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헌터’ 유순신의 Upgrade Your Career] (2) 당신은 누구십니까? 업적 중심 이력서 준비를
입력 : 2014.09.26 16:21:52
88서울올림픽이 끝난 후 전 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시장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소비재 산업, 즉 먹고 입고 느끼고 즐기는 것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한국 진출을 서둘렀다. 그 무렵 헤드헌팅 산업으로 들어온 필자는 외국계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추천하느라 1990년대 초반을 바쁘게 보냈다. 코카콜라, 나이키, 월트 디즈니, 샤넬, 맥킨지컨설팅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들이 한국에 첫발을 디딜 때 필요했던 초기 인원부터, 나중에는 부서별 책임자까지 추천하는 일을 맡아서 했다. 그 당시 외국인 책임자들 대부분은 필자에게 “한국인은 경력기술보다 학교나 출신지(고향)에 더 중점을 두고 이력서를 쓰는 것 같네요. 우린 이 업무를 잘할 수 있는 경력자가 필요합니다. 업적과 경력사항이 상세하게 보완된 이력서를 다시 제출해 주세요”라고 요청하곤 했다. 1990년대 고객사가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었다면 2000년부터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부 인재를 수혈하기 시작한 국내 대기업으로 바뀌었다. 이어 2005년부터는 낙하산의 줄을 과감히 끊고 개혁을 위해 민간인 출신 CEO를 영입하고자 하는 공공기업, 2010년을 지나면서는 후임구도가 정해지지 않은 중소와 중견기업의 전문경영인 추천까지 다방면으로 점차 확장되었다.
나의 상업적 가치를 알려주는 최상의 도구
국내 대기업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현재는 자문역을 하는 A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신문에서 공기업 사장 공모 기사를 봤는데 응모하는 것이 맞을지 의논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공공기관은 미리 후보자를 내정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괜한 고생만 하는 것이 아닌지, 이력서를 한 번도 써보지 않았는데 어떤 방식이 좋을지, 자기소개서, 경영계획서뿐만 아니라 경력·학력증명서까지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은데 열흘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 다 구비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A씨는 “한평생 면접관의 위치에만 있어 보았지 구직자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일만 해왔지 30년 동안 내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깊이 생각한 적도 없을 뿐더러 다양하고 많은 경력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구직 의지는 있었지만 재취업이라는 전쟁터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두렵고 막막한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A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년 전 중동지역의 건설 전문가들이 떠올랐다. 잘나가던 두바이 건설 경기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치면서 상황이 어려워지자, 한국 내 일자리 가능성을 타진하는 건설 전문가들의 이력서가 인터넷으로 물밀듯이 들어왔었다. 부동산 디벨로퍼인 B씨는 그동안 자신이 수행했던 프로젝트별 성과와 사진을 총망라해 파워포인트로 빽빽하게 정리한 50여 장의 자료를 보내왔다. 한눈에도 그가 어떤 인재인지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필자는 B씨가 개발하고 관리한 프로젝트를 상세하게 볼 수 있었고, 그가 어떤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경력을 개발해왔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당시 시장에 적합한 자리가 나오지 않아 그를 바로 기업에 연결시킬 수는 없었지만 몇 달 후 신도시 초고층 빌딩의 수주와 개발, 관리를 총괄할 글로벌 인재를 찾는 의뢰가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B씨였다. 그의 화려하고도 정교한 포트폴리오 형식의 이력서는 쉽게 잊힐 수 없는 강렬한 것이었다.
