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BK동양성형외과는 꽤나 널리 이름이 난 곳이다. 날렵한 형세의 15층 본점 건물 3층에 위치한 조그만 집무실에서 이곳의 대표로 재직 중인 김병건 원장을 만났다. 소박하고 실용적인 인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명성이 널리 드러나 있는 의사답게 깔끔하고 샤프한 인상의 소유자다. 계묘생(癸卯生)의 실제 나이에 비해 무척 동안이고, 금테 안경 속의 차분한 눈빛은 부드러운 가운데 차가움이 배였다.
팔자(八字)를 펼치니 식신(食神)의 성분이 왕(旺)하다. 이 점은 의식(衣食)이 보증된 복명(福命)임을 시사한다. 대개 자아가 비교적 강하고 자신의 가치나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의식이 강한 성정의 소유자들이 많다.
김 원장은 병자일(丙子日) 무술시(戊戌時)에 태어났다. 입하(立夏)가 지난 사월생(巳月生)으로 자사(子巳)의 태지(胎地)에 묘(卯)의 형(刑)이 들었으니 태형이변(胎刑異變)의 꼴이다. 이러면 보통의 사람과는 차별되는 독특한 취향이나 영감이 있다. 인수(印綬)에 해당하는 묘(卯)라는 글자는 양 끝이 뾰족한 매스나 랜싯의 물상으로 여기에 형(刑)이 드니 의사는 곧 타고난 직업이자 직분으로 볼 수 있다. 당연 디테일에 강할 테고 유려한 솜씨로 환자의 기분(氣分)을 살리는 활인(活人), 명의(名醫)의 요건을 다 갖춘 셈이다. 병화(丙火)는 곧 태양과 같으니 겉은 화창하고 이상은 높다.
하지만 내면에는 자수(子水)의 수심(愁心)이 있다. 처궁(妻宮)은 귀한 배우자의 상을 갖췄지만 가정은 적막하다는 얘기다. 십이생초(十二生肖)에 子는 쥐고, 戌은 개다.
민속에 지지(地支) 한 글자에는 비단 하나의 동물만 배속되는 게 아니라 각각 세 마리씩 별러 십이지지 전체에는 총 서른여섯 가지의 동물과 곤충 등이 배당된다. 그래서 子는 쥐인 동시에 박쥐나 제비에 비유되기도 한다. 뒤러(Duerer)의 동판화 <멜랑꼬리아1(Melencolia1)>에는 ‘우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날개를 펼친 박쥐 한 마리와 그 아래로 굶주린 개 한 마리가 누워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박쥐와 개는 침울하고 우울한 기상을 암시한다. 그래서인지 팔자에 자(子)와 술(戌)이 있으면 예외 없이 멜랑꼬리(melancholy)한 기질을 품는다.
필자가 팔자를 세우자마자 김 원장을 바라보며 이런 점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순순히 그렇다고 답한다. 세속적인 성공을 거머쥔 유명 의사도 얼마든지 내면의 우울함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우울한 기운이 침울한 상태로만 파고들지 않고 고독한 가운데 영감이 샘솟기 시작하면 특별한 창의와 독창이 나타난다. 바로 이점이 현재의 업적을 낳고 앞으로의 무궁한 발전의 토대가 되리라 여겨진다. 여러 가지를 치고 쭉쭉 뻗어나갈 기세다.
이제 팔자명리(命理)에서 풍수(風水)로 돌아갈 시간이다. 풍수는 글자 그대로 ‘바람과 물’을 말한다. 바람은 건강, 물은 재물과 직결되는 키워드다. 풍수의 언어는 기(氣)다. 이 기는 바람을 싫어하고 물을 좋아한다. 바람이 세차면 기가 흩어지므로 바람은 피하고 물이 있는 곳에 기가 모이니 물을 기뻐하는 것이다. ‘사람이 좋은 기운만 접할 수 있으면 자연 건강해지고 부자가 된다’는 사유가 풍수의 터 잡기 실천 요강이 됐다. 이와 같이 바람을 잠재우고 물이 드는 장풍취수(藏風取水)가 풍수의 골자다. 건물이나 주택을 지을 때 지세(地勢)가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에 면하여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장풍취수의 전형이다.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배산임수의 남향집을 선호했다. 이런 곳에 살아야 건강을 잃지 않고 부자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부자가 되는 방법이 의외로 간단하다. 좋은 풍수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된다. 땅의 기는 고스란히 그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반영되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잘 살고 번영한다면 그 지역은 대략 생기(生氣)가 활발한 곳으로 보면 얼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자 동네로 이사하는 게 누구에게나 용이한 일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다른 방법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구하면 다 통하는 법이다.
