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유럽 투자 성공방정식, 극초기 발굴·시너지 최우선… 4대 전략으로 글로벌 3.0 도약
황순민 기자
입력 : 2022.06.08 15:36:41
수정 : 2022.06.08 15:37:00
“네이버가 유럽에서 투자한 회사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네이버는 이제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 기술 리더십, 국내외 파트너십의 시너지를 통해 ‘멀티플’ 성장을 만들어내는 글로벌 3.0 단계에 돌입했다.”
최수연 네이버 최고경영자는 지난 4월 최고경영자(CEO)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네이버가 초기 투자한 유럽 스타트업 7곳이 기업가치가 1조원을 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로 사업 영토를 넓히고 유망 벤처를 발굴하기 위해 유럽 투자 펀드를 결성한 지 6년 만에 달성한 성과다. 최수연 CEO는 앞으로 일본, 북미, 유럽 등에 새로운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를 조성해 5년 내 글로벌 10억 명의 사용자와 매출 15조원을 달성해나갈 것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해외 투자 성과는 목표 달성에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네이버의 유럽 투자 현황과 성과’에 따르면, 네이버가 유럽 사업 확장을 위해 2016년부터 코렐리아캐피털을 통해 출자한 ‘K-펀드1’이 투자한 스타트업 17개 중 7개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을 인정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7개 유니콘 기업가치를 합하면 20조원에 육박한다(올해 4월 기준). 네이버는 K-펀드1을 통해 총 3억3000만유로(약 4410억원)를 투자했는데, 투자 기업들의 현재 가치를 감안하면 투자 원금 대비 수익률이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의 현 시점 투자 지분 가치만 1조원을 훌쩍 넘어가는 셈이다. 해당 펀드는 지난해 말 투자를 모두 완료했지만 네이버는 즉각적인 투자 회수에 나서지 않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와 웹 3.0 분야에서 글로벌 스타트업에 혁신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회사가 강점을 가진 이커머스뿐 아니라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블록체인·모빌리티·인공지능 등 여러 사업 분야를 아우르는 해외 투자를 이어왔다. 실제로 네이버가 투자한 유니콘 기업 7개사는 모빌리티, 블록체인 보안, 음식 배달, 인공지능, 관광 플랫폼, 럭셔리 패션 마켓, 중고거래 플랫폼까지 각 분야에서 유럽 시장을 선도하는 스타트업으로 손꼽힌다. 기업들 성장 속도를 감안할 때 기업가치 10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의 ‘데카콘’이 탄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평가다.
전략1 네이버와 시너지가 최우선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직접 챙겨온 네이버의 유럽 투자는 시작부터 단순 투자를 통한 회수로 이익을 내기보다는 네이버와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기술에 집중됐다.이커머스·메타버스·인공지능(AI)·블록체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GIO는 단순한 벤처캐피털(VC)로서 자금만 투자하기보다는 좋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솔루션 등 네이버의 기술을 접목할 경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투자처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네이버의 유럽 스타트업 투자 ‘잭팟’은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준비와 계획에 따른 성과”라며 “네이버와 ‘사업궁합’이 맞고 ‘시너지’가 날 수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현지 투자 전략을 설계한 것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최수연 네이버 최고경영자는 지난 4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낯선 유럽 시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투자를 선택한 것은 뛰어난 플레이어들을 발굴해 네트워크를 만들며 (시장에) 빠르고 전략적으로 진입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라면서 “특히 유럽은 버티컬 커머스 영역에서 네이버의 기술과 생태계 구축 노하우 접목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략2 스타트업 통해 유럽 영향력 키워
유럽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과 인지도를 가진 현지 유력 스타트업에 대한 지분 투자와 사업 협력은 네이버가 유럽 시장 영향력을 키우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네이버의 현지 사업이 잘될수록 스타트업에 대한 네이버의 지분 가치도 자연스럽게 커져 ‘윈-윈’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네이버는 최근 인사에서 한성숙 전 최고경영자(CEO)를 ‘유럽사업 개발 대표’로 발령을 내며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재정비를 마친 상태다. 특히 네이버의 유럽 계열사 및 지사를 개별적으로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시장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겼다. 현재는 최수연 신임 CEO 직속 조직이지만, ‘대표’란 점에서 향후 네이버가 유럽 별도 법인을 세울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 대표는 네이버의 유럽 유니콘 투자에 초기부터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한 대표는 최근 프랑스에 상주하며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팀을 구성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현지 유망 스타트업 8곳으로부터 사업설명(피칭)을 받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특히 네이버의 커머스 사업의 유럽 진출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략3 커머스,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미래 먹거리에 폭넓게 투자
네이버가 ‘K펀드-1’을 통해 투자해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은 기업 면면을 살펴보면 네이버의 유럽 사업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예컨대 스페인판 당근마켓 ‘왈라팝’은 현지 버전의 스마트스토어 기술 플랫폼과 비(非)커머스 사업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네이버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네이버는 현지 중고 재판매(리셀) 등 커머스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스타트업 플랫폼에 검색·광고·인공지능 추천 등 네이버의 기술 플랫폼 솔루션이 도입되면 기술 고도화도 가능하다. 유럽 최대 규모 모빌리티 기업으로 성장한 ‘볼트’는 차량 호출, 음식 배달, 전동 킥보드 등 전방위로 사업을 확장하는 등 현지에서 인지도가 매우 높고 소비자와의 접점 또한 넓어 네이버의 유럽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비트코인 채굴·인공지능 칩 기술 등을 보유한 비트퓨리와 암호화폐 관련 보안 기술에 특화한 레저는 네이버가 미래 먹거리로 준비 중인 블록체인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 협력 가능성이 열려있다. 역으로 네이버가 유럽 현지 스타트업의 한국 등 아시아 시장 진출을 돕는 것도 현실화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최대 규모의 럭셔리 패션 플랫폼인 프랑스 베스티에르는 현지 사업 확장뿐 아니라 네이버와 한국 사업 론칭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
전략4 극초기 스타트업 발굴 나서
네이버는 유럽 현지에서 ‘넥스트 유니콘’을 찾기 위해 극초기 스타트업 발굴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네이버의 유럽 창업 인큐베이터(육성기관)인 ‘스페이스그린’에는 프랑스 현지 유망 스타트업 5개를 합류시켰다. 5개 스타트업은 ▲AI 기반 만화 플랫폼 ▲Z세대를 위한 패션 마켓 ▲가상현실 게임 플랫폼 ▲블록체인 테크 등 네이버가 주목하고 있는 모험적인 분야에 집중됐다.
