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한국 증시에서 가장 ‘핫’한 종목은 에코프로였다. 2023년 1월 2일 11만원이던 주가가 2023년 4월 11일 장중 80만원을 뚫기도 했다. 연초 대비 무려 600% 이상 상승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처럼 시장에서 주목받는 에코프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2차전지 양극재 기업.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에코프로의 주요사업인 2차전지 매출도 함께 상승한 것이 주가 상승의 배경이다.
에코프로그룹은 지주사인 에코프로와 양극재 제조업체 에코프로비엠, 케미컬필터 등 환경 사업을 영위하는 에코프로에이치엔 등 상장사 3개, 비상장사 24개 등 총 27개 계열사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에코프로그룹의 핵심 캐시카우는 양극재 제조사 ‘에코프로비엠’이다. 1분기 그룹 매출의 97.4%, 영업이익 58.8%를 책임졌다. 비상장사로는 양극재 전구체 제조업체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배터리 재활용업체 에코프로씨엔지, 수산화리튬 제조업체 에코프로이노베이션, 양극소재 업체 에코프로에이피 등이 있다.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2차전지 관련업을 영위한다.
1998년 10월 은행원 출신인 이동채 전회장이 코리아제오륨으로 설립한 에코프로(대표 송호준)는 2001년 2월 현재 사명으로 변경됐다. 이후 기술 개발에 진력, 10년 만에 하이니켈계 양극소재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 양산화에 성공했다.
2003년부터 2차전지 전구체, 양극소재 등 전지재료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2007년 7월 코스닥에 상장했고, 2012년 NCM811 계열의 전기차용 양극소재 코어쉘(CSG) 개발을 시작했다. 2016년에는 세계 최초로 CSG 양산에 성공했다. 에코프로비엠(대표 주재환·최문호)은 2020년 NCM811을 SK이노베이션에 공급하는 10조원 규모의 잭팟을 터트리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국내 양극재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유럽 현지 생산 공장 구축에도 나섰다.
<잠깐용어> 양극재와 음극재
배터리는 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을 조합해 만든다. 전구체란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전 단계 물질을 일컫는 용어로, 배터리용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재료다. 니켈·코발트·망간 등의 원료를 섞어 만든 화합물이다. 전구체에 리튬을 더하면 양극재가 된다. 배터리 용량·전압을 결정짓는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50%를 차지하며, 전구체는 양극재 가격의70% 비중을 차지한다.
시장과 증시에서 에코프로그룹이 주목받은 이유는 고부가가치 부품소재를 일찌감치 선점한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하이니켈 양극재다. 양극재 주성분으로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이 있다. 하이니켈 양극재는 니켈 비중을 높인 소재다. 일반적인 양극재의 니켈 비율이 60%라면 하이니켈 양극재는 이보다 높은 80~90%의 니켈 함량을 자랑한다. 이전까지 하이니켈 양극재는 성능은 좋지만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에코프로비엠은 10년여 연구개발 기간을 거치면서 안전성까지 높인 세계 최고 수준의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정용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니켈 비중이 높을수록 에너지 밀도가 높아지고 저장 용량이 커져 하이니켈 양극재를 사용하면 주행 거리가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고급 전기차에 입도선매될 정도다보니 판매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있어 그만큼 영업이익률도 높게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에코프로는 2023년 1분기에 연결 기준 매출 2조589억원, 영업이익 179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6806억원에서 단숨에 2조원을 돌파, 20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539억원에서 1790억원으로 230% 증가했다.
수익과 더불어 재무지표도 양호하다.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과 빚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유동비율은 146%, 부채 비율은 124%로 모두 안정권을 기록했다. 특히 사업 확대에 따른 필요 운영자금 증가로 은행권의 단기 차입(대출)은 지난해 1분기보다 2배 증가한 1조3288억원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개선과 재무 관리의 안정화가 동시에 이뤄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에코프로그룹은 또한 양극재 원재료가 되는 전구체부터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까지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다. 약 2조원 이상을 들여 포항(에코프로 배터리 포항 캠퍼스)에 설비 투자를 단행, 33만㎡(10만평) 규모의 대규모 공장을 구축한 덕이 크다. 전구체 생산(에코프로 머티리얼즈), 리튬 제조(에코프로이노베이션), 배터리 리사이클(에코프로씨엔지) 관련 계열사를 포항 한곳에 모아 시너지 효과도 극대화했다.
이처럼 2차전지 관련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최근 에코프로그룹은 잇단 악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가는 연이어 급락했고, 계열사 상장 일정도 불투명해졌다.
