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여자친구를 기다리던 남자가 여친이 왔는데도 계속 스마트폰에 얼굴을 처박고 있다. 페이스북을 하는지 트위터를 날리는지 “잠깐만…. 다 됐어!”를 외칠 뿐 여친에겐 건성으로 대한다. 말싸움이 벌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또 어떤 여자는 남자친구와 마주 앉아서도 미니고치 같은 모바일 육성 게임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거 나중에 좀 하면 안 돼?”라는 남친의 불평에 돌아오는 한마디는 “지금 미니고치 씻기고 먹여야 할 시간이란 말이야!”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남친도 못 챙기면서 사이버 세계의 가상 동물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아이러니가 펼쳐진다.
이 사례는 꾸며낸 것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것은 2009년 하반기 아이폰이 국내에 도입되면서다. 가장 큰 변화는 우선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SNS)가 활성화된 것이다. 그 결과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용도 뿐 아니라 광고와 같은 상업적 커뮤니케이션에서도 SNS를 기본 미디어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팬페이지(FanPage)와 같은 형식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브랜드와 친숙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닐 정도로 SNS의 활용은 일상화돼 있다. 그 결과 많은 스마트폰 광고들은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아주 스마트하게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해 왔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장소 저 장소 이동하면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다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장소에서든 원하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해결사 스마트폰이 인간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특히 일상생활 속에서 스마트폰의 중독은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많은 해를 끼치고 있다. 일단 사람들을 산만하게 만든다. 계속 문자를 주고받는 것은 기본이고 페이스북해야지, 트위터 타임라인에 글 달아야지, 틈틈이 게임도 하면서 궁금한 것은 바로바로 구글에서 검색해야지…. 일단 스마트폰을 손에 잡는 순간 해야 할 일은 태산처럼 많아진다.
How to live smart
얼핏 보기엔 멀티태스킹의 종결자처럼 비춰질지 모르지만 이러한 행태가 습관화되면 한 가지에 깊이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주의자들을 양산해 낼 우려도 있다. 실제로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산만한 뇌 활동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정말 스마트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증폭될 즈음 우리 주위에서 ‘How to live smart’라는 이색적인 캠페인이 눈에 띄었다. 이 캠페인은 먼저 여러 장소에 나붙은 핑크빛 경고 스티커를 통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가령 지하철에 붙어 있는 스티커 안에 적힌 내용은 ‘페이스북만 들여다보지 말고 주위 사람 얼굴도 돌아보세요’였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인간의 삶을 되찾자는 취지인데 이 스티커의 경고문은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경고문구와 달리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담담하게 자기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상황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스티커는 다양한 장소에 어울리는 문구를 통해 널리 회자되고 있다. 회의실엔 ‘주식체크만 하지 말고 팀장님 시선도 체크하세요’, 도서실엔 ‘여친에게만 문자 날리지 말고 엄마에게도 날려 주세요’, 엘리베이터 안엔 ‘방귀만 참지 말고 음악도 좀 참으세요’, 카페엔 ‘트위터만 날리지 말고 뻐꾸기도 날리세요’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은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여러 장소에 나붙은 이 같은 스티커는 일반인의 카메라에 포착돼 블로그나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나돌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이는 삼성 갤럭시폰이 새롭게 펼치는 일종의 문화캠페인임이 밝혀졌다. 이후 요즘 대세인 아이유가 등장하는 인터넷 동영상이 캠페인 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유포되면서 이 캠페인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삼촌들의 로망’이란 말을 회자시킨 이 동영상은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아이유의 뮤직비디오에 홀딱 빠져 있던 한 청년이 실제 인물 아이유가 버스에 타서 자기에게 말을 거는 것도 무시하고 있다가 그녀를 놓치고 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청년의 앞좌석에 붙어 있는 스티커엔 ‘뮤비 속 그녀만 보지 말고 옆에 있는 그녀도 봐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또 캠페인 사이트(www.howtolivesmart.com)에 들어가 보면 스티커를 활용한 유저 참여 프로그램이 있는데, ‘OOO 말고 OOO 하세요’라는 스티커의 공란을 채워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릴 수 있도록 돼 있다. ‘야근할 때 담배만 챙기지 말고 비타민C도 챙기세요’, ‘돈 생기면 명품 백만 사지 말고 나한테 꿔간 돈도 좀 갚으세요’ 등 일반인이 제작한 재치 있는 스티커들이 나돌고 있다.
‘How to live smart’ 캠페인은 스마트폰의 강점을 강조하고, 그래서 더 많은 제품을 팔아야 하는 메이커가 그 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역발상의 신선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주로 제품의 특장점을 알리는 데 힘을 쏟아왔던 삼성 모바일이 이러한 새로운 문화캠페인을 펼친다는 사실만으로도 호응을 얻을 일이지만 무엇보다 이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아이폰의 급부상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선두를 뺏긴 상황에서 뒤늦게 스마트폰 마케팅에 돌입한 삼성 입장에서는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 문화의 허점을 공략할 필요도 있었을 거란 판단이 든다.
모쪼록 ‘How to live smart’ 캠페인이 단순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스마트폰의 문화를 이끌어 갈 기본 철학이자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비춰 보게 하는 거울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짜증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