이들은 프랑스 파리의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인 ‘스테이션F’에 위치한 네이버 스페이스 그린에서 회사를 키우게 된다. 네이버 관계자는 “향후 지분 투자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네이버의 스타트업 양성조직 네이버 D2SF가 신사옥 ‘1784’에 스타트업 전용 공간을 열고 기술 스타트업 8곳을 입주시켰다. 첫 입주팀은 네이버와 접점을 확인한 기술 스타트업 8곳이다. 메타버스,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로보틱스, 헬스케어 분야에서 잠재력을 가진 회사들이다. 이들은 입주 기간 동안 네이버 내 다양한 조직과 교류할 계획이다.
이 GIO는 ‘새로운 네이버’의 주요 키워드로 ‘도전’을 제시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빅테크로 성장한 네이버 특유의 ‘도전 유전자(DNA)’를 해외 시장에서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작년 기준 라인을 포함한 네이버의 해외 매출 비중은 35% 수준이다. 해외 사업 확장을 위해 네이버가 택한 방법은 ‘글로벌 협력’이다.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에는 네이버, 미래에셋증권, 현대차 등이 투자했다.
투자 수익뿐 아니라 글로벌 벤처투자사·스타트업과 혈맹관계가 되면서 해외 진출에 보다 많은 동맹군을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 효과를 낼 수 있다. IB 업계에서는 네이버가 세계 시장을 크게 유럽과 아시아로 보고 유럽은 코렐리아캐피털, 아시아는 미래에셋캐피탈을 투자 파트너로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분석한다. 프랑스 장관 출신인 플뢰르 펠르랭 대표가 설립한 코렐리아캐피털은 신생 VC임에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며 네이버의 유럽 투자를 돕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유럽 유명 스타트업들이 자금 동원력이 풍부한 미국 기업 대신 네이버를 선택한 것에는 펠르랭 대표의 적극적인 설득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코렐리아캐피털은 최근 국내에 지사도 설립했다. 국내에서 스타트업과 유니콘 등에 대한 투자 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캐피탈은 네이버와 함께 현지 1위 플랫폼인 모빌리티의 그랩, 싱가포르 리셀 벤처인 캐로셀 등에 선점 투자를 하면서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전역에 네이버 솔루션을 심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와는 일본 시장과 메타버스 등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제트는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네이버는 코렐리아캐피털과 함께 최대 4억유로(약 5400억원) 규모의 ‘K펀드-2’ 펀드를 조성해 유럽 IT 스타트업과 플랫폼·이커머스 기업에 후속 투자할 계획이다. 펀드는 2억유로(약 2673억원) 규모로 퍼스트클로징을 마쳤고 본격적인 투자를 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펀드에는 앵커 출자자(중심 출자자)인 네이버뿐 아니라 프랑스와 한국의 주요 기관투자자 등도 펀드출자자(LP)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 회수 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빅테크’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에 베팅한다는 방침이다.
스페이스그린.
‘K-펀드2’는 지난 4월 프랑스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시냅스 메디신’과 독일의 스마트 기기 공유 서비스 플랫폼 ‘그로버’의 지분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다. 펀드의 첫 투자인 시냅스 메디신은 약사와 의사들을 위해 약물조정 솔루션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로 제공하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상대적으로 기업가치가 크지 않아 네이버가 헬스케어 분야에서 초기 투자에 나섰다는 평가다.
최근 네이버 최고경영진은 내부 구성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헬스케어를 게임, 블록체인과 함께 주목해야 할 미래 사업 분야로 꼽기도 했다. 네이버와 코렐리아는 독일의 공유 서비스 스타트업인 그로버의 1억1000만달러(약 1346억원) 규모의 펀딩 라운드에도 참여했다. 그로버는 스마트폰과 VR 장비 등 3000여 종 이상의 스마트 기기를 월단위로 빌려주는 공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회사에는 LG전자와 미레에셋이 공동으로 조성한 펀드가 투자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유니콘’ 기업으로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