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mark] 노먼 포스터의 거킨빌딩
한미글로벌 공동기획 ⑤ 세계의 건축·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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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7.01 15:07:50
수정 : 2012.04.05 14:06:24
‘전통’과 ‘첨단’의 조화로운 공존
도시의 경쟁력 확보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도시 이미지다. 차별화된 도시의 이미지는 관광객 유치 및 투자 자본의 이동을 통해 도시의 성장과 발전에 원동력이 된다. 따라서 ‘도시재생’이나 ‘도시정비’ 사업 등을 통해 세계의 도시들은 경제적 부흥과 활력 회복을 도모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도시재생 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일본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21,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영국 런던의 카나리워프, 독일 함부르크의 하펜시티 등이 대표적이다.
런던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존 이미지 쇄신을 위해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한다. 2000년 런던시장에 당선된 켄 리빙스톤은 21세기 런던의 적극적인 변화 중 랜드마크를 통한 도시 이미지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바꿈과 동시에 탄생한 건물이 바로 ‘거킨빌딩(The Gherkin Building)’이다.
2004년 준공 당시 거킨빌딩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리게 된다. 역사도시 런던의 도시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함께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인 목적으로 지어진 박스형 건물에서 탈피해 새로운 대안을 제안했다는 긍정적 평가였다. 부정적인 시선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경제적 논리로부터 구현돼 왔던 타 고층건물과는 대조적으로 친환경적 디자인의 도입과 에너지 절약이라는 원칙에 따른 거킨빌딩의 경제적 성취와 더불어 기존의 런던 도시경관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킨 면에서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받게 됐다.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의 그동안의 고층건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거킨빌딩은 센트럴 런던의 금융 중심가인 더 뱅크지역에 위치하며 1992년 IRA(북아일랜드 독립주의자)에 의해 폭파된 발틱해운거래소의 부지에 위치하고 있다.건물의 본명은 주소를 그대로 차용해 ‘30 St. Mary Axe’이지만 원추형의 건물 형태가 오이를 닮았다 하여 ‘The Gherkin Building’으로 더 유명한 이 건물은 스위스 보험회사인 SWISS RE의 본사다.
높이 180m의 41층 거킨빌딩은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에 의해 설계됐다. 현재는 테이트 모던, 대영박물관을 제치고 런던 최고의 사랑받는 건축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사업 초기에 20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의 ‘전통’과 ‘고전’이라는 도시의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행정당국으로부터 건립승인을 거부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1996년 386m의 밀레니엄 타워(Millenium Tower)가 제안됐으나 반려되고 2000년 8월 거킨빌딩의 건축허가 승인이 났다. 이는 런던 시내에서 25년 만에 고층건물의 승인으로 기록된다. 거킨빌딩은 런던에서는 여섯 번째, 센트럴 런던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빌딩으로 기록되고 있다. 연면적 약 4만7950㎡의 거킨빌딩은 오피스와 상가 아케이드로 구성돼 있다. 건물 최상층에는 런던 시내를 360도의 파노라마로 제공하는 특별한 공간인 클럽(CLUB)이 계획돼 있다. 원추형 건물의 기본 형태와 구조적인 특징으로 인하여 모든 방향에서 막힘없이 런던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친환경적 관심에서 탄생한 거킨빌딩
거킨빌딩의 친환경적 접근은 외부 형태에서부터 시작된다. 주변건물의 일조권 확보를 고려한 원추형 이미지의 도입으로 주변의 저층건축물과 대비되는 위압감을 저감하며 이는 사각형의 블록보다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목적에 부합한다. 또한 오이 형태가 건축물의 반사를 줄이는 동시에 투명성을 향상시킨다. 저층방향으로 좁아지는 평면은 대지의 공공성을 최대화해 주변과 소통한다.
이러한 외형은 사각형의 타워에 비해 그라운드 레벨(Ground Level)로 편향되는 바람을 감소시킴으로써 보행자의 편의를 확보한다. 독특한 자연 환기 시스템을 구동하는 외부 압력 차이를 만들어 낸다. 개념상으로 거킨빌딩은 생태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구현한 기존 포스터의 작품 중 코메르쯔방크(Commerzbank) 본사(프랑크프루트 소재)와 벅민스터 플러(Buckminster Fuller)와 함께 진행했던 Climatroffice이론을 보다 발전시킨 것이다.
포스터는 사각형의 사무실과 원형의 형태를 결합시켜 중앙의 서비스 코어에서 외부를 향해 방사되는 듯한 6개의 ‘Fingers(손가락)’과 같은 평면을 만든다. 이 손가락들은 상부로 올라가면서 부피가 줄어든다. 그 목적은 자연광의 투과를 최대화하고 자칫하면 진부한 사무실이 될 수도 있는 공간의 전망을 최적화하기 위함이다. 중앙 코어에서 사무실 외벽까지의 최대 깊이는 14m다.
