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변신한 서점, 리뉴얼한 교보문고 광화문점 가보니…‘오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탈바꿈
김지미 기자
입력 : 2016.04.05 10:52:28
수정 : 2016.04.05 10:53:54
Book Store
‘서점에서 도서관을 만나다’
학창시절 대형서점을 떠올리면 누구나 공감하는 기억이 있다. 한 곳에 오래 서서 책을 읽거나, 책을 베끼거나 이것저것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아서 직원의 눈총을 받은 경험이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라는 생각에 사지도 않을 책을 읽는 게 늘 불편했다. 최근 서점가에 변화가 일고 있다. 서점이 도서관이나 카페처럼 마음껏 책을 읽고 휴식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대형서점의 원조이자 상징격인 교보문고 광화문 본점이 달라졌다. 최근 3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한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서점 안에 도서관과 갤러리, 카페 등이 들어온 듯 낯설고 새롭다. 지하 1층 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통로와 한층 낮아진 서가가 책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실제 이번 리뉴얼로 서가 높이를 70㎝가량 낮추고 서가 간의 간격도 30㎝ 늘렸다고 한다. 쾌적하고 시야가 편안하다고 느껴지는 데는 조명도 한몫한다. 자연광과 유사하도록 조명의 조도를 개선하고 포인트 조명으로 책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 것. 또 곳곳에 놓인 화초가 자연친화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대리는 “‘오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서점을 선보이는 게 이번 리뉴얼의 핵심”이라면서 이에 “독자들이 쉬면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좌석을 400여 석으로 4배가량 늘렸고, 책과 관련된 미술전시를 상시 개최하는 서점 속 갤러리를 도입한 게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전했다.
실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는 한번에 100명이 앉아서 독서할 수 있는 초대형 독서 테이블도 있다. 이 독서 테이블은 무려 연식이 5만년이나 되는 뉴질랜드산 카오리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5만년이면 인류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던 시기다. 원래 뉴질랜드 카오리 소나무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며 수천년까지 자라는데, 이번에 테이블로 만들어진 소나무는 5만년 전 자연재해로 인해 늪지대에 묻혀 있다가 지난해 7월에 채굴된 것. 늪지대에서 산소와 접촉이 차단되어 수만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주말이나 평일 오후가 되면 호모 사피엔스와 동시대에 있었던 나무로 만든 테이블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책을 읽는 장관이 연출된다. 카오리 테이블 말고도 서가 곳곳에는 1인 또는 여러 사람들이 휴식과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가죽 소파가 놓여 있다. 광화문점은 서점이지만 고객들이 도서관마냥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조명도 자연광으로 바꿨다. 리뉴얼 오픈 두 달 남짓 된 지금 방문객 수는 현저하게 늘었다.
▶호텔식 컨시어지 서비스처럼 상담
이곳의 색다른 점은 컨시어지 서비스에도 있다. ‘컨시어지(Concierge)’는 호텔을 방문한 고객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서비스나 사람을 말한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는 영업장 곳곳에 컨시어지들이 상주해 있고, 그들과 상담을 원하는 고객들은 호텔처럼 편안하게 앉아서 원하는 사항을 요청할 수 있다. 이른바 북 컨시어지들은 도서를 찾아주는 단순 서비스에서부터 도서 상담 및 추천, 개인별 맞춤형 검색 등 전문 도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서점 안에서 구현하고 있는 광화문점은 독서와 휴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힐링 공간 배치와 호텔식 북 컨시어지 서비스와 함께 고급문화를 접할 수 있는 갤러리도 운영한다. 서점 안에 새롭게 문을 연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는 미술전시를 위한 전용 공간이다. 허정도 교보문고 대표이사는 리뉴얼 오픈식에서 “동양에선 예로부터 ‘글씨와 그림의 근원은 같다’라는 의미로서 ‘서화동원(書畵同源)’이란 말을 즐겨 사용해왔다. 즉, 문학과 미술, 책과 그림은 넓게 보면 뿌리가 같은 시각예술로 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번 ‘교보아트스페이스’ 개관으로 교보문고에서 책과 함께 다양한 시각예술 콘텐츠까지 경험하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큐레이션 기능 강화와 푸드 공간 변화는 과제
리뉴얼 오픈 후 방문객 수는 크게 증가했으며 고객들 반응은 대부분 호평이다.
만년필과 커스텀주얼리를 판매하는 매장 그리고 문구류나 각종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브랜드 숍이 들어서 있는 것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옷이나 액세서리를 취급하는 패션에 국한되어 있던 라이프스타일 숍 개념을 서점에 적용해서 고객의 편의성을 높여서다. 하지만 서적 등 물건과 서비스 과잉공급 시대에 소비자들에게 보다 참신하고 편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큐레이션 기능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책 대신 취향을 팔다
일본 츠타야 서점의 놀라운 성공
일본 하코다테 츠타야 서점
요즘 여행객들 사이에서 일본 도쿄를 가면 꼭 들러야 할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이다. 교통이 불편한 도심 외곽에 있는데도 여행객이 일부러 찾아갈 정도로 인기다. 츠타야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문화공간으로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이다. 츠타야 서점은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ulture Convenience Club·CCC) 최고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의 독특한 경영철학에서 시작됐다. 마스다 대표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넘쳐나는 물건과 서비스 속에서 고유한 취향을 선망하고 제안을 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봤다. 고객에게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스타일, 의미, 감성을 제안하고 기획해 선보여야 성공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의 책 <지적자본론>(마스다 무네아키 저·민음사 펴냄)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수한 디자인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제안을 내포하고 표현까지 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밀봉성이 높은 세련된 텀블러글라스라면 그것을 선택한 사람에게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고, 섬세한 의장이 들어간 와인글라스라면 때때로 양질의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제안이야말로 우리 회사가 완수해야 할 역할이다.” 사람들이 서점이 사양화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할 때, 마스다 무네아키 사장은 “책 한 권은 그야말로 제안 덩어리다. 서점은 서적 그 자체를 판매하려 하기 때문에 ‘서점의 위기’라는 사태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는 역발상을 했다. 서점이 서적을 파는 곳이라는 틀을 깬 그는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서점을 만들어 지난해 기준 일본 전역에 1400여 개 지점과 약 5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성공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1983년 그가 퇴직금의 절반인 100만엔을 종자돈으로 32평 규모의 1호 서점인 츠타야 서점 히라카타점을 낸 지 30여 년 만의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