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년 후인 2021년 미국에 로봇약사가 첫 등장한다. 2022년에는 3D프린터로 제작한 자동차가 등장하고 2025년에는 기업 회계 업무 중 30%를 인공지능(AI)이 책임진다.
다보스포럼(WEF)이 최근 제시한 <주요 기술과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전망> 중 일부다. 티핑포인트란 어떤 상품이나 아이디어가 마치 전염된 것처럼 폭발적으로 번지는 순간을 가리킨다. 아직은 상품성이 낮지만 어느 정도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산업들이 2020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의 삶을 확 바꿀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핵심에는 인공지능(AI)이 있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을, 산업을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산업과 사회 각 분야에 인공지능이 접목돼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연다.
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포럼 회장은 지난 1월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라며 “그것이 모든 시스템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4차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할 핵심 기술이 인공지능이다. AI란 인간의 두뇌작용을 컴퓨터가 스스로 추론·학습·판단하면서 행동하는 시스템이다. AI와 함께 뇌 과학, 핵융합, 양자 컴퓨터, 자율주행차, 우주 발사체, 휴머노이드 로봇, 가상현실(VR), 웨어러블 기기, 헬스케어와 바이오가 4차 혁명을 주도할 10대 미래 유망 기술로 꼽힌다.
증기기관의 1차 산업혁명, 대량생산의 2차 산업혁명, 인터넷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여는 새로운 미래의 신호탄이다.
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포럼 회장
▶4차 산업혁명 기폭제 AI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과거 산업혁명이 전 세계적 환경을 바꿔놓은 것처럼 모든 산업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 발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부상하고 기존 플레이어도 창조적 파괴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지 못하는 기업과 국가는 생존게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한계에 도달한 제조업 등에도 인공지능이 도입됨으로써 기술융합 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율주행차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6에서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가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였다. 가장 주목을 받은 자율주행차는 지난 6년간 약 300만㎞를 달린 구글카다. 내년엔 일부 지역에서 자율주행차가 운행될 거라는 다소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구글카는 최근 자체 과실에 의한 사고가 발생해 인공지능이 완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3월 7일엔 현대차 제네시스가 국내 첫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을 허가받았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올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TRI(도요타 리서치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TRI는 2020년까지 5년간 10억달러를 투자해 무인차의 핵심인 로봇과 AI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에는 도쿄대 인공지능 벤처기업 ‘PFN(프리퍼드 네트웍스)’에 10억엔(약 105억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도 지난 3월 11일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한 ‘크루즈오토메이션’을 약 10억달러에 인수했다. 독일의 BMW도 인공지능을 개발하겠다고 선포하면서 AI와 자동차의 융합을 본격 선언했다.
다임러와 아우디, BMW, GM 등 세계 주요 자동차업체들이 앞다퉈 자율주행차 개발경쟁을 벌이고 있고 중국의 유명 포털사이트 바이두도 손잡고 자율주행차 시장에 뛰어들어 무한경쟁시대를 맞고 있다. AI 로봇 기술은 자동차, 철강, 기계 등 제조업에서 공장 자동화를 급속도로 진전시키고 딥러닝·헬스케어, 의료 등 일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진행하는 엑소브레인(내 몸 바깥의 인공두뇌) 소프트웨어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는 물론 의복, 로봇 등에 탑재되어 산업구조를 변화시킨다.
의료산업에서 건강진단과 진료를 보조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업과 공공기관의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특허 경영, 법률 등에 대한 자문을 하는 등 생활 곳곳에 인공지능이 파고들어 변화를 가져온다. 질의응답 시스템을 개발해 지능형 콜센터, 헬스케어 상담, 빅데이터 분석 리포트 작성도 하게 된다. 다양한 산업환경에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기존 전통산업을 첨단 ICT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한편 신산업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에는 인간의 지적노동을 자문할 수 있는 스마트머신이 나오고 2024년에는 기계가 인간의 지적노동 중 30%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AI를 활용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 스타트업인 위버플은 금융 검색엔진에 AI 기술을 접목시켜 AI 검색엔진 딥서치를 개발 중이다. 의료 분야 스타트업 뷰노는 AI를 활용한 딥러닝 기술과 의료 데이터를 접목해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의료용 소프트웨어 ‘뷰노 메드’를 내세우고 있다.
일본의 건설기계 메이커인 고마쓰(小松)는 사람과 똑같이 땅을 파는 일을 할 수 있는 로봇인 ‘스마트 컨스트럭션’을 고안했다. 영국에서는 상품을 배달하는 ‘로봇 택배기사’가 시범운행되고 미국 일부 병원에서는 이미 약사를 대신해서 로봇이 약을 짓는다.
AI는 빅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학습을 거듭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산업 현장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인간이 놓칠 수 있는 물리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는 방대한 정보를 활용해 질병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어떤 위험이 잠재돼 있는지, 어떻게 학습을 해야 하는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의사나 약사 대신 인공지능이 환자를 문진하고 약을 실수 없이 조제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금융, 의료, 유통 등 일상 영역에 깊이 파고들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한편 관련 사업 조직을 신설하고 있다.
AI는 금융산업에서도 활용된다. 로봇이 투자 상담을 대신하는 로보 어드바이저 회사들이 다루는 자산 규모가 지난해 200억달러에서 5년 뒤에는 2조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은 로봇과 결합해 집으로 들어와 집안일도 척척 할 수 있게 된다. 로봇끼리 통신망으로 정보를 공유해 스스로 요리하고 세탁하고 장난감을 조립할 수 있다. 호텔에서는 인공지능이 내장된 로봇이 고객들과 대화하며 주변의 볼거리와 식당, 호텔시설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한다.
이 같은 인공지능의 급속한 확산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해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겸 대표는 “사람과 같은 수준의 인공지능이 나오려면 아직 수십 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만일의 문제점에 대해 지금부터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쏘울 EV 자율주행차
현대자동차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정의선 부회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뒷북치던 정부 AI 개발 자원 나서나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은 AI를 활용해 4차 산업혁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제조업 혁신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4차 산업혁명을 외치기 시작했지만 아직 제대로 시스템이 갖춰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래창조과학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규모가 미약한 수준이다. 알파고의 등장으로 AI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자 뒷북대책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낙후된 사양 산업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독일은 2011년 ITC 융합을 통한 제조업 혁신전략인 ‘인더스트리 4.0’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2025년까지 자국 내 제조업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단일 가상공장으로 연결해 스마트공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안드레아스 덴겔 독일인공지능연구센터 기술책임자(카이저슬라우테른대 교수)는 “제조업 전 과정이 고도로 지능화된 네트워크로 재편되고 있다”며 “미래 제조업의 열쇠는 AI”라고 말했다. 덴겔 교수는 “3D프린팅과 가상현실을 적용해 제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인공지능이 사물인터넷과 연결돼 산업구조가 궁극적으로 AI체제로 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정부와 기업에서 대규모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EU는 향후 10년간 11억9000만유로(약 1조8000억원)를 투입해 인간지능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본은 2021년 동경대 입시 합격이 가능한 토다이 로봇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한국은 2012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소프트웨어 핵심기술로 선정해 AI개발 지원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능정보사회 민관합동간담회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었다”며 “우리의 삶을 확 바꿀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3월 18일에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방문해 “4차 산업혁명 핵심은 스마트공장”이라며 “현대차가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빠르게 성장하는 IoT(사물인터넷),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산업 전반에 접목이 되면 핀테크, 헬스케어는 물론이고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로봇 등의 신산업이 더욱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