손가락 사이에 형성된 삼각형 공간의 첫 인상은 마치 현기증을 일으키는 무서운 협곡처럼 느껴지지만 연속으로 5도씩 회전하면서 형성된 계단식 아트리움은 역학적인 효과를 만들어 낸다. 고층빌딩에서 굴뚝효과는 일반적으로 부정적 효과를 연상시키지만 거킨빌딩은 이를 자연환기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외벽은 이중유리로 계획돼 있다. 여름에는 이중유리 속의 공기가 외부 온도보다 높아 아래에서 위로 공기가 흐르고 겨울에는 공기의 흐름을 막아 이중유리 외벽 속의 공기는 단열재로 작용하게 된다. 이를 포스터는 ‘Lung(폐)’라 표현하며, 이러한 기능적 아트리움은 외부 창호의 나선형 형태로 이어진다. 실제 사용 후 평가에 따르면 일반적 오피스 빌딩에 비해 40%에 달하는 에너지 절감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건물 착공 당시에 9.11테러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테러로부터의 위험을 고려했다.
내구성이 강하고 견고한 삼각도형을 기반으로 하여 외부구조를 완성했다. 전동으로 구동하는 견고한 외부 창호와 약 5500장의 유리로 이루어진 외장 덕분에 사무실 내부는 풍부한 자연채광을 도입해 주간에는 별도로 조명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렇듯 거킨빌딩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친환경적 디자인이라는 거시적 관점과 더불어 런던의 고전 건물들과의 시각적 연계, 즉 도시경관에 대한 건축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2004년 포스터는 이 거킨빌딩으로 영국 건축계에 공헌한 건축물의 건축가에게 수여되는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의 스털링상(Stirling Prize)을 수상하게 된다.
홍콩 앤 상하이 은행 (Hongkong & Shanghai Bank Headquarters, 1979~1986)
포스터가 국제적으로 건축계에 처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프로젝트다. 홍콩 앤 상하이 은행이 5억 달러에 이르는 이익을 창출하면서 지역은행에서 일약 세계적인 은행으로 성장하면서 시작됐다. 지하 4층 지상 44층(높이 약 180m)의 철골조 건축이다. 본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구조형식에 있다. 내부에 별도 지지 구조물이 없이 공간 활용의 극대화 및 태풍과 지진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도록 돛대기둥(mast)과 슈퍼트러스 방식을 도입했다. 이러한 구조형식은 독특한 외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포스터는 건축 기획 단계부터 발주처의 요청에 의해 풍수사상에 입각한 설계를 진행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1층 주출입구의 위치를 들 수 있는데 일반적인 은행 건물의 경우 1층에 은행 창구를 배치함과는 달리 본 설계는 2층에 은행 창구가 배치돼 있다. 이는 지기산에서 내려오는 용맥(龍脈)의 흐름을 단절하기 않기 위한 배려이며 원활한 용맥의 흐름을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비스듬하게 설치했다. 최첨단의 조화체인 본 건축물은 자연광을 유입하기 위해 거대한 반사경을 설치하고 바닷물을 냉각수로 이용하여 에너지를 절약했으며, 포스터의 환경친화적 건축 개념을 엿볼 수 있다.
대우전자 본사 (Deawoo Electronic Headquarters, 1995, 계획안)
1995년 대우전자는 세계 5대 가전메이커 진입을 목표로 최첨단 R&D(연구개발) 및 본사 사옥으로 쓰기 위한 탱크주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신사옥 부지 3000여 평을 목동에 확보한다. 그러나 1999년 대우그룹 붕괴에 따른 워크아웃으로 2000년 공사가 중단됐다. 결국 2001년 철골구조까지 마친 신사옥을 매각하게 되면서 안타깝게도 이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포스터는 1995년 서울시와 한국의 상징물로서 대우의 이미지를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높이 172m의 지하 6층, 지상 36층의 연면적 약 15만5000㎡의 사무실·연구소·문화공간을 포함한 대우전자 사옥을 계획한다. 끝이 뾰족한 형태의 이 고층 건물은 철골조와 콘크리트조의 혼합한 구조로서 주 철골 프레임은 두 개의 내부 기둥과 두 개의 외부 기둥으로 구성되어 건물의 곡선형 파사드로 이어진다. 초고층 건축물에 대한 시각적 부담감을 상쇄시킨다. 그리고 저층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확보 목적으로 활과 같은 유연한 곡선을 차용했다. 삼중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스킨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시킨다. 조절 가능한 블라인드는 태양열 흡수를 차단하고 부분적인 자연 환기를 위해 개폐창문을 도입했다. 포스터의 환경 친화적인 성향과 구조적 대담성, 열정적 엔지니어의 상상력을 반영한 대우 사옥은 비록 계획안으로 남았지만 여전히 건축가들에게 수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베를린 국회의사당 (New German Parliament, 1992~1999, Reichstag, Berlin)
2차 세계대전 베를린 대공습으로 인해 폐허가 된 후 복원과 대화재를 거치는 등 수난의 연속이었던 옛 독일 제국 의회를 의사당으로 개축하는 프로젝트다. 1999년 포스터는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다. 불타버린 석재의 돔을 투명하게 재건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개폐장치가 설치된 둥근 유리 돔은 햇빛을 의사당 내부로 굴절시키고 자연 환기 시스템을 지원함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하는 생태학적 장치이며 폐쇄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개방적인 국회의사당의 건립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포스터는 민주주의의 제반 과정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고 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에 입각하여 공공공간을 투명한 지붕(돔)으로 계획했다. 유리로 만들어진 돔의 내부 벽에 형성된 램프를 따라 올라가면 베를린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며 유리바닥을 통해서는 지하 의사당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높은 관람석에 위치한 일반 대중은 가장 전망 좋은 위치를 확보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의회의원들보다 상징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게 된다는 의미로 이런 장치를 통해 포스터는 국민의 힘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1999년 포스터는 이 작품으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게 된다.