풍수(風水)는 얼핏 동양문화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십상이지만 꽤 오래 전부터 지구촌 전체의 문화 유형이 됐다. 동아시아 일대는 물론이고 서구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풍수 열풍이 일고 있다. 당연한 현상이다. 이 세상에 풍수만큼 건강하고 부자가 되는 쉬운 비결을 제시하는 콘텐츠는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공부를 잘 하거나, 혹은 선행을 통해 복을 구하는 것보다 백배천배 쉬운 게 풍수 실천이다.
서구인들의 풍수에 대한 관심을 가장 쉽게 알아보는 방법으로 지금 당장 인터넷 검색 창에서 풍수의 중국어 발음에서 따온 ‘펑쉐이(fengshui)’를 검색해보면 어느 정도 실감이 난다. 오늘날 풍수는 우리보다 서구인들에게 더 일반적인 문화 코드가 됐다. 일례로 6000만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프랑스에도 풍수 바람이 거세다. 이곳의 대형 서점 프낙(Fnac)에는 ‘펑쉐이’ 관련 서적을 따로 모아놓은 코너가 있는데 그 종류가 독자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독일이나 영국, 오스트리아, 이태리 등의 유럽 각국이나 호주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풍수가 늦게 전파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서양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풍수 컨설턴트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미국부동산업자협회(NAR)는 매년 풍수에 대한 특별 세미나를 열고 있다. 유수한 신문 지면에는 ‘아파트 풍수 인테리어 방법(How to fengshui your apartment)’ 등과 같은 풍수 칼럼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I had my office fengshuied
김병건 BK동양성형외과 대표원장. 단정하고 정교한 현침(懸針)의 실력자 상이다.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실리콘밸리 일대의 기업들 사이에서도 풍수 신드롬이 일었다. 이곳의 신진 거부가 대저택을 구입하면서 부동산 회사에 주문하기를 가격은 따지지 말고 다만 풍수가 좋은 집을 구해 달라고 했다는 것. 그러자 너도 나도 앞 다투며 근무 환경을 쾌적하게 조성하는 풍수를 추종했다. 더욱이 풍수사상을 잘 따르면 재화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까지 번져 바람이 인 셈이다. 여기에다 풍수컨설턴트의 지도에 따라 회사 내부 구조를 바꾼 뒤 바로 매출과 생산 기록을 갱신했다고 하는 ‘카더라 풍수’가 나돌면서 법석을 떨었다.
이후 풍수는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 인테리어를 풍수 전문가에게 맡겼다는 일화는 주류사회에서 널리 퍼진 얘기다. 근래에는 CEO들 사이에 자신의 사무실을 풍수에 맞게 배치했다는 뜻의 ‘I had my office fengshuied’가 일종의 자기 과시 예로 통한다.
내년 미국의 차기 대선 후보로 거명되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도 풍수마니아로 이름이 높다. 적지 않은 수의 뉴요커들이 트럼프하면 풍수를 떠올릴 정도다. 흥미롭게도 그의 대중적 선호도가 기성 유력 후보들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 공개된 미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는 선호도에서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 등 공화당의 잠재적 유력 후보들을 앞섰다. 트럼프는 뉴욕 맨해튼 리버사이드 지역 개발 때 풍수가에게 자문을 구했고 사업과 관련해 정기적으로 풍수 자문을 받는다. 정규직으로 풍수 컨설턴트를 채용했을 정도다.
