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서도 앞서 가겠다”는 중국, 위안화 기반 디지털 화폐 조만간 발행 예정… 달러화 패권 사로잡힌 미국 ‘리브라’도 꼬여
신현규 기자
입력 : 2019.12.04 16:06:44
“중국 정부가 블록체인을 매우 강력하게 발전시키기로 했어!”
지난 11월 13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 IT 관련 콘퍼런스. 중국 바이두에서 나온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11일 내놓은 기사를 언급하면서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중국 언론이 비트코인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표현을 썼다”며 “무언가 거대한 입장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중국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전 세계 금융질서, 나아가 글로벌 파워게임의 판을 흔들어 보려 시도하는 낌새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기술로 인해 전 세계는 빠른 경쟁을 이미 시작했고, 중국은 미국을 끊임없이 불편하게(Disrupt) 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있어서 이미 중국의 바이두와 알리바바, 페이스플러스와 센스타임 등의 회사들은 미국을 앞질렀다는 평가가 나온 지 오래다. 이번에는 중국이 블록체인을 이용한 디지털 화폐 분야에서 미국을 앞지르려 한다.
4차 산업으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이 너무나 불편한 미국은 무역전쟁, 군사적 압박, 지적재산권 등 동원할 수 있는 카드들을 내밀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상당한 실물경제의 타격을 입고 있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13일 경제상황 좌담회를 통해 실물경제의 하강 압력이 커졌다며 위기의식을 높이라는 주문을 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중국으로 하여금 더 빠른 기술적 우위를 갖추게 하는 촉매가 되고 있다. 2020년은 전 세계가 디지털 화폐 경쟁으로 떠들썩한 한 해가 될 지도 모른다.
▶중국 정부, “블록체인, 준비됐다”
지난 10월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중앙위원회 18차 집체학습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블록체인을 핵심 기술의 자주적 혁신의 중요한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을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첨단정보 기술과 융합하고 교육, 취업 양로, 빈곤퇴치, 의료건강, 상품 위조 방지, 식품안전 등 각 분야에 응용하라”고 지시했다. 시 주석의 24일 발언은 곧바로 블록체인 기반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가격상승을 가져왔다.
마침 구글이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성능의 ‘양자컴퓨터’ 연구결과를 네이처지에 발표하고,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고 있던 때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다. (그동안 블록체인이 해킹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양자컴퓨터의 발전’이라는 사실이 비트코인 투자자들에게 너무 많이 알려져 있었다.)
중국은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고 있는데, 시 주석의 이 발언으로 인해 비트코인 등과 같은 암호화폐 거래가 합법화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과 중국 공산당이 바라보는 시선은 비트코인 등과 같은 암호화폐 거래 활성화 하나에만 국한돼 있지 않았다. 10월 26일 중국은 블록체인을 비롯한 암호화 기술 전반에 대한 산업의 규제 틀을 발표했다. 2020년 1월 1일에 발효되는 이 법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각종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원칙들을 담았다. 한마디로, 정부가 블록체인 활용의 판을 깔아준 것과 같은 의미다.
시진핑 주석은 특히 블록체인 시스템을 이용한 생태계가 교육, 고용, 안전, 식품 등 각 산업 곳곳에 깃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판에 뛰어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염원하던 꿈은 다양한 거래행위가 블록체인상에서 스마트 컨트랙트로 즉각 안전하게 채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국 특유의 중앙당 중심의 집행력으로 이런 생태계를 키우는 작업이 이제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중앙집권적 국가가 가장 분권화된 블록체인 시스템을 속도감 있게 진전시켜 나가는 것은 아이러니다. 같은 날 중국 공산당은 당원들에게 ‘입당초심’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도록 했다. 당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마음가짐을 영원히 변심할 수 없는 블록체인 위에 아로새기라는 것이다. 신화통신은 미국 시장조사기업 IDC가 중국의 블록체인 개발부문의 연평균 성장이 65.7%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 민간 기업들, “공이 울렸다”
시진핑 주석과 중국 공산당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지원을 선포한 것은 다수의 민간 기업들에게 ‘출발선에 올라 스타트하라’고 선포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낳고 있다. 이후 다수의 민간 기업들이 그동안 물밑에서 준비해 왔던 블록체인 기술을 공식적으로 수면 위에 올리고 본격적인 사업진출을 선언했다. 일례로 최대의 중국 전자상거래 회사인 알리바바의 핀테크 계열사인 앤트파이낸셜(Ant Financial)은 최근 자체적인 블록체인 플랫폼을 조만간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부터 이 플랫폼을 활용할 협력사들을 모집해 왔다. 블록체인 전문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앤트파이낸셜은 지난 6월 140억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조달해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알리바바의 본거지인 항저우에서 인터넷 법원 등의 정부기관에 블록체인 플랫폼을 공급하기도 하고, 세계적인 농업 관련 화학기업인 ‘바이엘 크롭 사이언스(Bayer Crop Science)’와 손잡고 블록체인으로 농산물 생산부터 소비까지 과정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바이두는 ‘라이츠거우(Letsdog)’라는 게임 분산형 앱(DAPP)을 출시했다. 결제까지 지원하는 메신저 서비스 ‘웨이신(WeChat)’을 운영하는 텐센트는 인텔과 손잡고 사물인터넷(IoT) 응용프로그램을 위한 블록체인을 개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블록체인 쪽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프루프오브캐피탈’의 에디쓰 영 매니징파트너는 CNBC에 “중국은 정부 주도의 국가”라며 “중국이 정부 주도로 (전 세계) 블록체인 기준을 선도하길 원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고 말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스텝 꼬이는 미국
