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인도에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현지에서 사업을 확장하며 미래 성장 동력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인도는 14억 명의 인구를 바탕으로 소비 시장이 급성장하는 나라다. 세계 5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내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4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인도는 인구 절반이 25세 이하의 젊은 층이어서 잠재력도 무궁무진하다. 이들이 이끄는 소비 트렌드는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 큰 도전과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인도 정부의 적극적인 해외 기업 유치도 핵심 역할을 한다. 인도 정부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밀어붙이며 제조업과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진출에 더욱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도는 과거 서비스업 의존에서 벗어나 고용 유발과 낙수 효과가 큰 제조업을 집중 육성해 인도를 ‘세계의 공장’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인도가 반사이익을 받는 측면도 있다. 한국 기업들은 특히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시장 다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는 성장 잠재력과 정치적 위험도(리스크)가 낮고, 외국 기업에 유리한 규제 환경을 제공하는 이상적인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대기업들은 현지 생산 기지를 확대하거나 인도 상장을 추진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세계 각국의 자본도 인도로 집중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도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자들을 상대로 잦은 기업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며 “세계에서 투자 열기가 가장 뜨거운 지역이 바로 인도”라고 말했다.
2024년 10월 22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인도 국립증권거래소에 등장했다. 이날 정 회장은 현대차 인도 상장 기념식에 참석해 거래소 종을 울리며 인도 시장 상장을 알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상장 기념식에서 “현대차는 처음부터 인도가 미래라고 생각했다”며 “이사회의 투명한 경영과 적시 결정으로 현대차 인도법인은 ‘메이크 인 인디아’의 핵심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이번 상장으로 조달한 금액은 33억달러(약 4조5000억원)로, 인도 증시 사상 최고치다. 올해 아시아 증시 IPO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다. 이번 상장은 현대차의 장기적 투자와 전략적 확장의 의지를 드러내는 강력한 신호다. 현대차는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 등 친환경 기술을 중심으로 한 제품군을 확대하고, 현지 맞춤형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는 인도 시장에서 큰 성장의 기회를 보고 있다. 현대차 최초로 해외 법인을 상장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현대차는 1996년에 인도 시장에 진출했으며, 현재 인도 법인은 세단, 해치백,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전기차 등 총 13개의 모델을 판매 중이다. 인도 2위 자동차그룹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번 IPO를 통해 단순한 자금 조달이 아니라, 인도에서 더욱 뿌리 깊은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특히, 인도 시장 맞춤형 모델과 생산으로 내년까지 인도에 연간 150만 대(기아 합산)의 자동차 생산능력을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인도를 세계 최대 해외 생산기지로 육성하고, 인도를 글로벌 3대 자동차 시장으로 인정하며 이곳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 IPO를 추진하는 또 다른 한국 기업은 LG전자다.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인도 법인의 기업공개(IPO)를 위해 최근 주관사 선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상장 시기는 내년 초로 예상된다. 주관사로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시티그룹, JP모건, 모건스탠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올해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인도 법인의 기업공개(IPO)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이번 상장으로 최대 15억달러(약 2조원)를 확보할 계획이다. 블룸버그는 LG전자 인도 법인의 가치를 약 130억달러(17조9000억원)로 평가하고 있다.
LG전자가 인도 법인 상장을 검토하는 이유는 인도 시장의 빠른 성장세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 인도 법인은 올해 상반기 2조869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이는 2020년 연간 매출액인 2조2228억원에 근접한 수치다.
인도는 가장 잠재력이 큰 가전 시장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14억명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에도 불구하고, 가전 제품 보급률은 여전히 낮다. 지난해 기준으로 냉장고 보급률은 38%, 세탁기 17%, 에어컨 8%에 불과하다. 이는 인도가 아직도 가전제품 수요가 크게 증가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향후 몇 년간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가전업체들이 인도 시장에 집중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LG전자는 1997년 인도 노이다에 첫 법인을 설립한 이후, 27년 동안 판매, 생산, 본사와 공조 가능한 연구·개발(R&D) 센터까지 아우르는 통합 사업구조를 구축했다. 이러한 ‘현지 완결형’ 사업구조 덕분에 LG전자는 인도에서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왔다. 현지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국민 가전 브랜드’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가전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인도 물류 자회사 CJ다슬의 상장을 추진 중이다. 2017년 CJ대한통운은 570억원에 CJ다슬의 지분 50%를 인수하며 인도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CJ다슬은 매년 성장해 지난 7년 동안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3월에는 인도 증권거래위원회의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하며 상장 절차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번 상장으로 약 55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며 이는 전기차 구매에 사용될 예정이다. 전기차 도입은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물류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CJ다슬의 상장은 인도 물류 시장에서 CJ대한통운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도는 빠르게 성장하는 물류 시장으로, 특히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교통수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이를 반영해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환경적 영향을 줄이며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1995년 인도에 첫 발을 디딘 이후, 스마트폰과 TV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하며 현지화 전략을 강화해 왔다. 인도 내 스마트폰 공장과 가전제품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연구개발(R&D) 센터와 디자인연구소를 통해 현지 소비자 요구에 맞춘 제품을 출시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제품의 수요 증가에 대응해 체험형 매장을 열기도 했다. 특화 제품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인도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며, 향후에도 현지 시장에 적합한 전략을 통해 글로벌 입지를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기업들이 인도 시장 확대를 추진하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도 있다. 우선 자동차 산업에서 최근 현지 시장은 과거 대비 다소 침체된 상태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도 둔화하고 있다. 현지 시장에서 IPO를 단행한 현대차와 같은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 인도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환경 문제와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분위기도 우리 기업에겐 도전이자 과제다. 기업들은 현지의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활동을 더 키워야 하는 임무가 생긴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인도에 진출한 우리 대기업들은 현지 정부가 요구하는 다양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지역 사회와의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단기적인 경제적 성과를 넘어서, 현지 소비자와 정부, 그리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리스크’도 인도에 진출한 기업들의 들여다봐야 할 문제다. 인도는 저임금과 젊은 노동력, 그리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갖추고 있어 매력적인 생산 기지로 평가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강성 노조의 파업이 잇따르면서 기업에 새로운 리스크가 되고 있다. 노조의 무리한 요구가 생산과 경영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한 달 넘게 이어지며 우려를 낳았던 인도 남부 삼성전자 공장 파업이 종료됐다. 외신에 따르면 타밀나두주 첸나이 인근 삼성전자 가전공장 노동자들은 삼성전자와의 합의를 통해 파업을 종료하고 작업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노사 간 합의 내용은 공개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현지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은 강성 노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지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에 투자한 이유는 저임금,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거대한 내수 시장의 매력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대규모 노사 분규와 급격한 임금 인상이 지속된다면, 투자 유인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경오염, 인프라 부족, 높은 규제 비용 등 경쟁국 대비 열악한 인도 내 사업 환경도 현지 사업 확대의 최대 애로사항으로 꼽힌다.
인도 운송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항구들이 대형 선박의 진입에 제한적이며, 대부분의 물품검사는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도로 인프라도 미비하다. 전체 5%만이 고속도로로 돼 있고, 40%는 비포장 도로다. 인도의 자국 제조업 보호를 위한 외국기업에 들이미는 높은 관세와 복잡한 세제 구조도 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요소다.
[박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