‘트럼프월드타워’는 2001년에 완공된 목형(木形)의 건물로 전통적인 풍수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풍수는 정방형이나 직사각형의 대지에 반듯하게 높이 지어올린 목형의 건축물을 길하게 여겼다. 이같이 건물의 대표적인 길상(吉相)은 꼭대기까지 전체가 직사각형 형태 그대로 반듯하게 올라간 형태를 말한다. 그리고 되도록 들어가고 나온 부분이 없어야 한다. 부속건물을 붙여서 지으면 좋은 가상(家相)이 될 수 없다. 반듯한 외형에 실내 또한 직사각형인 경우가 양호하다.
반면 아래쪽에서는 잘 지어져 올라갔다가 위에서 갑자기 좁아지는 구조는 빈상(貧相)의 전형적 형태가 된다. 건물의 형태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면 자금난으로 고통 받게 된다는 것이다. 혹 삶의 애환이 구구절절 담긴 탑(塔)의 형상을 떠올리면 일반 독자들의 이해에 조금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또한 건물의 높이가 제각기 불균형을 이루는 형태라면 기의 흐름상 장애요인이 돼 불리한 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건물의 정상인 옥상도 반듯한 평면의 형태가 무난하다. 건물의 상부가 모난 형상으로 ‘미사일형태’거나 꼭대기에 뾰족한 구조물이 설치된 경우라면 이를 충살(衝殺)이라 해서 방향과 좌향 혹은 건물의 층수를 헤아려 길흉을 논하기도 한다. 대체로 기운이 한쪽으로 쏠리면 좋지 않다.
미관상 아름답고 우아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좋은 가상(家相)이 되는 게 아니다. 건물의 본체가 원형이거나 층층이 모서리가 지는 왕관형의 건물 또는 빈상각(貧相角) 형태 모두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므로 흉한 상으로 분류된다.
도로가 모이는 곳은 자연 길지(吉地)
BK동양성형외과 전경. 수룡환포(水龍環抱)에 좌우유고(左右有靠)의 길지가 재물의 원천이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에 탐방한 BK동양성형외과의 건물 외관은 일단 합격점이다. 외형적으로 매끈한 외상(外相)의 빌딩으로 특별히 돌출되거나 패인 곳이 없는 모양은 일반적으로 부상(富相)의 귀격(貴格) 조건에 부합된다. 건물주는 물론 건축업자나 세를 든 입주업체 또한 재운(財運)이 깃든다고 본다.
BK동양성형외과는 대형 성형외과인 BK성형외과와 동양성형외과가 합쳐진 새 이름이다. 이곳에는 14인의 성형외과 전문의와 2명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피부과, 치과, 모발이식 등 전체 20명의 의사와 120여명의 임직원들이 근무한다.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서울 신사점 이외에 인천 부평점, 중국의 상하이, 청두, 텐진점 등의 유기적인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다. 규모답게 꽤나 널리 알려진 곳이다.
신사동 사거리를 지나다보면 한두 번은 눈여겨보게 되는 건물이 BK동양성형외과의 간판이다. 네온 조명으로 포인트를 주어 외관을 치장한 것은 풍수로 볼 때 높은 점수를 받는 요인이 된다. 일단 주목을 끄는 요소 자체가 기를 모으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풍수에 전기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게다가 교차로에 위치했으니 금상첨화다. 도로가 모이는 곳은 자연 길지(吉地)가 된다.
현대 풍수에서는 도로를 곧 수로(水路)로 여긴다. 대개 물이 흐르다가 멈추는 곳에 생기가 모이듯 도로가 모이면 생기가 돈다. 생기가 돌면 사람이 몰려들고 돈이 흘러넘친다. 이런 이유로 교통이 편리한 중심지에는 각종 문화시설이 들어서게 되는데 자연 인간생활의 중심지가 된다. 또 건물의 앞쪽에 도로나 하천이 있어 마치 건물을 감싸 안은 듯한 형세를 수룡환포(水龍環抱)라 해서 매우 길한 터로 치는데 이 조건에도 부합되니 안성맞춤이다. 한마디로 물이 좋은 터란 얘기다.
