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는 재건축 정비계획 발표가 예상됐던 지난해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올랐다. KB국민은행 시세에 따르면 압구정동 아파트의 3.3㎡당 매매가격은 2015년 4분기 3890만원에서 지난해 4분기 4712만원으로 1년 사이 21% 상승했다.
국토교통부실거래가에 따르면 구현대4차 전용 117㎡는 지난해 1월 20억원(4층)에 거래됐지만 지난해 11월에는 25억5000만원(3층)에 거래돼 5억원 넘게 가격이 뛰기도 했다.그러나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정비계획이 아닌 지구단위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지역 재건축 사업은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올해 압구정 재건축 주요 이슈를 ‘지구단위계획’, ‘초과이익환수제’, ‘통합재건축’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강북에서 바라본 압구정
압구정중학교를 중심으로 한 압구정
▶정비계획서 지구단위계획으로 전환
단지별 개발→광역적 개발
서울시는 2014년 말 강남구와 공동으로 압구정 정비기본계획 변경안 용역에 착수했다. 각각 5억원씩 총 10억원의 용역비를 들인 프로젝트였다. 이 정비계획이 지난해 발표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압구정 집값은 폭등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해 7월 부시장 보고를 계기로 압구정 재건축을 정비계획이 아닌 지구단위계획으로 전환추진하고 지난해 10월 이를 발표, 주민공람을 실시했다.
정비계획은 각 단지별로 개발을 하는 방식이라면, 지구단위계획은 보다 광역적인 개발을 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지구단위계획으로의 전환에 대해 “현재 용적률 200%로 1만 가구가 들어서 있는 압구정지구가 용적률 300%로 재건축하면 1만6000가구로 늘어나기 때문에 가구 수 증가에 따른 교차로 수 변경 등 교통에 관한 전체적 영향 평가가 필요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압구정 지구단위계획은 단지별 정비가 아닌 주거환경과 교통 여건, 도로 등 기반시설, 주변 지역과의 연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 일대를 보다 광역적이고 체계적인 도시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시 계획을 들여다보면 ▲압구정역 역세권 기능 강화, 다양한 공공공간 확보, 디자인 특화 유도 등을 통해 폐쇄형 단지를 가로친화형 단지로 전환 ▲24개 단지는 6개 재건축 사업단위로 구분,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주민 맞춤형 정비계획 수립 유도 ▲기존 압구정로변 중심시설용지(3개) 등에 대해 특별계획구역 지정을 통한 효율적 관리 체계 구축 등이 골자다. 이와 함께 계획 초기단계에서 지구 전체에 대한 교통 영향 평가를 수행해 개발 완료 시 가구 수 증가에 따른 도로 신설, 도로폭·선형 변경 등을 통해 교통 문제를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주민들 반발은 심했다. 재건축 사업 지연이 불가피한 데다, 최고 층수 35층 제한 등 재건축 사업성 저해 요소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압구정지구단위계획 주민공람 이후 압구정 주민 5000여 명은 서울시와 강남구에 지구단위계획에 대한 주민의견서와 서명을 제출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서울시 계획의 최고 35층 층수제한을 완화하고 15% 수준인 기부채납 비율을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구현대의 재건축 추진준비단체인 재건축준비위원회의 신영세 간사장은 “구현대 재건축은 50층 이상일 때 자산가치가 높아지고 동간 거리가 넓어지며 아름다운 스카이라인도 확보할 수 있다”면서 “서울숲 트리마제는 47층, 이촌 첼리투스는 56층으로 지어졌는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2030 도시기본계획’ 등을 내걸며 최고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압구정 주민들은 기부채납 비율도 10% 이하로 낮춰 달라는 요구를 제기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한강 변 재건축의 기부채납 비율이 15%인 만큼 이를 준용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재건축추진위원회 구성을 위한 공공지원을 신속히 실행하라는 의견도 많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비계획 변경 근거가 있어 현재 상태에서도 6개 사업단지별로 추진위 구성해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압구정 지구단위계획에 대해 단지별 주민의견서를 제출한 단지에서도 내부 의견다툼이 일고 있다. 구현대1·2단지는 실거주 주민 85%의 동의를 얻은 주민의견서에서 ‘서울시는 준주거지역 종상향 면적을 기존 계획 8000평(2만6000여㎡)에서 3000평(1만㎡)으로 낮춰 달라’고 요구했다. 준주거지역의 용적률이 400%이면 총 3만2000평(10만여㎡) 규모의 상업용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대규모 상업시설은 교통과 주거환경을 훼손시킬 것이란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 설립된 구현대 재건축추진준비단체인 ‘ARF압구정재건축포럼(이하 ARF)’은 여기에 정면 반박하는 입장이다. 서울시 계획대로 준주거지역 종상향 면적을 유지하는 게 압구정 주민들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는 것. 전원재 ARF 위원장은 지난달 자체 개최한 주민설명회에서 “종상향 면적을 3000평으로 줄일 것을 요청하려면 서울시가 종상향을 이유로 요구한 추가 기부채납비율 1.4%에 대해서도 삭감을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내년 부활 예정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는 지난해 압구정뿐 아니라 강남 재건축 시장을 뜨겁게 달궜지만 부활 1년을 남긴 현재로선 이를 피할 가능성이 있는 단지는 거의 없는 상태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는 재건축을 통해 얻는 개발이익이 조합원 1인당 3000만원을 넘을 경우 이익금의 최고 50%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현재 유예돼 있는 이 제도는 내년 부활할 예정이다. 재건축 예정 단지들은 올 연말까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해야 초과이익 환수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압구정 단지들은 대부분 재건축 추진 초기단계다. 압구정 24개 단지 중 조합이 설립돼 있는 단지는 ‘한양7차’가 유일하고 대부분 안전진단 이후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재건축 추진위는 전무하고, 그나마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는 구현대에 3곳, 미성2차에 1곳 정도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추진위는 토지 등 소유자 50%의 서명을 받아 구성하는 법적 단체임에 비해, 추진준비위는 법적 효력이 없는 사설 단체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압구정 단지들은 재건축 추진이 미진한 상태인데 지구단위계획까지 도입되면서 올해 안에 관리처분계획 인가 신청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강남구에 따르면 압구정 단지들은 당초대로 개발기본계획에 따라 재건축을 추진했다면 빠르면 2018년 이주·착공을 할 수 있었지만, 지구단위계획 도입으로 이주·착공은 아무리 빨리 추진하더라도 2020년 말 이후에야 가능해지게 됐다. 