝맺자 사우디리그와 유럽 유수의 명문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최종적으로 미국행을 택했다. 축구에 있어서는 ‘제3지대’로 여겨졌던 미국이 축구 ‘GOAT(역대 최고의 선수)’ 영입에 성공한 것이다.
메시가 활약하게 될 인터 마이애미는 데이비드 베컴(영국)이 공동 구단주 겸 회장을 맡고 있는 팀이다. 메시가 미국행을 결정하는 데는 베컴의 끈질긴 설득이 있었다. 하지만 MLS 후원사인 애플, 아디다스 등 거대 다국적 기업과의 계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MLS의 독점 중계권을 갖고 있고, 아디다스는 MLS 전 구단에 독점으로 유니폼을 공급하고 있다.
베컴과 MLS 사무국, 애플, 아디다스 등은 4년 전부터 메시 영입을 위해 작전을 짰다. 이들은 우선 금전적으로는 사우디와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시장인 미국에서 ‘축구’를 전파하는 역할, 즉 명분을 제시하는 전략을 썼다.
또 매우 이례적으로 MLS 중계 수익을 메시와 공유하고 장기적으로는 베컴처럼 MLS 구단주가 될 수 있는 길도 열어줬다. 유럽과 다르게 미국은 MLS 사무국이 구단 소유권을 배분하는 구조다. 사우디가 제시한 연봉 4억유로보다 크게 적은 메시의 마이애미 연봉(5400만달러)을 상쇄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단기적인 제시액(offer)에선 사우디에 밀릴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 차원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를 권유한 셈이다. 메시로선 돈과 명예 모두를 챙길 수 있어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특히 애플은 메시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구단과 선수 간 딜이 이뤄지기 전부터 메시와 파트너십을 맺는 작업에 착수했고 여기에는 애플의 고위직들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하드웨어(아이폰, 비전프로)와 소프트웨어(앱스토어) 그리고 콘텐츠(애플TV+)를 잇는 거대한 생태계를 구상하고 있다.
이 생태계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킬러 콘텐츠’이다. 애플TV+는 넷플릭스 등과 비교했을 때 아직 영향력이 부족하다. 애플TV+가 미국을 넘어 글로벌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의 중심에 스포츠, 그중에서도 축구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애플은 올해 연례개발자회의(WWDC)에서 메시의 월드컵 ‘라스트 댄스’를 그린 4부작 다큐 시리즈를 제작 중에 있다고 공개했다. 4부작 시리즈에는 메시의 지난 2006년 월드컵 첫 출전부터 2022년 우승까지의 여정이 담길 예정이다. 또 최근에는 메시의 인터 마이애미 생활을 그린 다큐 시리즈를 추가적으로 제작한다고 밝혔다.
넷플릭스가 마이클 조던의 <더 라스트 댄스> 다큐멘터리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은 것처럼 ‘축구 아이콘’ 메시를 통해 글로벌 영향력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축구 인구는 40억 명에 달해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스포츠다.
특히 애플의 레이더에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 축구 시장이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미국 스포츠 시장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미국 4대 스포츠(미식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구단의 총 가치가 전 세계 모든 축구 구단의 총 가치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축구 인기가 심상치 않다.
미국 사커다이제스트에 따르면 MLS 29개 구단의 올해 평균 관중은 2만 1913명에 달한다. 축구 전문 매체 트랜스퍼마르크트는 MLS가 세계 축구 톱10 리그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1부리그 팀과 선수 숫자(768명)가 세계 1위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보다 많다. 리그 총 수입은 유럽 5대 리그 다음으로 많은 6위(14억6000만유로)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서 성장세가 가장 빠른 축구 시장이다.