덕담에 인색할 필요가 있을까. 더 좋은 것은 건물 좌우로 동종 업종의 건물이 나란히 이웃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입지를 좌우유고(左右有靠)라 하는데 기댈 언덕이 있어 더욱 안정적 형세가 됐다. 좌우에 의지할 건물이 있으면 좋은 것이다. 이러한 건물에 입주하면 주변의 적극적인 후원을 입고 경쟁에서 별 어려움을 겪지 않고 발전한다는 암시가 강하다.
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면 생각보다 공간이 좁다. 화려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소박한 느낌이 든다. 15층의 가늘고 높은 건물인 까닭이다. 보통 땅이 비좁은 곳에 건물을 짓다 보면 풍수를 망치기 십상인데 외관을 반듯하게 올려 일단은 결점을 희석시켰다. 각 층은 비교적 안정된 긴네모꼴의 평면에다 비교적 천장이 높아 좁은 공간의 답답한 느낌을 상쇄한다.
3층 샹들리에. 큰 샹들리에는 빛을 골고루 분산시켜 풍요와 안정을 가져온다.
특히 접수와 상담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2층에서 4층까지의 내부 공간은 높은 천장에다 비율이 맞지 않다 싶은 큰 조명과 샹들리에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좋은 풍수로 반전됐다. 높은 천장에 부착된 샹들리에는 이상적인 풍수인테리어의 전형이다. 풍수에서 조명은 그 자체로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진다. 실내에서 머리 위의 조명, 램프, 눈부신 빛, 그 밖의 다양한 빛들은 그 공간을 더욱 밝게 해주고 기운을 활성화시킨다. 빛 교정에서는 밝을수록 좋다는 기본 원칙이 있다. 그러나 빛이 항상 켜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고 온전한 상태로 가동만 되면 그만이다. 다시 말해 전구가 타버렸다면 빛의 교정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이다.
천장의 높이나 형태도 풍수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근래에는 에너지 절약이나 경제적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천장 높이를 낮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답답한 느낌이 들 정도라면 입주 자체를 다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천장 높이로는 독립 공간의 전체적인 형태가 정육각형의 비율인 경우를 말한다. 이때 천기와 지기가 가장 잘 순환되는 것으로 기의 활성화를 돕는다고 보는 것이다.
높은 천장은 높은 이상을 갖게 하는데 이 병원의 공격적 마케팅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힘을 갖는다.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화합시키는 데는 높고 평탄한 천장이 응당 유리하다. 높은 천장은 분쟁을 해소하고 다툼이 오래 가지 않게 하는 효력이 있다. 일반적 사무실 천장 높이는 대개 2.4m로 이 높이는 현실적인 기운이 담기는 공간으로 여긴다. 반면 금융기관의 영업점이나 종교 시설 등의 천장은 대개 훨씬 높다. 천장이 높으면 공간 속에 무한한 이상과 기운이 담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비범한 성취를 볼 수 있다.
지금 대만의 풍수 대가로는 단연 중이밍(鐘義明)의 명성이 높다. 이 사람은 원래 사주명리학자였다. 알만한 인사는 알겠지만 필자는 명리(命理)를 학습해 온 사람이다. 명리에 비하면 풍수는 얼마든지 쉽게 말할 수 있고 어렵지도 까다롭지도 않다. 풍수는 크게 이기(理氣)와 형기(形氣)로 나뉜다. 근자에는 대만과 홍콩에서 부활한 현공(玄空)풍수가 각광받으며 대세로 떠올랐다. 현공풍수는 이기풍수를 기본으로 하며 기를 숫자의 조합으로 환산해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방법이다. 종래에 비해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점이 특색이다. 한 개인의 운세(運勢)를 읽어내는 정확도 면에서 종래 풍수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상대나 현장을 직접 겪지 않고도 얼마든지 과거의 현재, 미래사를 추리해낼 수 있는 팔자술(八字術)을 포기하고 현장에서 각종 절차를 밟아가며 추리하는 기법이 어째 좀 법석을 떠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서쪽 방위는 재물이 축적되는 음(陰)의 영역
아무튼 풍수의 새로운 트렌드는 풍수의 길흉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한번 명당으로 정해졌다고 해서 영원한 명당이 된다는 보장이 없고, 또 각각에 맞는 명당이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종래 이론을 수용하기에 급급한 풍수가들을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다시 말해 명리(命理)를 베이스로 풍수를 말하는 게 가장 첨단적인 이론체계가 된 셈이다.