인공지능, 5G, 스마트폰, 블록체인 등에서 뒤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중요 요소 기술들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는 모습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중국이 미국을 앞질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례로 안면인식 인공지능 회사인 페이스플러스와 센스타임 등의 인식오류는 전 세계 어떤 기업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5G도 마찬가지로 미국이 중국에게 뒤진다. 미중 갈등의 시작이 됐던 ‘화웨이’ 사태의 경우 중국의 5G 기술에 대한 미국의 공포감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스마트폰 영역에 있어서도 화웨이가 삼성전자와 애플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기능 중 유튜브 등과 같은 핵심요소들을 화웨이의 메이트X에 공급하지 못하게 만든 미국의 조치 또한 미국의 중국 기술에 대한 불편함을 방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핀테크 영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이미 QR코드로 거지에게 기부까지 하는 ‘핀테크 실험실’이 된 지 오래다. 미국에서도 페이팔, 애플페이, 벤모(Venmo) 등과 같은 편리한 디지털 송금 및 결제 서비스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중국의 보급률과 편의성에는 빗대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블록체인까지 잡아먹겠다는 깃발을 든 것이다.
미국의 IT 기업 중에서도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는 곳들은 많다. 대표적으로 페이스북이 있다. 그러나 미국 의회는 ‘리브라’라는 페이스북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 프로젝트에 대해 강력한 반대를 하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개인정보를 캠브리지 애널리티카(CA)라는 회사에 넘기면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멍에가 씌워져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이 때문에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먼저 할 것”이라고 의회를 향해 주장하고 있다. 그가 말한 대로 중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디지털 화폐 전자결제 시스템을 준비해 왔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리고 2020년이 되면 그 결과물이 곧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의회 입장에서는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지원해 주기도, 그렇다고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블록체인 기술을 막을 뾰족한 방법도 없는 상태다. 전 세계 경제의 모세혈관에 구석구석 박혀 있는 달러화에 대한 패권을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에서 쥐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디지털 화폐를 도입하여 그 파워를 흔들리게 할 수도 없다.
알리바바의 핀테크 계열사인 앤트파이낸셜
▶중국, 2020년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 결제 서비스 내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빠르면 2020년 초 디지털 화폐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치판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 부이사장은 지난 10월 말 상하이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인민은행이 세계 최초로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잭리 HCM캐피털 매니징파트너는 지난 11월 11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디지털 화폐 전자결제 시스템이라는 프레임워크를 빠르면 2~3개월 이내에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시중은행과 알리페이, 위챗페이의 제3결제 네트워크와 연결해 중앙정부 발행 디지털 화폐를 유통시킨다는 설명이다.
오랫동안 미국의 달러화에 버금가는 위안화의 패권을 노려왔던 중국은 전 세계 최초의 디지털 화폐 발행을 통해 전기를 마련하려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위안화가 디지털 화폐로 발행될 경우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 컨트랙트가 가능하고, (비록) 위안화지만 달러화와 같은 신뢰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불편하게 하는 중국의 이런 화폐 혁신에 대해 미국은 군사력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달러화 패권은 결국 군사력이 뒷받침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군사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각종 여론몰이를 미국 의회에서 진행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반면 유럽을 위시한 다수의 국가들이 위안화에 대응하는 디지털 화폐를 자체 발행하는 기회들을 엿보고 있다. 일례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7월과 10월 연이어 디지털 화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서기도 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총재는 지난 7월 파이낸셜타임즈와 인터뷰를 통해 디지털 화폐 발행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발언했다. 태국 등에서도 디지털 화폐로 은행 간 거래가 시범적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