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달리는 전자장치’로 전자제품화하면서 결함 사례에서도 소프트웨어 비중이 커지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10건의 결함 중 소프트웨어 문제는 1건 이하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4~5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자동차 산업이 하드웨어 중심의 전통적 제조업에 머물렀던 과거에는 소프트웨어 활용 빈도가 주행·제동 등 기계 제어 분야로 한정됐다. 최근에는 사용자 경험 향상을 목표로 각종 편의 기능을 구현하는 데 소프트웨어를 적용하고 있다.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관련 결함 또한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매일경제는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자동차리콜센터에 2012년부터 올해 5월까지 공지된 제작사·수입사(상용차 포함) 66곳의 리콜·무상수리 등 사후조치 사례 4487건을 전수 조사했다.
분석 결과, 최근 10년 사이 전체 사후조치에서 소프트웨어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5배가량 늘어났다. 2012년에는 전체 리콜·무상수리 80건 중 6건(7.5%)이 소프트웨어 관련 조치였다. 지난해에는 전체 리콜·무상수리 723건 중 277건(38.3%)이 소프트웨어 문제로 인한 것이었다.
최근 10년 새 전체 사후조치 건수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2018년을 전후로 자동차리콜센터 시스템이 개편되면서 제조사·수입사의 자발적 시정조치도 공지사항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사후조치 건수가 늘어나면서 소프트웨어 관련 조치도 이에 비례해 늘어난 것으로 비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전체 사후조치 건수가 9배 늘어날 때 소프트웨어 관련 조치는 46배 늘었다.
올해 1~5월에는 총 323건의 사후조치가 취해졌다. 이 가운데 소프트웨어 관련 조치는 135건(41.8%)으로 집계됐다.
현대자동차가 실시한 소프트웨어 관련 조치는 2012년 1건, 지난해 36건, 올해 38건으로 늘었다. 현대차가 올해 1~5월 실시한 사후조치 62건 중 38건(61.3%)도 소프트웨어와 관련이 있었다.
현대차의 소프트웨어 결함 증가세는 준대형 세단인 그랜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16년 11월 출시된 6세대 그랜저(코드명 IG)는 누적 사후조치 31건 중 11건(35%)이 소프트웨어 결함과 연관됐다. 반면 지난해 11월 출시된 7세대 그랜저(GN7)의 경우 올해 5월까지 누적 14건의 사후조치가 취해졌는데 이 가운데 10건(71%)이 소프트웨어 문제였다.
모델별 첫 사후조치 사례는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 결함이 증가하고 있는 최근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6세대 그랜저에 대한 첫 사후조치는 2016년 12월 취해졌는데, ‘속도 센서 커넥터 체결 불량’이 문제였다. 7세대 그랜저는 올해 1월 ‘중립제어 구간 전기 부하 대응 데이터 강건화 미흡으로 D단 정차 중 시동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첫 사후조치가 실시됐다.
올해 4월에도 7세대 그랜저에선 ‘전방충돌방지보조(FCA) 제어기’ 오작동 문제가 확인됐다. 저속 주행 시 전방에 장애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물이 있다고 잘못인식하고 차량이 자동으로 멈추는 현상이 나타났다. 현대차는 ‘FCA 기능 민감 작동 강건화 설계 미흡’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직영 하이테크센터와 블루핸즈를 통해 ‘전방 레이더’와 ‘운전자보조 주행 제어기’를 업그레이드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지난 5월에는 7세대 그랜저 하이브리드 모델에서 ‘통합형 전동식 브레이크(IEB) 제어기’의 소프트웨어 오설정 문제가 발견됐다. 이는 앞차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자율주행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모드를 오르막 길에서 이용할 때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이다. 앞차가 멈추면 이에 맞춰 차량이 자동으로 정차해야 하지만,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뒤로 밀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현대차는 고객통지문을 통해 ‘IEB 제어기 소프트웨어에 보조제동력 반영이 미흡했다’며 자발적 리콜을 실시했다.
7세대 그랜저에서 소프트웨어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차량에 적용된 소프트웨어 비중이 이전보다 확대됐기 때문이다. 7세대 그랜저에는 현대차그룹 역대 출시 모델들 중 최다 수준의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Over The Air) 기능이 적용됐다. 7세대 그랜저의 OTA 대상 항목은 이전 세대 모델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었다.
소프트웨어 결함 문제는 신형 그랜저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신차 개발 기간이 단축되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에 장착되는 첨단·편의사양까지 늘어나면서 소프트웨어 결함은 증가하고 있다.
제네시스 GV80(JX1)은 2020년 1월 출시 이후 올해 5월까지 누적 31건의 사후조치가 취해졌는데 이 중 20건(65%)이 소프트웨어 문제와 관련됐다. 2020년 3월 출시된 기아의 4세대 쏘렌토(MQ4)도 누적 사후조치 26건 중 15건(58%)이 소프트웨어 문제였다.