이 현공풍수의 바탕은 이기풍수로 방위의 길흉을 가리는 데 주안을 둔다. 보통 풍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학습하기 시작하면 십중팔구는 반풍수로 그치기 십상이다. 실상은 만에 하나만이 제대로 된 동양 교학의 지식체계와 실용술수를 구사할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동양의 오술(五術)은 기본적인 원리만 제대로 익히고 스스로 납득하는 수준에서 기본에 충실한 응용만이 훨씬 나은 결과를 볼 때가 많다.
‘진리는 쉽다’는 말이 바로 이와 통한다. 독자들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침반 하나만 갖추고 공간의 중심점에서 서쪽 방향만 찾아 이곳이 재기(財氣)가 활발한 방위라는 인식만 지녀도 훌륭한 풍수 응용을 할 수 있다. 가령 친분이 있는 상대들과 심심풀이삼아 고스톱이라도 칠 때면 방의 서쪽 방향에 자리 잡고 앉으면 가진 돈을 다 소진하는 법이 드물다. 서쪽 방위는 재물이 축적되는 음(陰)의 영역인 까닭이다. 혹 기회가 되면 삼성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명함을 한번 살피기 바란다. 명함에 회사의 로고와 회사명이 명함의 어느 방위에 찍혀 있는지 보면 혹 서쪽이 지닌 무형의 힘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절묘하게도 이 병원의 수납과 상담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모두 정서(正西) 방위로 배치돼 있다. 또 접수처에 자리 잡은 직원의 서쪽 벽면에 백색의 전화기가 설치돼 있는데 이런 배치는 재화의 원활한 유통을 가져하는 동기로 작용한다. 오행(五行)으로 서쪽 방위는 금(金)의 영역인데 금생수(金生水)라, 곧 돈을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마침 전화기의 색상도 금기(金氣)의 흰색이라 짝을 잘 맞추었다.
돌멩이가 물을 맑게 한다
수납 및 상담 (여직원) 서쪽 공간. 서방의 수납처는 돈이 마르지 않게 한다.
김 원장은 겉으로 팔자(八字)나 풍수에 관심이 도통 없는 듯한 사람이다. 물론 팔자에 술(戌)과 허자(虛字)인 해(亥)의 두 글자인 천문(天門)을 갖췄다는 점에 근거하면 나름의 직관이나 통찰력은 빼어난 인사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풍수에 대한 관심유무는 차치하고 일단은 이 계통에 문외한인 점은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건물의 가상(家相)이나 내부의 주요 시설은 풍수적으로 길한 공간에 다 배치됐다. 역시 명운(命運)이 풍수에 앞서는 성공 요체인 모양이다.
현대 풍수의 패러다임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나쁜 풍수를 극복하려면 일단 비용이 많이 들었다. 풍수가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거나 또는 신축 내지 개축, 리모델링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굳이 배산임수의 길지로 찾아 나설 필요가 없게 됐다. 간단한 처방으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풍수를 구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산을 등지지 못해 후방이 허전하면 나무를 심거나 담벼락을 높여 장막을 치면 된다. 실내에선 커튼이나 암막을 쳐서 빈 곳을 가려 메워도 그만이다. 또 주위에 물이 없으면 어항이나 수조, 분수와 같은 풍수 소품을 구입해 가져다 놓으면 되는 식이다. 빛이 들지 않으면 조명기구로 빛을 연출하면 된다. 이 같은 간단한 교정으로도 빈약한 풍수를 훌륭하게 바꿀 수 있다는 ‘펑쉐이큐어(fengshui cure)’가 빠른 속도로 유행을 탔다.
