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들 ‘유커 VVIP’ 모시기 전쟁…‘2030 황금손’ 한 번 방문에 2000만원 이상 사들여
이새봄 기자
입력 : 2015.11.19 17:25:31
#1. 내년 3월 결혼 예정인 짱이치안(33) 씨는 최근 예비남편과 함께 혼수준비 겸 웨딩촬영을 위해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첫날 예비남편과 함께 청담동에서 드레스를 고르고 관광일정을 소화한 그녀는 이튿날에는 웨딩촬영을 했다. 여기까지는 결혼을 준비하는 여느 예비 부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클래스’는 마지막 날 확인됐다. 그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을 찾아 예물을 구입했다. 짱이치안 씨 본인의 예물로는 1억 4000만원 상당의 블루사파이어 목걸이를 샀고, 남편과 함께 커플 예물시계도 1억7000만원에 맞췄다. 이들이 약 3시간 만에 명품관에서 쓴 돈은 3억1000만원에 달한다.
#2. 중국 무안 시 출신 28세 마오 진 이엔 씨. 그의 아버지는 중국 굴지의 글로벌 기업 임원이다. 그는 지난 2012년 교환학생으로 방문해 1년 넘게 한국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됐다. 귀국한 지 2년여 만에 지난 8월 다시 한국을 찾아 유명 에스테틱에서 피부·체형 관리 컨설팅을 받고 인근 성형외과에서 코·턱선을 보정하는 성형을 했다.
그녀는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며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에서만 9800만원어치의 물건을 구입했다. 까르띠에 커플링 등 주얼리에 8000여 만원을 쓰고, 자신과 가족을 위한 의류를 1000만원어치 샀다. 설화수, 아모레퍼시픽 등 선물용 화장품을 포함해 화장품에 쓴 금액도 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평균 객단가 3000만원, 일반 유커의 30배
한국을 찾은 유커(중국인 여행객)들이 백화점·면세점에서 ‘큰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이들 중에서도 씀씀이가 더 큰, ‘황금손’을 가진 VVIP 유커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 번 방문 시 최소 2000만원 이상의 제품을 구매하고, 신상품이 나오는 분기별로 한 번씩 백화점 명품관을 찾아 쇼핑을 즐기는 이들은 내국인 VVIP만큼이나 백화점 내에서 ‘가장 귀한 손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이 자체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이들의 평균 객단가는 3000만원. 평균 구매액이 100만원대를 넘어서지 않는 일반 유커들의 30배를 웃돈다. 한국 백화점에서 내국인 ‘VIP’ 등급은 연간 구매액 800만원 이상이면 주어진다. 중국 VVIP 유커들의 한국 방문 횟수가 연 2~4회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한국에서 구입하는 금액은 연간 5000만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현대백화점도 올해 들어 일반 한국 VIP 고객 제도를 벤치마크해 중국인 대상 VIP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실버, 골드, 다이아몬드 3개 등급으로 구성해 각 500만원 이상, 4000만원 이상, 1억원 이상 구매한 중국인 고객들에 한해 등급을 부여한다. 현대백화점의 전체 중국인 매출 중에 이들 VIP 중국인들의 매출 비중은 76%에 달한다. 상위 20%의 소수 고객(VIP)들이 80%의 매출을 일으킨다는 유통업계의 ‘황금률’(파레토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1억원 이상을 구매하는 VVIP들은 그야말로 ‘각별한 손님’일 수밖에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의 성장률이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유커 고객의 매출 신장률은 52%인 반면 VVIP(연간 4000만원 이상 구매객)의 매출 신장률은 206%에 달한다. 내국인 ‘큰손’인 백화점 VIP 고객의 매출 신장률이 연 약 3% 수준인 것과 비교해보면 더욱 매력적이다. 객단가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객단가는 평균 3000만원으로, 2012년 1000만원에 비해 200% 이상 신장했다. 일반 유커들의 경우 총 구매액은 매년 오르고 있지만 객단가는 100만원 선에서 큰 변동이 없다. 이 때문에 면세점뿐 아니라 백화점들도 ‘유커 VVIP’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커 VVIP 절반 2030 젊은 황금손
