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퐁피두센터는 책과 예술 그리고 근대미술품을 위해 1970년에서 1977년에 걸쳐 지어졌다. 1969년 샤를 드 골에 이어 조르주 퐁피두가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자 그는 파리에 근대미술관, 공공도서관, 디자인센터, 음악·음향학 실험연구소로 구성된 독특한 문화센터를 건립하기로 결심했다. 네 가지의 큰 시설은 파리 중심에 하나의 건물로 들어설 계획이었다. 보부르라고 불리던 지역은 당초 빈민가였으나 1930년 철거가 진행되면서 그 자리에는 1만8000평방미터에 달하는 광장이 남았고 1960년대까지 주차장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곳은 퐁피두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을 위해서 최적의 장소였다.
Photo by Loz Flowers
이 프로젝트를 위해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국제 설계공모가 열렸는데 저명한 건축가인 오스카 니마이어, 장 푸르베, 필립 존슨, 세 사람이 심사위원단을 이루어 681개에 이르는 공모작에 대한 심사작업을 진행했다. 많은 수의 공모작 중에는 온갖 종류의 설계안들이 있었는데 그 중 493번 작품만은 대상 부지 중 절반에만 건물을 배치하고 나머지는 광장으로 남겨두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두 젊은 건축가, 영국의 리차드 로저스와 이탈리아의 렌조 피아노의 안이었다.
“처음 이 설계 공모를 보았을 때 우리는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건물이 마치 대통령을 위한 기념물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건물의 규모는 휴먼스케일을 벗어나는 것이었으며 우리는 파시즘을 위한 디자인은 하고 싶지 않았다.”(리차드 로저스)
“매번 사람들이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가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설계공모의 취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설계안은 마치 선생님에게 혀를 내밀고 있는 학생과 같은 것이었다.”(렌조 피아노) 프로젝트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외관으로 인해 몇 년간 온갖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법정소송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들 젊은 건축가는 구스타브 에펠이 겪은 것과 같은 곤욕을 겪었다. 정유소, 비행기 격납고, 고철더미, 괴물 등 작품에 대한 온갖 비아냥이 쏟아졌다.
구조 시스템
이 밝은 색으로 칠해진 철제구조물은 글자 그대로 고풍스러운 수도의 중심부에서 불쑥 솟아 나온 것 같이 보인다.
그 모티브는 영국의 건축가 그룹인 아키그램의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건축개념은 석유시추선, 로켓발사대, 공상과학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유연하고, 변형하기 쉽고, 움직일 수 있고, 가볍고, 재미있는 것이었다. 이들 아키그램은 건축적인 도발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며 단지 철골 등 금속재료를 즐겨 사용하는 영국건축의 전통을 이어 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영국과는 달리 콘크리트가 대세였다. 퐁피두센터에서 콘크리트는 대지 전체에 걸친 지하 세 개 층의 주차장, 방음 처리된 콘서트홀에만 쓰였으며 그것이 사용된 콘크리트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상부에서는 거대한 철제구조물 그 자체다.
서로 다른 네 가지의 철제 부품들이 한 세트를 이루어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전체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외부로 노출된 구조 프레임은 아키그램의 작품과도 같이 내외부가 뒤집혀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의 외곽을 이루고 있는 유리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반사하면서도 흡수하고 있다. 어떤 부분에 이르면 유리는 사라지며 구조 프레임을 노출시켜 마치 건설현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Plug-in University Node, Archigram 기능적 요소들의 배치
퐁피두센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외 건물의 기능적 요소들은 독특하게 배치되어 있다. 보통은 건물의 안쪽에 있어야 할 부분들이 모두 건물 바깥쪽에 배치되었다. 광장을 내려다보는 서쪽 입면의 외부에 복도를 마련하고 이들을 잇는 거대한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그 바깥쪽에 배치했는데, 이 에스컬레이터는 투명한 튜브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이동하는 방문객들의 모습은 마치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광장을 향하고 있는 면이 놀이동산과 같다면 거리를 향한 뒤쪽 면은 공장과 같다. 거리로 노출된 화물 엘리베이터, 공조기, 전기배관, 이들 모두 다양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청색은 물, 녹색은 공기, 황색은 전기, 적색은 운송장비 그리고 엘리베이터 기계실은 붉은 상자에 담기고 공조에 필요한 열교환기는 하얀 버섯모양을 하고 있다.
자유로운 내부공간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 (Photo by Hideyuki Kamon) / 장 마리 티바우 문화센터 (Photo by Fourrere)
기계와 같이 퐁피두센터는 완벽한 의미의 ‘공간’을 생산한다. 건물의 기능적 요소인 복도와 설비 등이 모두 구조체의 바깥쪽에 배치된 까닭에 구조체 안쪽의 축구장 두 배에 이르는 7500평방미터 공간을 완벽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화장실과 소방법규에 의한 방화셔터를 제외하면 기둥, 배관, 계단, 벽, 그 어떤 것도 없다. 사무실 등을 위한 구획이 필요할 경우 천정의 철제구조물에 고정시켜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 구조체가 없는 내부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퐁피두 대통령이 이루기 원했던 근대미술품의 영구보관과 전시, 디자인센터, 공공도서관 등 서로 다른 기능들이 조화롭게 한 건물 내 공존이라는 목표에 완벽하게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으나 결코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우
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빈 공간을 만들고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지켜 볼 뿐이었다.”(렌조 피아노)
로저스와 피아노는 방문객들에게 벽이라고는 없는 완벽한 공간의 자유를 제공했으며 서로 다른 시설들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구획들이 설치 혹은 해체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임시 전시공간을 상상했다. 그것은 끊임없는 공간의 변화를 가능케 했다. 문화센터 내 사무실의 경우 직원들의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해 2m 높이의 구획을 설치해 기능적으로 대응했으나 음악·음향학 실험연구소의 경우에는 완벽한 소음의 차단과 무음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차음벽이 필수적이었으므로 퐁피두센터 외부에 별도로 설치하기로 했다.
