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가십걸’ 촬영에 정상회담까지 열려 세계적 명소로 2015년 롯데그룹 전격 인수 후 한국식 경영 접목 활성화
이한나 기자
입력 : 2018.10.31 10:39:51
수정 : 2018.10.31 16:38:37
올해도 9월 유엔총회가 열리는 기간 뉴욕에서는 한미정상회담과 남북·북미 실무자 회담 등등 미국에서도 굵직굵직한 역사적 행사가 잇따르는 롯데뉴욕팰리스호텔이 주목받았다. 뉴욕 중심가 미드타운에서도 희소한 랜드마크 최고급 호텔이 한국 기업 소유라는 점이 새삼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비단 한국의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격까지 높여준다는 칭송이 이어지고 있다.
이 호텔은 지난 2015년 롯데그룹이 브루나이 왕실로부터 8억500만달러에 전격 인수한 후 ‘더뉴욕팰리스호텔’에서 ‘롯데뉴욕팰리스호텔’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오래된 것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미국인들에게 매일매일 높이 솟아오르는 초현대식 호텔보다도 가치 있게 대접받는 것이 바로 132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팰리스호텔과 같이 고색창연한 건물이다. 이 호텔은 특히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길 건너편에 위치해 매디슨애비뉴와 피프스애비뉴 쇼핑가는 물론 록펠러센터,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주요 관광지가 모두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매력적이다. 트립어드바이저 등 여행 관련 사이트에서는 긍정적인 호텔 투숙기가 줄을 잇는다.
사실 인근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이 VIP 숙박장소로 종종 애용됐으나 중국 안방보험이 인수한 후 미국 VIP들이 발길을 뚝 끊었다. 게다가 안방보험이 기존 건물을 헐고 콘도 개념의 대규모 호텔과 레지던스로 개조하고 있는 상태여서 앞으로 롯데뉴욕팰리스호텔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롯데뉴욕팰리스 그랜드 로비
▶유엔총회 열리면
최고 정상 수반들 선택 0순위
무엇보다 매년 뉴욕 유엔총회 기간에 버락 오바마를 비롯한 미국 대통령이 묵는 숙소로서 ‘뉴욕의 백악관’ 이미지를 굳히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한미정상회담은 물론 미일정상회담, 유엔총회 결산 기자회견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이 호텔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세계 각국 명사와 기자들이 몰려든다.
이 호텔은 미국에서 철도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이룬 헨리 빌라드가 사옥 겸 저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1882년 지었다. 그래서 호텔 구관은 여전히 대저택 혹은 궁궐과 같은 구조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뮤직룸과 드로잉룸 등 다양한 용도의 방들이 숨겨져 있다. 현재 이 방들은 소규모 회의나 파티 등의 장소로 활용된다. 구관에 들어서면 마치 베르사유궁전 등 유럽 궁궐 안에 있는 듯하다.
이 호텔은 부동산재벌 해리 헴슬리가 1972년 인수하며 복합빌딩으로 바꿀 계획을 세웠으나, 헨리 빌라드의 유족들이 건물을 팔자마자 일종의 문화유산(Land mark commission)으로 신청하는 바람에 현재 구관의 외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도록 묶였다. 어찌 보면 당시로서는 가치를 올릴 기회를 꺾는 불운이었던 셈이지만 오히려 40여 년이 지난 현재는 그 희소성을 인정받아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현재 이 호텔은 지상 55층 규모에 총 909개 객실을 갖췄다.
이 호텔의 아담한 코트야드에는 칵테일 등의 야외 음료 서비스도 가능하지만,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관을 이룬다. 록펠러 센터만큼 대규모는 아니지만 랜드마크 빌딩이 뿜어내는 기운이 합쳐져서 미드타운을 지나가는 관광객들 이목도 사로잡는다.
뉴욕팰리스 호텔 스위트룸
▶132년 역사에서 건물 곳곳에
숨겨진 스토리 많아
뉴욕 상류층의 사교장인 만큼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멤버십 바도 숨어 있고, 퍼스널쇼퍼들이 패션 조언을 하거나 맞춤형 의상을 구매할 수도 있는 ‘트렁크 클럽’도 자리하고 있다.
멤버십으로만 이용되는 래러티즈바(Rarities Bar)의 경우 가입비만 연 1만5000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연간 주류·음료 판매 크레딧을 연 5000달러 받을 수 있는 데다 타워동 트리플렉스 스위트를 1박(2만5000달러 상당) 이용하거나 타워동 킹 베드 객실(1박당 995달러) 10박을 이용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연회비 2000달러 상당의 스파와 피트니스클럽 1년 회원권을 이용하고 투숙 때 하우스카를 이용할 수 있는 이점도 있어 뉴욕이나 인근 비즈니스맨들이 은밀한 사교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트렁크 클럽도 미국 백화점 노드스트롬 계열 패션 자문서비스업체로 온라인으로 회원 가입한 남성 고객들이 이곳을 찾아 새로운 트렌드의 의상을 조언받고 실제로 수트나 셔츠 등을 구입해 맞춤 서비스까지 받고 있다.