더욱이 미국은 내년 코파아메리카(남미선수권)를 시작으로 2025년 FIFA 클럽 월드컵, 2026년 FIFA 월드컵까지 최대 이벤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미국에서 축구가 메이저 스포츠로 자리잡을 수 있는 판이 마련된 셈이다. 여기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메시까지 영입해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애플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애플TV+를 통해 올해부터 2032년까지 MLS 중계권을 확보한 상태다. 메시 경기는 오직 애플TV+로만 볼 수 있는 구조다. 메시의 MLS행이 확정되자 희망국이 늘었고 중계권료도 대폭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현재 한국을 포함해 세계 107개국에 MLS OTT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애플은 스포츠 중계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넷플릭스 등 여타 OTT와도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스포츠 스트리밍(중계) 시장의 중심이 TV에서 OTT로 넘어올 것이라는 판단이다.
실제로 미국 입성 이후 메시는 존재만으로도 축구를 미국의 메이저 스포츠 반열로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메시’ 자체가 킬러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메시는 전 세계에서 팔로워가 가장 많은 인플루언서 중 하나다. 예컨대 메시의 팔로워 중 1%(약 500만 명)만 MLS 시청권을 사도 애플TV+가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오프라인 티켓과 유니폼 판매 수익 등 부가적인 경제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된다.
애플이 구상하는 아이폰 이후 ‘넥스트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인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프로(Vision Pro)와 스포츠의 연계도 주목할 부분이다. 지난 6월 WWDC에서는 애플이 선보인 비전프로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비전프로는 2016년 에어팟 이후 애플이 7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 하드웨어다. 팀 쿡 CEO는 “맥(Mac)이 개인 컴퓨팅 시대를 열었고,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열었다면, 비전프로로 공간 컴퓨팅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애플은 비전프로를 공개하면서 ‘메타버스’라는 거창한 표현 대신 ‘공간 컴퓨팅’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비전프로는 주변과 모든 사물을 볼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헤드셋을 착용하고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눈동자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모든 앱을 조작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컴퓨팅 디바이스(랩톱 혹은 스마트폰)의 컴퓨팅 파워를 평면에서 3차원으로 극대화하겠다는 게 애플의 구상이다. 애플이 구상하는 3차원 생태계 성공의 관건은 ‘킬러 콘텐츠’ 확보다. 실제로 애플은 생태계 확장을 위해 비전프로 출시를 서두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용 앱 출시를 위해 개발자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다.
비전프로 생태계의 성공의 핵심은 ‘문화 콘텐츠’다. 스포츠, 게임, 음악(공연), 예술 등이 대표적이다. CNN에 따르면 메시 영입 이후 마이애미 경기 전체의 티켓 가격은 약 700% 상승했다. 메시의 MLS 데뷔전 티켓은 판매 플랫폼 ‘비비드시츠(Vivid Seats)’에서 최고 11만달러(약 1억40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예컨대 비전프로용 카메라로 찍은 메시의 경기 장면을 감독이나 선수의 시야로 볼 수 있다면 비전프로의 쓰임새가 훨씬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킬러 콘텐츠 확보가 선행될 경우 3499달러(약 456만원)에 달하는 비전프로의 가격은 다른 관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리오넬 메시는 전 세계적으로 SNS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손꼽힌다. 가령 메시가 월드컵 우승 직후 올린 게시물은 역대 인스타그램 ‘좋아요’ 신기록을 달성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메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4억8000만 명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인기의 비결은 그가 쌓아 올린 압도적인 커리어와 실력 덕분이다. 월드컵을 통해 커리어를 무결점으로 만든 리오넬 메시의 파급력은 다른 스포츠 선수들과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2년 월드컵 결승전 직후 FIFA는 공식 SNS에 “GOAT 논쟁이 종결됐다”고 썼다. 실제로 메시는 월드컵 우승과 골든볼(2회 수상), 대륙컵 우승·MVP,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유럽 4대 리그 우승·MVP, 올림픽 금메달, 발롱도르 7회 수상(역대 최다), FIFA 올해의 선수 6회 수상(역대 최다) 등 그야말로 독보적인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또 이 모든 것을 이뤄낸 역사상 유일한 선수다. 메시 효과는 실제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인터마이애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메시 합류 이전 50만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1385만 명까지 늘었다(8월16일 기준).
황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