원래 풍수는 부자들의 전유물과 같았다. 대개 부자가 아닌 서민들은 풍수를 제대로 실천할만한 여유가 없기 마련이다. 풍수는 음택(陰宅)과 양택(陽宅)이 있다. 음택은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분묘를 가리키고, 양택은 산 사람의 주거 공간을 의미한다.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결국 ‘좋은 터 잡기’라는 점에서 기본 원리는 동일한 데 오늘날에는 굳이 명당(明堂) 터에만 국한되지 않고 공간이나 환경을 정비하는 생활 풍수의 측면으로 특화되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공간의 생기(生氣)를 촉발시키는 풍수 교정물에 대한 간단한 지식을 습득하고 스스로 응용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싱싱한 관엽식물(木)이나 양초(火), 도자기(土), 브론즈(金), 어항(水) 등의 다양한 풍수 소품 등이 주변에 천지로 널려 있다. 색상이나 소리, 향기 등도 다 풍수 교정의 범주에 속한다. 만물은 풍수로 설명되지 않는 게 없을 정도다.
김 원장의 안내로 건물 내부의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됐다. 언뜻 눈에 띄는 게 4층 상담실의 한쪽 벽면에 부착된 조그만 긴네모꼴의 탁자 위로 놓인 유리 사발이다. 여기에 물이 담겨 있고 투명한 유리 자갈과 꽃잎이 띄워져 있다. 백화점의 잡화 코너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대중적인 풍수 용품으로 곡선형의 유리컵이나 사발에 형형색색의 보석을 담아둔 제품들이 유행하는데 이것은 ‘돌멩이가 물을 맑게 한다’는 금생수(金生水)의 작용으로 재운(財運)을 부른다는 뜻이 담긴 소품이다. 약간의 풍수적 안목을 갖췄다면 좀 더 화려한 색채를 띠는 자갈들을 사발에 담아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테이블 가장자리에 놓인 두 개의 스탠드와 유리 사발은 목화금수(木火金水)의 사상(四象)을 다 갖춘 셈으로 구성됐다. 좋은 암시고 운이 좋은 예다.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만치 그림이나 조각 등의 예술품이라 할 만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필자가 “의외로 여긴 그림이 정말 없네요”라고 직설하자 다소 겸연스레 말수가 적어진다.
풍수 교정과 연관된 처방으로 가장 격조가 있는 소품은 그림이나 사진 등의 작품을 들 수 있다. 그 효용이 탁월하다. 예컨대 매난국죽(梅蘭局竹)의 사군자 그림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라 풍수적 의미가 깊이 담긴 대상이다. 이들은 각기 춘하추동(春夏秋冬)을 대표하는 식물로 아무 벽면에나 걸어 두는 게 아니다. 겨울의 매화도는 북쪽, 여름의 대나무는 남쪽 등과 같이 배치하는 위치와 의미가 각각 다르다.
풍수에서 식물의 왕은 단연 대나무다. 제대로 된 20호 이상의 대나무 그림은 존경하는 대상에 대한 품격 높은 선물로 볼 수 있다. 개업이나 이전 등을 축하하는 의미로 난을 선물하는 것도 좋지만 더 값싸고 관리하기 좋은 대나무 화분을 선물하면 더욱 길한 뜻을 담아낼 수 있다. 재물운도 넘치고 건강에 좋다. 특히 심장병에 좋다. 이왕이면 나침반도 들고 가서 사무실의 남쪽 벽면에 적당한 지점을 찾아 놓아줄 정도의 배려라면 상대는 틀림없이 감동한다.
추상화보다는 정물화나 산수화, 동물 그림
벽쪽 스탠드가 놓인 테이블. 평범한 소품 연출이 뜻하지 않게 훌륭한 풍수 교정이 됐다.
풍수에서는 추상화보다는 정물화나 산수화, 동물 그림 등이 보다 직접적이고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잉어나 게, 호랑이 그림 등은 의미가 자못 심장하다. 이런 그림은 아무나 또 아무렇게나 배치하는 게 아니다. 향후 연재될 ‘풍수갤러리’의 본격적 내용은 펑쉐이 페인트(fengshui paint)다. 이것은 풍수의 첨단 담론이자 최초로 시도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직 풍수의 본가인 중화권이나 서구 실용 풍수계가 정교하게 다루지 못한 범주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는 피라미드나 히란야 문양, 달마도에서 특별한 기가 나온다고 해서 이러한 기운이 긍정적 사고를 촉진하고 몸과 마음을 이롭게 하며 재앙을 물리친다는 속설이 널리 전파됐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것은 기(氣)가 아니라 외래 신(神)이다. 이런 문양이나 조형에 의지하는 것은 저급하고 속된 것이다. 더 깊은 얘기는 본말이 전도될 우려가 있으므로 삼가는 게 좋겠다.
