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가전 시장 변화 | 집콕 생활에 대형 TV·의류관리·건조기 등 인기… 올해 4분기부터 침체 본격화, 내년 전망 어두워
황순민 기자
입력 : 2020.07.30 17:47:02
수정 : 2020.07.30 17:47:28
삼성의 가전사업(CE부문)을 총괄하는 김현석 대표이사(사장)는 코로나19 국면에서 가전 시장이 올해 4분기부터 침체기에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지난 6월 15일 판매·현장점검을 위해 삼성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을 찾은 자리에서 그는 “코로나19로 억눌린 소비심리가 일시적으로 개선되면서 2분기에는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양호한 실적을 거뒀지만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어려움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고 내년 전망은 그보다 더 어둡게 보고 있다”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2분기 가전 시장이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억눌린 상태에서 풀리는 비정상적인 현상이고, 세계 경기, 소비자심리, 실업률 등의 영향을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받을 것이라는 게 김 사장의 우려다. 더 큰 문제는 내년부터다. 김 사장은 “내년에는 올해와 같은 ‘보복 소비’ 수요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나쁜 현상들이 나올 것이다”라면서 “특히 내년부터 자국 보호가 강해질 것이고, 국가 간 무역 마찰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삼성전자는 90% 이상이 해외 매출인데, 이런 자국보호 경향이 심해지면 우리한테는 큰 위기”라고 덧붙였다.
LG 트롬 스타일러 트루스팀
▶2분기 한국 가전기업 실적 선방
3분기부터 불확실성 더 커질 듯
삼성전자는 2분기 코로나19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염려됐던 TV·가전 등 소비자가전(CE) 사업에서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 국내를 비롯해 북미와 유럽 시장 등에서 5월부터 ‘보복적 소비’가 점진적으로 이뤄졌고 오프라인 매장도 속속 재개장하면서 실적도 개선됐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절대적인 가전 수요가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시장 회복 과정에서 브랜드·제품·공급망에서 경쟁력을 갖춘 삼성이 일시적으로 수혜를 입었다는 게 삼성 측의 판단이다.
또 다른 가전 강자인 LG전자의 경우에도 올 2분기 가전 사업의 선전에 힘입어 시장 전망을 웃도는 실적을 거뒀다. 특히 증권업계에서 예상한 영업이익 전망치(컨센서스)인 4011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달성했다. 가전을 담당하는 H&A(가전 등)사업본부와 HE(TV 등)사업본부가 나란히 기대 이상의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글로벌 공장과 전자제품 유통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실적 타격이 불가피했지만 스팀 가전을 중심으로 한 신가전 판매와 TV사업에서의 프리미엄 전략으로 실적 악화를 최소화했다는 분석이다. 4월에 저점을 찍은 매출은 5월, 6월로 오면서 상승세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상반기 영업이익은 4년 연속으로 1조5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주요 가전 업체들이 코로나19 팬데믹에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서도 삼성과 LG가 실적 선방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안정적인 공급망과 제품의 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LG전자의 경우에는 신가전, 프리미엄을 앞세운 견고한 펀더멘털이 버팀목으로 작용했다.
업계에서는 스마트폰과 TV·생활가전 부문이 생산·판매 정상화로 3분기 실적 개선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코로나19가 ‘뉴노멀’로 자리 잡는 4분기부터는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하반기에는 코로나19, 미·중 무역분쟁, 업계 경쟁 심화 등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당분간 획기적인 실적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재유행이 3분기 가전 업황 회복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3분기는 주요 국가들의 경제 재개에 맞춰 각 회사의 회복력(레질리언스)이 실적 차별화의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은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가전 시장 변화를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규정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현실화가 굉장히 빨라질 것이다. 삼성전자가 감당하지 못하는 속도로 갈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특히 삼성을 비롯해 주요 가전업체들이 역량을 집중하는 방향과 소비자 니즈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다. 김 사장은 구체적으로 코로나19 이후 가전시장의 주요 흐름으론 ‘대형화’ ‘개인화’ ‘홈 이코노미’ ‘위생가전’ 등이 주요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가전기기를 연결하고 제어할 수 있는 초연결성이 현실화한 시대가 2~3년 내에 올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가령 TV 시장의 경우 이제 TV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기를 통해 경험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 위생가전
▶코로나19로 촉발된 TV 시장 변화
대형·스마트 날개 달았다
코로나19는 TV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코로나 영향으로 TV를 이용해 유튜브를 시청하는 인원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존에 유튜브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이용하지 않았던 시청자까지도 새로운 서비스로 눈을 돌린 영향이다. 올림픽 등 주요 스포츠 이벤트가 줄줄이 취소된 가운데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는 늘어나는 콘텐츠 수요가 TV 시장의 스마트·초대형·초고화질 트렌드와 함께 프리미엄 시장 수요를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지난 3월 기준으로는 TV화면으로 유튜브를 시청한 인원이 1억 명을 넘어섰다. 타라 레비(Tara Levy) 유튜브 브랜드 솔루션 담당 부사장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시청자들이 집에 머물면서 유튜브로 더욱 눈을 돌리고 있다”면서 “3월에는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TV 화면으로 유튜브를 시청했다”고 전했다.