유커 VVIP들이 한국 VVIP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젊다는 것. 신세계백화점이 이들의 연령대를 분석해본 결과 30대가 25%로 가장 높았고, 20대는 23%로 두 번째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20~30대 층이 전체 VVIP의 절반(48%)에 육박하고, 40대(21%)까지 합치면 69%를 차지했다. 이들 중 62%는 여성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한국 VVIP 고객들의 경우 연령층이 50~70대에 포진돼 있는 반면 중국 VVIP 고객들은 한국 대비 25~30세가량 낮은 연령대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젊은 부자들은 ‘버링하우’세대라고 불리는 1980년대 이후 출생 세대다. 중국의 산아제한(1자녀정책) 때문에 외동아들·딸로 태어나 부모와 양쪽 조부모 등 총 6명의 사랑을 받고 자란 이들은 구매에도 거리낌이 없는 게 특징이다. 특히 이들이 이제 막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예물·혼수 등 결혼준비를 하러 한국에 와 거리낌 없이 돈을 쓰고 있다. 꼭 결혼 준비가 아니더라도 계절마다 찾아오는 중국의 4대 연휴(춘절, 노동절, 국경절, 연말)에 한국을 찾아 눈독 들이던 ‘신상품’들을 구매해간다. 신세계 관계자는 “VVIP들은 가격에 구애받지 않는 구매를 하기 때문에 얼마나 더 싼지보다는 쇼핑환경이 얼마나 더 좋은지에 초점을 둬 복잡한 면세점보다 백화점 쇼핑을 선호한다”며 “또한 일부 명품들은 면세점과 백화점의 제품 구성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백화점 명품관을 찾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구매 성향이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특성상 이들은 보석·시계류를 특히 많이 구매하는 편이다. 유커 VVIP들의 매출 중 절반 이상이 시계와 보석에서 나온다. 한국 VVIP들도 명품 시계를 선호하지만 보통 3000만~5000만원대 상품을 집중해 구입하는 반면 유커 VVIP들은 보석이나 금으로 제작된 1억원 안팎의 최상급 모델을 구입하는 편이다. 이 때문에 럭셔리 시계들 중에서도 최상위급 시계의 중국인 매출 비중은 내국인 매출 비중을 넘어선 지 오래다. ‘바쉐론콘스탄틴’, ‘파네라이’ 등 면세점에 거의 입점돼 있지 않은 ‘콧대 높은 최고급 브랜드’들이 이들의 선호 브랜드다. 반면 우리나라 VVIP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는 IWC다. 이 때문에 신세계백화점은 VVIP 유커들을 잡기 위해 서울 중구에 위치한 본점 지하 1층에 큰손 중국인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하는 럭셔리 시계 전문관도 선보였다.
하지만 이들이 물불 가리지 않고 ‘화려함’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중국 VIP들은 특히 의류의 경우 중국 미진출 브랜드를 SNS를 통해 알고 한국에 오는 경우가 많고, 제품 선정 시 가격이나 브랜드보다는 자신의 체형이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등 이미 수준이 한국 VIP 고객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일본 고객들이 유명 브랜드 위주로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SNS 등을 통한 정보 습득력이 한국 VIP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 명품 브랜드별 제품군에 대한 정보를 ‘꿰고 있는’ 수준이라는 게 현장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화장품의 경우 사전 정보 수집을 통해 확신이 서면 한번에 300만원 이상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고급 리무진 에스코트, 일대일 통역
유통업계 유커 VVIP 잡기 맞춤서비스
성장 잠재력이 큰 ‘유커 VVIP’들을 잡기 위해 유통업계에는 이들만을 위한 맞춤 서비스들을 내놓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조선호텔, 신라호텔, JW메리어트, 힐튼호텔 등 특급 호텔과 연계해 이들이 쇼핑을 원할 경우 최고급 리무진을 통해 본점·강남점으로 에스코트를 했다. 쇼핑 시에는 신세계 소속 중국인 직원이 1 대 1로 함께하며 통역·상품 설명을 해주는 ‘퍼스널 쇼퍼’ 서비스를 진행한다. 이들은 VIP 카드를 발급받은 내국인만 이용할 수 있는 VIP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상품권 증정 서비스 등을 국내 VIP고객과 동일하게 우대한다. 갤러리아는 VVIP들을 선별해 ‘문자서비스’도 진행한다.
현대백화점 역시 VIP로 분류된 유커 고객에게 발렛서비스를 제공하고 플래티늄 라운지(VIP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게 하며 생일 케이크, 1 대 1 퍼스널 쇼퍼 서비스, 할인권 제공 등 한국 VIP 고객들이 이용하는 서비스도 함께 이용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발렛서비스의 경우 한국을 자주 찾거나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 VIP 고객들이 특히 만족스러워 하는 서비스”라며 “한국을 자주 찾는 중국 VIP들은 수입차를 리스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발렛서비스가 되자 쇼핑뿐 아니라 식사나 미팅도 백화점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갤러리아 역시 중국 VIP 고객을 별도로 분류해 쇼핑 정보, 할인혜택 등을 담은 문자를 전송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