퐁피두센터의 자유로운 공간은 도서관에 있어서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1만5000평방미터에 걸친 도서관 내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벽체라고는 서가뿐이며 그 어떤 구획도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1500명이 넘는 방문객은 그들이 원하는 곳 어디에서나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최상층에 있는 근대미술품의 영구 보관에 있어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지난 10년 동안 완전히 열린 공간에서 작품들이 햇볕에 노출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은 후 마침내는 전시물의 보호를 위해 건축물의 일부를 다시 디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닫혀 있는 복도와 전시실들 그리고 자연광을 대신할 인공조명을 설치했다.
살아 숨쉬는 광장
이제 퐁피두센터는 문화센터로서만의 역할을 넘어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도시 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조르주 퐁피두의 꿈은 수십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괴물을 수도의 중심에 풀어 놓았다. 그것은 주변 건물보다 두 배나 높으며 파리 어디에서나 보이는 정말로 기념비적인 건물이 되었다.
“물론 퐁피두센터는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우리는 항상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그처럼 거대한 것을 디자인하면서 기념비적이지 않게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우리는 항상 광장을 건물과 같은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도시는 파리만큼 붐볐으며 대지를 모두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렌조 피아노)
퐁피두센터가 지어질 무렵 그 일대 도심의 보행자 공간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하지만 현재 퐁피두센터의 전면광장은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의 이상적인 도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마치 시에나의 피아자 델 캄포와 같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보행자들을 건물 로비로 인도한다. 원래 광장과 건물 로비 사이에는 구분이 없었으나 기후로 인해 현재와 같은 구획이 나눠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조르주 퐁피두센터는 하루 2만5000명 이상의 방문객을 기록하며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을 제치고 파리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 되었다.
■ 1998년 ‘건축의 노벨상’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렌조 피아노
렌조 피아노, 이 천재적인 건축가는 호주 시드니의 주상복합으로부터 일본 오사카만 인공 섬 위의 간사이 국제공항, 베를린의 포츠다머 플라츠 재건 마스터플랜, 스위스 바젤의 베일러 재단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 왕성하게 그의 재능을 보여 주었다. 주택, 아파트, 사무실, 쇼핑센터, 박물관, 공장, 스튜디오, 공항터미널, 전시장, 극장, 교회, 다리, 선박, 도시계획, 재개발 사업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렌조 피아노는 1937년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 네 명의 아저씨 그리고 형제 모두 건설업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는 건축가의 길을 택했다. 그의 작품에는 건설업을 하던 가족들로부터의 영향으로 무언가를 실제로 짓고 만들어 낸다는 중요한 전통이 깃들어 있다.
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건축학교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로부터 건축가(architect)로 그치지 말고 건설가(builder)가 되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것이 ‘렌조 피아노 설계사무소’가 아니라 ‘렌조 피아노 건축공방(Renzo Piano Building Workshop)’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곳은 단지 건축 디자인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실험하는 곳이다. 렌조 피아노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가업을 이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1980년 사무실을 연 이래 현재 파리, 제노아 그리고 베를린 사무실에서 총 100여 명의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1970년 오사카 박람회 이탈리아 산업관 프로젝트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 플로렌스에서 태어난 영국 건축가 리차드 로저스를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이 두 건축가는 여러 방면에서 같은 점이 많았으며 한 엔지니어링 회사의 권유로 함께 퐁피두센터 설계 공모에 도전하여 당선되었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
오사카 지역을 위한 새로운 국제공항의 부지로 15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인공섬을 오사카 만에 조성하고, 국제 설계공모를 통하여 렌조 피아노가 간사이 국제공항의 설계자로 선정되었다. 오브 아럽의 엔지니어와 함께 공항건물 지붕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류의 연구를 통해 그 형상을 결정하고 연속적으로 이어진 유려한 곡선의 지붕은 덕트 없이도 실내 공기가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 공기역학적으로 디자인 된 지붕은 그야말로 지붕 상하부 모두의 공기흐름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간사이 국제공항은 수학과 기술이 만난 정교한 장치라고 할 수 있으며 강한 인상을 남기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인공섬 위에 펼쳐져 있는 공항건물의 지붕은 마치 거대한 글라이더처럼 보이며 지상에 내려앉은 비행기와도 같다. 공항건물의 배치는 항공기의 이동과 승객의 탑승을 위해 최적화되었다.
42개의 항공기 탑승교와 1700평방미터에 이르는 승강장을 통해 하루 10만명의 승객을 처리할 수 있다. 간사이 국제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다.
장 마리 티바우 문화센터
뉴칼레도니아 누메아의 티바우 문화센터는 렌조 피아노의 작품 중 가장 독특한 것 중 하나다. 그는 현지 카나카 원주민들의 전통을 현대어로 표현할 방법을 찾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한다. 디자인 콘셉트는 서로 다른 크기와 기능을 가진 10개의 구조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이 10개의 구조물은 다시 전시를 위한 공간, 사무공간 그리고 토속무용, 회화, 조각, 음악 등을 위한 전통문화 공간 등 세 개의 작은 마을로 나뉜다. 문화센터의 건설은 원주민들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연환경과의 조화에 중점을 두었다. 목재를 이용해 만들어진 오두막을 닮은 구조물은 원시적인 형태를 가졌으나 최신 기술로 가득찬 그야말로 전통의 현대적인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