수입차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실시한 소프트웨어 관련 사후조치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59건(전체 사후조치의 44%), BMW코리아 42건(44%), 폭스바겐그룹코리아 30건(53%) 등으로 집계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수입차 모델인 벤츠 E클래스의 경우 지난해 실시한 총 31건의 리콜·무상수리 중 16건(52%)이 소프트웨어 관련 조치였다.
수요 변화에 민감한 완성차 기업들은 신규 모델을 보다 더 빨리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는 완전변경 모델이 새롭게 출시되는 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지만, 최근에는 주기가 6년 안팎으로 단축됐다. 완성차 기업들은 플랫폼을 통합해 모델별 개발 기간을 줄이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동시에 개발 기간 단축으로 인해 잠재적인 결함을 바로잡을 기회도 제한되고 있다. 신차 출시 초기에 소프트웨어 결함이 속출하고 있는 이유다.
소프트웨어 결함은 조기에 발견하기가 어렵다. 하드웨어와 달리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성차업계는 갖가지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으로 소프트웨어 결함을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완전무결한 결과물을 내놓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차량에 장착된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소스코드의 양이 많고 복잡도 또한 높은 탓이다. 일부 고급 차량의 경우 소스코드 분량은 1억 줄 이상에 이른다. 이는 엔진 제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등을 비롯한 한 대의 차량에 적용된 모든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숫자다. 최선의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차량용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 구동과 맞물려 작동하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또 특정 소프트웨어의 결함은 여러 영역에 걸쳐 파급 효과를 낳는다. 소프트웨어 결함이 발생했을 때 어디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는 작업부터가 도전 과제인 셈이다.
테슬라는 현존하는 완성차 기업들 중 차량용 소프트웨어 완성도가 높은 기업으로 평가된다. 자체 운영체제를 구축해 독자적인 자율주행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고, 차량 결함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해결하는 OTA 기능을 일찍이 도입했다.
기존 완성차 기업들과 테슬라가 구별되는 또 다른 점은 ECU(전자제어장치·Electronic Control Unit)의 중앙집중화다. 변속기, 차체 자세 제어, 타이어 공기압 관리 등 자동차 전 부문에 걸쳐 ECU는 두뇌 역할을 수행한다. 문제는 그 두뇌가 여기저기 분산돼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1대당 약 70~100개의 ECU가 사용된다. 각 ECU를 구동하는 운영체제도 다르다. 테슬라 모델3의 경우 자체 운영체제 하에 4개의 통합형 ECU를 사용한다. 이런 테슬라조차도 소프트웨어 결함을 바로잡기 위한 사후 작업을 끝없이 진행하고 있다.
차량 개발 시 원천 차단에 실패한 소프트웨어 결함은 결국 개별 운전자들에 의해 발견된다. 자동차 관련 소프트웨어는 ECU에 미리 설계된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할 뿐, 오류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 시정조치가 결정된 차종임에도 불구하고 운전자가 자신이 주행하는 차량에서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잠재적 결함이 있는 차량을 그대로 몰고 다닐 개연성이 높다. 도로 위 잠재적 위험 요소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개발 과정에서 만전을 기해도 결함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성차업계가 소프트웨어에 목매는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가 꼽힌다.
우선, 전기차 등 차량의 성능·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소프트웨어를 통해 제어 시스템을 정교화하는 작업이 필수다. 또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움직이는 생활공간’으로 의미가 달라지면서 완성차업계는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고 있다. 하드웨어만으로는 변화에 한계가 있는 탓이다. 세 번째 이유는 수익성이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보면, 특정 소프트웨어 기능을 장착한 차량은 판매 가격을 인상할 명분이 생긴다. 판매 이후에도 갱신·구독형 서비스를 통해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
세계 완성차업계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전환에 집중하고 있다. 커넥티드카(네트워크 접속 기능을 갖춘 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완성차 제조사의 핵심 경쟁력은 소프트웨어에 달렸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SDV로 전환하고, 2030년까지 소프트웨어 부문 강화에 18조원을 투자한다. 폭스바겐그룹은 소프트웨어 부문 자회사를 설립하고 ‘VW.OS’를 개발하고 있다. 2021년 기준 10% 수준인 소프트웨어 내재화 비율을 2030년까지 6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폭스바겐그룹의 계획이다. 독자 운영체제 ‘아린’을 개발하고 있는 토요타는 지난해부터 신규 채용의 40% 이상을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으로 채우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다른 기술 산업과 달리 소프트웨어를 다룬 역사가 길지 않다. 차량에 소프트웨어를 통합하는 작업이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관련 결함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자동차 특성상 모든 케이스를 검증할 수는 없다. 안전과 직결된 핵심 기능은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개발하고 사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신속히 대응하는 데서 완성차 제조사의 역량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산업부 문광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