에코프로 악재의 중심에는 오너 리스크가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는 5월 11일 항소심에서 이동채 회장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1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며,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해 집행유예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벌금 22억원을 선고했다. 에코프로비엠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SK이노베이션과 대규모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장은 해당 내용을 공시하기 전에 차명 증권계좌로 에코프로비엠 주식을 거래해 11억여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회사 측에선 “이동채 회장이 대표를 사임한 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해왔다”며 발 빠른 진화에 나섰지만, 내부 분위기는 사정이 다르다.
에코프로 계열사의 한 핵심 간부는 “회사가 급성장하다보니 일부 내부 통제에 실패한 사례가 불거져나온 것이다. 지배구조 혁신, 준법 경영체제 확립 등 쇄신책을 발표하고 감사위원회 설치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기대에 못 미친 부분이 있었다”면서 “해외 공장 착공 등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산더미인데, 이동채 전 회장이 수감되면서 사업 속도에 제동이 걸린 측면이 있다. 총수 없이 대규모 투자가 얼마나 잘 진행될지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이 전 회장의 구속으로 계열사 IPO(기업공개) 추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에코프로의 계열사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지난 4월 한국 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상태다. IPO를 위해선 질적 심사요건에 따라 한국거래소에서 경영 투명성과 경영 안정성 등을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혐의에 따라 한국거래소가 주주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분구조상 사실상 대주주인 이 전 회장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도 상장 절차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배터리 양극재용 핵심 소재인 하이니켈 전구체를 제조하고 있다. 2017년 에코프로그룹이 에코프로비엠에 전구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목적으로 설립됐다.실적도 성장세다. 2020년 매출은 2167억원에서 지난해 6652억원으로 약 3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24억원에서 389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156억원의 순익을 내며 흑자전환에도 성공했다. 경북 포항에 연간 5만톤(t)의 전구체를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설비를 구축했다. 2027년까지 15만톤 이상을 증설해 글로벌 생산능력을 연간 20만7000톤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증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 측은 자금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배구조의 안정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에코프로는 2021년 11월 5일 ‘이동채 회장→에코프로→계열사’로 이뤄지는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이동채 전 회장은 지주사 전환을 통해 에코프로의 지배력을 높였지만 아직까지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한 총 지분율은 26%에 머문다. 당장 승계가 진행될 상황은 아니지만, 이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라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에코프로의 승계 열쇠는 이 전 회장 등 가족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이룸티엔씨가 갖고 있다. 이 전 회장 장남인 이승환 팀장은 에코프로 신사업기획팀에서 근무 중이다. 장녀 이연수 씨는 에코프로의 벤처캐피털(VC) 계열사 아이스퀘어벤처스에서 일하고 있다. 이승환 팀장과 이연수 심사역은 에코프로 지분율이 각각 0.14%, 0.11%에 그친다. 에코프로 지분 5.37%를 지닌 이룸티엔씨를 통해 간접 지배력을 갖고 있다.
이 전 회장 자녀들은 이룸티엔씨가 지닌 에코프로비엠 지분 4.8%를 재원으로 승계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서 상장을 준비 중인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지분도 2.16% 갖고 있다.
오너리스크 외에도 중장기적 변수도 만만치 않다.
당장 양극재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수조원 단위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유지하려면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대응, 특히 핵심광물 공급망을 보다 탄탄하게 갖춰야 한다. IRA 요구 기준에 충족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7500달러의 소비자 세액공제, 배터리 셀 1kWh당 35달러, 모듈 포함 최대 45달러의 생산자 세액공제를 보장하는 IRA는 최근 전 세계 배터리 업계의 화두다. 중국 외 최대 전기차 시장인 미국에서 이를 충족한 배터리와 그렇지 못한 배터리는 전기차의 시장 경쟁력에서 큰 격차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양극재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에코프로 입장에서 수요 비중이 높은 핵심광물은 리튬과 니켈이 해당한다. 에코프로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2025년 이전에 중국 외 안정적인 핵심광물 공급원을 확보하고, 기존 공급원 중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이 IRA 세액공제 대상인 ‘미국과 FTA 체결 혹은 그에 준하는 광물협정을 맺은 국가’의 지위를 갖는 것이다.
에코프로 계열사 에코프로이노베이션이 호주 및 캐나다 지역의 광산과 플랜트 기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아르헨티나 염호(리튬 함유 호수) 공급선과 전략적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리튬 공급 안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기술 전쟁도 방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일본의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개발 등 다양한 도전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 에코프로 측은 “새로운 먹거리 소재 외에도 LFP(리튬 인산철)로 대표되는 저가 양극소재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차세대 양극소재인 NMX(니켈·망간계 소재), OLO(리튬과잉산화물)를 개발, 연초 발표한 양산 일정(2024년 NMX, 2025년 OLO)에 맞춰 차질 없이 샘플평가를 진행하며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