호텔 구석구석에는 132년 역사가 흥미로운 스토리와 함께 숨겨져 있다. 호텔 지하 1층의 바 ‘트러블스 트레저(트러블의 신탁)’ 이름도 헴슬리 여사가 본인의 애견 ‘트러블’에게 막대한 유산을 신탁으로 남기고 떠난 것을 따서 명명됐다. 이 바에서 ‘가십걸’(로제스파클링 와인과 로제데킬라를 기본으로 함)이란 이름의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것은 이 호텔이 미국 인기 드라마 <가십걸>의 촬영지였기 때문이다. 뉴욕 상류층 사립학교 학생들이 주인공인 만큼 엄청난 미모를 장착한 ‘금수저’들이 총출동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가십걸에서는 남자 주인공 척 배스(배우 에드 웨스트윅)의 대저택 ‘팰리스’로 이 호텔이 등장한다. 뉴욕 여행자들이 택하는 ‘가십걸’ 투어 프로그램에서도 이 호텔 방문은 필수로 포함될 정도다.
라이브러리 룸
▶미드 ‘가십걸’ 촬영지 투어는 물론
‘뉴욕 양키즈’ 경기 연계 패키지도 인기
롯데가 이 호텔을 인수하고 기존 임직원들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되 그동안 한국식 경영 노하우를 결합한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표 사례가 양키즈 스테디엄 패키지다. 뉴욕 야구단 양키즈 경기 입장권을 최대 반값까지 할인받고 호텔 방값도 10~25% 할인받으면서 양키즈 모자와 잡지 등도 받는 패키지다. 맨해튼 호텔 중에서는 처음으로 이 같은 패키지를 도입했다. 아울러 매년 8월이면 미국 동부 상류층 사회에서 인기가 높은 US오픈 테니스경기에 맞춰서 유명 선수들이 호텔 투숙객들과 함께 배드민턴 경기를 함께 즐기는 이벤트도 열어 투숙객들 호응이 뜨겁다.
이 호텔 구관에 있는 50석 규모 연회장 뮤직룸은 상류층 중심으로 소규모 결혼식이나 가족 모임이 열리고, 매디슨룸에서는 유명 마술사인 스티브 코엔이 진행하는 마술쇼 ‘Steve Cohen Chamber Magic’이 주말마다 열려 가족 고객들이 모여든다. 이 쇼는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말에 진행하는데 호텔 투숙객은 물론 이 쇼만 보기 위해 호텔을 찾는 가족도 있을 정도다.
역사적인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려다 보니 대규모 현대식 서비스에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재는 빌라드레스토랑에서 조식 서비스만 가능하지만, 내년에는 고급 식당도 유치해 저녁 식사 서비스도 시작할 계획이다. 현재 빌라드레스토랑 총괄 쉐프 세드릭 토버는 미쉐린 투스타로 유명한 뉴욕 레스토랑 ‘다니엘’의 총괄 셰프와 ‘보보’ 셰프 등을 거친 인물이다. 내년 4월경 일라(ila) 스파 오픈도 앞두고 있다. 일라는 유기농 재료만 선별해 서비스하는 것으로 유명한 럭셔리 스파 브랜드다.
▶한국식 호텔 경영 노하우 가미
서비스 업그레이드
롯데뉴욕팰리스호텔은 신격호 명예회장이 마지막으로 결정한 주요 인수 건으로 꼽히지만, 신동빈 회장의 지지도 결정적이었다. 신 회장은 1977년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1980년 컬럼비아대에서 경영전문석사(MBA)를 취득했다.
이 때문에 뉴욕에 거주하는 동안 미드타운 핵심에 위치한 팰리스호텔의 위상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신 명예회장도 1979년 소공동 롯데호텔을 열어 우리나라에서 직접 토종 호텔산업을 일으키고 롯데월드타워 건설을 준비하며 전 세계 주요 선진국을 돌았다. 꾸준히 벤치마킹 투어를 했던 터라 아주 신속하게 결단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세계의 경제 수도로 꼽히는 맨해튼에서 삼성전자나 엘지전자가 광고판에만 연간 수십억원을 쓰는 것을 감안하면 ‘롯데’ 브랜드를 내거는 비용이 부담되지 않았다고 계산했는데 적중한 것이다.