직장인에게 가장 큰 무기는 경력이다.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방식으로 프로젝트들을 수행했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릿속에만 있는 경력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경력이고,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것이 바로 이력서이다.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취업 시장을 전쟁터에 비유한다면 이력서는 ‘총과 실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에 나갈 때 기름칠이 잘되어 반짝반짝하게 닦인 무기는 필수사항이다.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이렇듯 자신의 전문성과 경력을 상세하게 기술한 이력서는 취업 시장에서 전쟁터의 총과 실탄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이력서는 직장인이 자신의 가치와 독특함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최상의 도구이며 몸값을 흥정할 수도 있는 최고의 협상카드이기도 하다.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두 종류의 이력서
제출된 이력서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현격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대다수의 분들은 정년퇴직 후 ‘아직도 건강하니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이나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재취업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단 한 장의 이력서만을 내민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느 회사에서, 어떤 직급으로 재직했는지 간단히 칸만 채워놓은 이력서 달랑 한 장뿐이다. 이런 이력서로는 경력을 파악할 수 없어 다시 작성해달라고 요청을 하면, “내가 3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떻게 하나하나 다 기억을 할 수 있습니까?”라는 안타까운 답변이 돌아온다. 심지어 이력서를 처음 써본다며 필자에게 ‘전문가이니 대신 써달라’는 요청을 하여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구직자의 ‘셀링 포인트’를 알아야 적합한 기업을 물색하여 추천할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정된 정보만 기입되어 있는 이력서를 보면 후보자의 숨어 있는 강점 찾기 게임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조사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텐데… 나를 모시고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이력서까지 제출하라고 하느냐’며 불쾌감을 표시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분들은 대개 고위직으로, 지난 몇 년간 주위에서 ‘척하면 압니다’ 정신으로 떠받들어준 분들이다. 반면에 업적, 수행 프로젝트, 수상내역, 회사에 기고한 글 등 자신의 모든 족적을 클리어파일 한 곳에 정리해서 이력서를 마치 광고대행사의 포트폴리오처럼 만드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똑똑한 젊은 친구들은 상사의 칭찬을 문서(Complimentary Letter)로 받아 이력서의 첨부 자료로 준비하는 명석함도 보인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장점, 단점, 기회, 위기 등을 분석한 역량평가서(SWOT분석)까지 제출하는 직장인도 있었다. 이들은 잘 정리된 이력서가 곧 자신의 얼굴이며 시장 가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의 “작년의 이력서와 금년의 이력서가 똑같다면 실패한 직장인이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매년 이력서 업데이트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평소 어떤 일을 해왔는지 상세하지만 명료하게 기입해 두는 것, 객관적인 성과와 실적을 미리미리 기입해 두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 어느덧 기억나지 않는 지나온 30년이 될 수 있다.
나 자신의 경력을 세일즈한다
헤드헌터로서 하루에도 100통 이상의 이력서를 메일이나 SNS, 지인 등 여러 경로로 받고 있지만, 눈에 띄고 기억에 남는 이력서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력서는 후보자를 어느 기업의 추천 대상으로 고려하거나 향후 추천 가능성이 있는 인재로 기억할 때 가장 중요한 분류기준이 된다. 간혹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이력서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나 헤드헌터에게 이력서는 그 후보자 자체이다. 이력서를 통해 후보자를 파악한 후 인터뷰를 하기 때문에 첫인상을 결정하는 이력서는 매우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학 석사(MBA) 과정에서는 이력서 작성을 위한 커리큘럼이 따로 있을 정도로 중시된다. 제대로 된 완벽한 이력서를 만들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다시 작성하고, 지속적인 검토 과정을 거친다. 효과적이고 차별화된 이력서를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력 사항을 통해 셀링 포인트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어떤 회사에서 일했느냐보다는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 담당했으며, 어떤 실적을 올렸느냐를 중점적으로 밝히는 것이 좋다. 구제적인 숫자를 나열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자신의 역할로 인한 매출 증가액, 시장점유율 변화 추이 등을 적으면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이력서가 준비된 후, 약간의 부지런함을 더한다면 더 유리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다. 바로 상대방의 구미에 맞는 ‘맞춤 이력서’로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외에 직무수행계획서를 요구하는데, 이런 정보를 미리 알고 대비한다면 한층 더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자신의 경력사항 중 가장 핵심적인 정보만 담는 것이 중요하며, 직무와 관련 없는 정보, 즉 회사 내 실력자와의 관계, 급여 조건, 나열된 단체모임, 종교 등은 쓰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단 한 장의 이력서가 성의 없다고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장황하거나 과장된 내용들 또한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
직장인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는 이력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퇴직을 앞두고 그제야 부랴부랴 쓰기 시작하면 이미 늦는다. 경영 구루(guru)로 불리는 다니엘 핑크는 자신의 저서 <파는 것이 인간이다>에서 “당신도 지금 무언가를 팔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판매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판매를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구비되어야 할 서류가 바로 이력서임을 인지하자. 자신을 상품화해서 고객에게 판다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경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쌓아왔던 업적과 업무 성과를 매년 업데이트해놓은 이력서는 그 무엇보다 값진 가치로 빛을 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