런던 시청 (London City Hall, 1998~2002)
2002년 완공된 템즈강 남쪽에 위치한 런던 시청은 런던 타워와 함께 템즈강 남쪽의 랜드마크로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기존의 딱딱한 공공청사의 이미지에서 탈피한 둥근 구 형태의 건물은 강변의 자갈을 모티브로 한 독특한 입면으로 인해 모든 면에서 정면성을 가지게 된다. 일명 ‘유리달걀(The Glass Egg)’로도 불린다. 10층 규모의 45m 높이의 런던 시청은 친환경적 건축 환경 구현이라는 포스터의 건축사상의 결과물이다. 동일한 규모의 육면체 건축물에 비해 표면적이 약 25%정도 절감되며 건축물을 남향으로 기울게 설계해 태양의 일사량에 노출되는 면을 줄이고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었다. 인텔리전트 빌딩(intelligent building)에서 간과하기 쉬운 자연환기를 완벽하게 도입함으로써 한여름에도 냉방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공사비 및 건물의 유지관리비용 또한 많은 절감 효과를 유발한다. 기존의 런던 타워 브리지의 고전적인 이미지와 런던 시청의 현재적인 이미지의 강한 대비감이 새로운 런던의 랜드마크가 됐다. 동시에 템즈강 남측 공공개발의 촉매 역할을 한다.
■ 자연과 첨단기술의 연금술사
1935년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 출생인 노먼 포스터는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하이테크(High-Tech Architecture)의 거장이다. 맨체스터 대학에서 건축과 도시를 공부한 후 미국 예일대학에서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와 함께 수학하며 인연을 맺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두 사람이 모더니즘에 심취하게 된 계기가 됐다. 1963년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 사무소를 냈다. 리차드 로저스와 그의 부인 수 로저스(Su Rorers), 후에 포스터 부인이 된 웬디 치즈만(Wendy Cheeseman) 등과 ‘Team4’라는 이름으로 실무를 시작했다. 5년이 채 못 되어 각자의 사무소를 열었지만 당시 함께 설계한 몇몇 독창적인 주택들은 이후 이들의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됐다.
1967년 사무소 포스터 어소시에이트(Foster Associates, 노만 포스터 앤 파트너스의 전신) 설립 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포스터는 창립 이래 1983년 왕립건축사협회(RIBA)상을 포함해 199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했다. 약 130여 개에 달하는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1968년부터 1983년 미국인 건축가 벅민스터 풀러가 타계하기 전까지 그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건축물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과 관심은 환경친화적 경향을 보이게 된다. 사무엘 베케트의 극장 프로젝트를 포함해 친환경적 디자인의 발전에 촉매가 된 작품들을 만든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그만의 주체적 디자인 성향을 확립해 나가면서 현재까지 지속가능한 디자인(Sustainable Design)의 접근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알루미늄·철·유리 등 하이테크적인 건축양식의 대표적 건축가로 인식되는 포스터의 건축 접근 방식의 근원은 의외로 생태학적 관심에로 귀결되고 있다. 포스터는 에너지의 보존, 내구성에 대한 관심, 즉 생태학적 문제와의 불가분의 관계에서 근거한 건축적 접근에서 그의 모든 작품은 시작된다. 포스터는 우리에게 홍콩 상하이은행(HSBC Headquarters)을 통해 하이테크의 선구자로 그 명성을 떨치게 된다. 제3런던국제공항(스텐스테드 소재), 윌리스 페이버 앤 뒤마 본사(영국 입스위치 소재, 지정문화재), 런던 시청(런던 소재), 밀레니엄 브리지(런던 소재), 거킨빌딩(런던 소재), 빌바오 지하철(빌바오 소재) 등 수많은 작품등과 함께 왕성한 활동 중이다.
[박경휘 / 한미글로벌 ENG팀 과장·건축사 parkkh@hmglobal.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호(2011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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