롯데그룹은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롯데호텔을 열어 첫 번째 해외 진출을 했고 현재 국내 19개, 국외 11개 총 30개 호텔을 운영 중이다. 객실 수를 합해도 총 1만 실에 달한다. 또 지난 2009년 비즈니스호텔 브랜드로 롯데시티호텔, 2016년 라이프스타일 호텔 브랜드 L7, 최상급 브랜드 시그니엘, 5성급 롯데호텔앤리조트 등 라인업을 다각화했다.
그러나 뉴욕팰리스호텔을 인수해 프리미엄 브랜드를 확보한 것은 ‘신의 한 수’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이 호텔에 묵었던 미국의 기업인들 중에서 감화를 받은 일부는 ‘팰리스 호텔’ 브랜드를 달고 본인의 호텔을 위탁경영해 줄 수 있겠냐고 제안할 정도다. 롯데그룹은 이처럼 위탁경영을 강화해 호텔업계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롯데는 인수 후 최고급 호텔의 대명사인 포시즌스 출신 한인 교포를 지배인으로 영입하고, 위생이나 안전 관리 등은 한국 롯데호텔과 교류하면서 수준을 더 끌어올렸다. 한국 롯데에서 파견자는 권혁범 법인장 등 2명에 불과하다. 뉴욕 호텔업계의 경우 호텔 근무 노동자들의 산별 노조가 워낙 강해서 오너십이 한국에 넘어갔더라도 한국 직원들이 대거 파견되는 구조가 아니다.
그러나 이곳처럼 고색창연한 뉴욕 호텔의 경우 워낙 단골 VIP 고객도 많기 때문에 50대를 훌쩍 넘는 직원들의 믿음직한 서비스가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 버렸다. 실제 롯데 인수 후에도 호텔 투숙객에서 아시아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빌라드맨션(구관) 위로 솟아오른 신관(타워동)은 41~51층 현대식 호텔스위트룸으로 정·재계 VIP나 연예인들이 묵는 최고가 객실은 3층(Triplex) 구조로 1박에 2만~2만5000달러나 된다.
침실과 루프톱, 스태프들과 회의가 가능한 거실 등 모든 것이 뉴욕 도심의 호텔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넉넉한 편이다. 특히 루프톱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맨해튼 풍경은 장관이다. 철저하게 사적인 이 옥상에서 가볍게 차를 마시거나 목욕하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실제 묵는 객실은 신관에 있고 현대식이기 때문에 오래된 호텔 특유의 냄새나 불편함은 전혀 없다.
‘샴페인 스위트’와 ‘주얼 스위트’ 등 고급 객실의 경우 맨해튼 특급 부자의 삶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주얼 스위트는 미국에서 유명한 주얼리 기업 마틴 카츠(Martin Katz)와의 협업으로 꾸며진 공간이라 특별하다. 마틴 카츠의 주얼리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결혼하는 제시카 비엘이 착용해 화제가 됐고, 제니퍼 애니스톤과 니콜 키드먼 등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이 애장하는 보석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주얼 스위트는 2013년 1억4000만달러를 들여 신관 리노베이션을 마친 후 공개돼 화제가 됐다. 카츠는 한쪽 벽면에 주얼 박스 5개를 조각처럼 배치하고 계단으로 올라가는 공간에 크리스탈 샹들리에를 설치해 빛을 받아 반사하는 효과를 냈다. 이 장식만으로도 2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혁범 롯데뉴욕팰리스 법인장은 “1박 평균 호텔 요금이 440달러로 미드타운에 있는 9개 호텔 중에서는 가장 높은 편이지만 전체 호텔 투숙률이 87%에 달한다”며 “작년과 올해 포브스,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 등 세계 3대 호텔 평가 매체로부터 뉴욕 최고 호텔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궁궐 같은 중소 규모 공간 25곳에서
중역 전용 회의도 제격
월가와 로펌 등 기업고객(Corporate) 비중이 70%로 높은 것도 매출에 기여한다. 롯데그룹에서는 글로벌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나 스타우드와 같은 로열티프로그램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현대식 호텔만큼 대규모 연회장이 없지만 중소규모 중역 회의를 열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다. 구관 안에는 체어맨스 오피스룸, 라이브러리룸, 뮤직룸 등 중소규모 연회장이 25개나 숨겨져 있어 최고위급 중역들 회의를 열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기업체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투숙 객실 안에 맞춤형 ‘1 on 1 이벤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활용할 만하다. 연간 600만달러 매출을 올릴 정도로 인기 있다.
호텔에서 만난 JP모건 관계자는 “뉴욕 출장에 맞춰 기업 회원으로 등록된 호텔 중에서 공간이 가장 매력적이고 회사와 가까워 뉴욕팰리스호텔에 투숙했다”며 “한국 기업이 이처럼 유서 깊은 호텔을 소유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