TV 제조사들은 몇 년 전부터 OTT를 통해 TV를 시청하는 인원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스마트·8K TV등 제품 라인업을 강화해왔다. TV업계에서는 스마트 TV 대중화로 OTT를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전염병 확산에 따라 ‘집콕’이 생활화된 만큼 고품질 온라인 TV 콘텐츠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LG 트롬 건조기 스팀 씽큐
올해 1분기 전 세계 TV 중 스마트TV의 비중은 81%에 달했는데, 세계 TV 시장 1위 업체인 삼성전자의 전체 TV 판매 중 스마트TV 비중은 2017년 76%에서 올해 93% 수준까지 늘었다. 전 세계 TV 출하량이 지속 감소하고 있는 것에 반해 초대형 TV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TV를 활용한 콘텐츠 플랫폼 이용도가 더욱 늘어나면 화질과 화면의 크기가 소비자들에게 더욱 중요한 구매 관여도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TV 시장에서 65인치 이상의 초대형 판매 비중은 2018년 23.6%에서 작년 30%까지 커졌다. 특히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올해 1분기에는 30.8%로 더욱 늘었다.
OTT의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좋은 TV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최근 발표한 2020년형 넷플릭스 추천 TV 리스트에는 삼성전자 TV 모델이 대거 선정됐는데, 이는 실제 소비자들의 구매의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콘텐츠가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화면이 세로형이 기본인 TV(더 세로)를 내놨는데,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삼성라이프스타일 TV는 2017년 이후 판매량이 매년 2배씩 성장했다. 모바일 콘텐츠를 화면이 가로형인 TV에서 즐기면 화면 비율이 맞지 않아 잘리는 부분이나 여백이 생길 수 있는데, 43인치인 더 세로는 가로 화면을 갖춘 TV보다 스마트폰과 화면 비율이 더 비슷하게 만들었다.
TV 제조사들은 자체 콘텐츠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자사 TV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LG 채널’ 서비스를 확대했다. 삼성전자는 애플TV 내 콘텐츠를 삼성 스마트TV와 연동하기 위해 애플과 손을 잡았다. TV와 유튜브의 결합은 광고 시장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는 광고주들이 TV 화면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을 타깃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광고 프로그램(유튜브 셀렉트)을 시작했다. 광고업계에서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보다는 소파에 앉아 더 많은 콘텐츠를 시청할 가능성이 높은 TV 시청자들이 일반적으로 더 수익성이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코로나19로 위생가전 관심↑… 뉴트렌드로 자리 잡나
코로나19로 인한 가전 시장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위생과 관련된 가전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위생과 각종 바이러스 예방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는 추세다. 위생가전 시장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회사는 LG전자다. 실제 LG가 2분기 실적 선방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스타일러, 건조기, 식기세척기 등 스팀가전 매출이 증가하면서 실적 버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단적인 예로 LG전자가 지난 3월 초 출시한 건조기 신제품이 ‘스팀효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LG전자에 따르면 이 회사의 건조기 국내 전체 판매량 가운데 ‘LG 트롬 건조기 스팀 씽큐’의 판매량 비중은 출시 첫 달인 3월에 50%를 기록한 데 이어, 4월 65%, 5월 들어선 70%까지 올랐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위생과 각종 바이러스 예방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탈취와 살균에 특화한 스팀 기술을 탑재한 건강가전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스팀 가전인 건조기의 경우 작년 150만 대 규모에서 올해 200만 대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의류관리기와 식기세척기도 각각 60만 대, 30만 대로 대폭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무선청소기 제트, 청정스테이션 출시
LG전자는 건조기 외에도 트루스팀을 탑재한 의류관리기·건조기·식기세척기 등 위생 관련 신가전을 전진 배치해 올해 매출 방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TV, 냉장고 등 전통적 가전 시장에서 줄어든 수요를 신가전 판매를 늘려 메꾸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트루스팀 기술은 물을 100도(℃)로 끓여 스팀을 발생시킨다. 이를 통해 탁월한 탈취와 살균은 물론 의류의 주름 완화, 세탁력 향상 등에도 효과가 뛰어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실제 스팀가전은 코로나19 여파에도 판매 호조를 기록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트롬 스타일러의 경우 올 들어 판매량이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디오스 식기세척기 스팀도 작년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LG전자는 건조기 외에도 트루스팀을 탑재한 의류관리기·건조기·식기세척기 등 위생 관련 신가전을 전진 배치해 매출 방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전염병 영향으로 TV, 냉장고 등 전통적 가전 시장 수요가 줄어드는 하반기에도 신가전 판매를 늘려 수익성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가 최근까지 국내외에 등록한 스팀 특허가 1000건을 넘으면서 회사 측은 기술 보호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술 보호를 위해서는 소송 등 단호한 조치를 불사하겠다는 회사 차원의 방침도 세웠다. 실제 LG전자는 지난달 독일 만하임(Mannheim)지방법원에 터키 가전업체 아르첼릭(Arcelik)의 자회사인 베코(Beko)를 상대로 세탁기에 사용하는 스팀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취지의 특허침해금지소송을 제기했다. LG전자는 건조기를 비롯해 스타일러, 식기세척기, 광파오븐 등 프리미엄 생활가전에 스팀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