BK동양성형외과 건물 전체에서 다행히도 작품 하나를 찾아냈다. 검푸른 색조가 인상적인 임채욱 작가의 사진작품이다. 작품명은 <MIND SPECTRUM (옥정호 1001, 53X15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0)>이다. 먼동이 트려 할 무렵에 본 산등성이를 사진으로 담아낸 것 같다.
사진은 ‘실재를 재현한다’는 신화를 갖는다. 그리고 컬러사진의 진화로 ‘현실과 같다’는 사진의 신화는 더욱 굳건해졌다. 사진은 현실이고 이는 곧 풍수와 다름 아니다.
작가는 현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그 여백을 색으로 채웠다. 촬영 당시 느낀 감상 그대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의 색이지만 작품 속 색의 대비는 단지 사물의 명암이 아닌 배경과 대상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작가의 느낌표와 같은 것이다. 감정이입의 상징이 푸른색을 통해 표출됐다. 이런 경우는 목(木)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동쪽 벽면에 배치하는 게 정답이다. 요행이도 이 작품은 반대편 서쪽의 수납처와 대치되는 동쪽 벽에 걸려있다.
이 작품은 병원의 성장과 인화를 가져오는 풍수적 작용을 한다. 이래저래 풍수를 몰라도 풍수가 잘 적용된 셈이니 김 원장은 운이 강한 인물이다. 자연스레 덕담을 주고받으며 좋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외에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그림 한 점을 어렵사리 발견하게 됐는데 추상화로 일반적 관점에서 의미가 잘 와 닿지 않고 풍수적으로는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멈췄다.
■ 김병건 원장의 사주로 본 풍수
BK, 김병건 원장은 1963년 계묘생(癸卯生)이니 토끼띠다. 토끼는 돼지·양과 더불어 목명(木命)에 속한다. 토끼띠는 양띠와 특히 궁합이 잘 맞는다. 미토(未土)는 곧 재물인 까닭이다. 양이 암시하는 재화는 유통되는 돈이 아니라 저축되는 화개(華蓋)의 재산이다.
듣기로 김 원장은 주기적으로 중국의 각 지점에 내원해서 진료와 시술을 펼친다고 한다. 상하이에 가면 금은보화와 주괴에 올라 타 있는 양의 기물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흔히 보는 용상(龍象)도 재운을 고양시킨다. 이 또한 목명(木命)의 재기(財氣)인 토(土)에 속하는 까닭이다. 용의 그림이나 기물은 반안(攀鞍)에 속하므로 세인의 존경을 받으며 풍요롭고 안정적인 환경을 구축한다는 암시를 지닌다. 관심을 가지고 수집해볼만한 기물이다. 용 그림은 아무 곳에나 배치해선 안 된다. 공간의 동남방인 진방(辰方)에 두어야 마땅하다.
푸른색이 짙은 목(木) 기운의 사진 작품은 번영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뜻을 내포하지만 엄밀히 김 원장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장성(將星)에 속하므로 괜한 구설이나 소문에 노출될 염려의 소지가 있다. 명예로운 운신을 위해서는 백색 금(金)의 기운이 좋다. 수묵화나 비교적 여백이 많은 동양화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서쪽 벽면에 흰색 국화의 그림을 구해 걸어둔다면 보는 내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앞에서 풍수의 언어는 기라고 했다. 좋은 기운은 곧 좋은 기분을 말한다. 소장한 컬렉션 중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좋은 풍수다. 작품만 좋은 게 아니라 건강과 재물을 가져오는 신비한 풍수작용이 있다. 예부터 진정한 부자는 안목이 높았다. 예술을 모르면 진짜 부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다소 통속적인 신흥 부자라면 풍수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예술을 대하는 안목을 길러 볼 필요가 있다. 추상적 예술 세계와 물질적 가치는 오래 전부터 풍수를 통해 공존해왔다. 공(空)이 곧 색(色)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