일부 주민들은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을 도입하면서 재건축 초과이익에 대한 세금을 내게 됐으니, 이 비용을 서울시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도 지난해 11월 서울시와 강남구가 공동 주최한 ‘압구정 지구단위계획 주민설명회’에서 “지구단위계획 도입으로 압구정 주민들의 세금부담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서울시 책임”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피할 목적으로 ‘신탁방식 재건축’ 도입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구현대의 재건축추진준비단체인 ‘새로운재건축준비위원회’(이하 새로운준비위)는 지난해 하반기 수차례 신탁방식 재건축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신탁방식 재건축은 신탁회사가 아파트 소유주들에게서 권리를 넘겨받아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일정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조합설립 단계를 생략해 조합원 간 분쟁 소지가 적고, 초기에 정비·설계·시공 업체를 선정해 재건축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정제택 새로운준비위 회장은 “지금이라도 신탁 방식을 도입하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를 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구단위계획 도입으로 신탁방식 재건축이 진행된다고 해도 올해까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를 피하기 위해 십여 년간 방치돼 온 조합이 ‘부활’하기도 했다. 압구정의 유일한 재건축 조합인 한양7차 재건축조합은 지난 2002년 조립식 시공 문제로 예외적으로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지만 이후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해지면서 활동이 중단됐다. 아파트 매각으로 조합원 자격을 잃은 인물이 아직까지 조합장으로 등재돼 있을 정도다. 그러나 내년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의 부활을 앞두고 재건축 추진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조합장을 새로 선출하려는 등 조합 정상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압구정 지구단위계획 전환 주민설명회
▶24개 단지 6개로 통합재건축 추진
통합재건축은 압구정 재건축의 또 하나의 난제가 될 전망이다. 지구단위계획안에 따르면 압구정 일대 24개 아파트 단지가 6개 재건축 사업단위로 나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1블록(미성1·2차) △1-2블록(신현대아파트) △2블록(현대1~7차·10차·13차·14차) △3-1블록(한양4·6차·현대8차) △3-2블록(한양1~3차) △4블록(한양5·7·8차) 등이다.
2블록의 경우 현재도 구현대 1·2단지 주민들이 대체로 통합재건축을 지지하고 있는 만큼 통합재건축은 문제가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일부 블록에선 단독재건축 추진을 원하는 단지들이 있어 난관이 예상된다.
1-1블록에서는 미성1차 주민들이 단독재건축 추진을 지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성2차와 통합재건축 시 아파트 면적에 손해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성1차는 총 322가구 중 전용 85㎡ 이하가 126가구, 전용 135㎡ 초과가 196가구일 정도로 대형 평수 비중이 높다. 반면 미성2차는 총 911가구 중 전용 85㎡ 이하 459가구, 전용 102~135㎡ 180가구, 전용 135㎡ 초과 272가구로 중소형 가구 비중이 많은데 절대적인 가구 수는 미성1차의 3배 수준이다. 미성1차 관계자는 “미성1차는 대형평수 비중이 높은데 가구 수는 미성2차보다 적어서 통합재건축 시 아파트로 받는 면적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면서 “재건축 단독추진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4블록도 사정이 비슷하다. 재건축 조합이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는 한양7차의 경우 통합재건축을 원하고 있다. 한양7차는 한양5차와 함께 현재 한양3단지를 구성하고 있는데, 한양7차의 자체규모는 2개동 239가구에 불과하다. 한양7차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현재 압구정 지구단위계획대로 한양 5·7·8차가 함께 재건축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한양7차가 이미 조합을 갖추고 있는 만큼 통합재건축 속도도 빠르게 진행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양8차의 다수 주민들은 단독재건축 추진을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양8차는 1개동 총 90가구에 불과한 나홀로 아파트지만 전 가구가 전용 135㎡ 초과 대형 평형이다. 한양8차 관계자는 “한양8차는 가구당 지분 면적이 다른 단지보다 넓은 편일뿐만 아니라 한강 바로 옆이라 입지도 좋아 단독재건축 추진을 원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한양5·8차 주민들이 한양7차 조합을 인정하느냐 여부가 사업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투자조언 “좀 더 지켜보라”
전문가들은 올해 압구정 재건축 투자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보라’는 입장이다. 작년 폭등 여파로 가격 상승 여지가 적은 데다 지구단위계획에 대한 서울시 행보 등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지난해 압구정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에 작년과 같은 가격 상승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올해 압구정은 최고층수 35층 제한, 기부채납 비율, 소형평형 의무비율 이 세 가지를 서울시와 어떻게 방향성을 잡아가느냐에 따라 집값 추이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작년 말부터 쏟아지는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의 부동산 규제대책으로 강남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면서도 “개포, 고덕 등 저밀도 재건축 지역과 달리 압구정은 투자와 실거주를 병행할 수 있어 지역 충성도가 높은 지역이라 부동산 불황기에도 집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