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라운드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캐디가 좋아한다. 때로는 기분 좋게 줘도 한마디 듣고, 안주면 쪼잔한 골퍼가 된다. 평소에는 잘 주다가도 큰돈이 걸리면 주기 싫다. 그날따라 퍼터가 야속하게만 짧다.
주말골퍼들이라면 이쯤 되면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기브(일명 OK)다. 이 OK라는 것이 ‘기브’, ‘컨시드’, ‘집어(들어)’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 만큼 요상한 녀석이다. 미국 프로골프(PGA) 룰에 있는 것도 아니라 기분이나 상황, 상대방에 따라 들쑥날쑥 변하는 게 바로 OK다.
먼저 ‘OK 거리’를 한번 보자. ‘주말골퍼 룰’로 보면 OK 거리는 퍼터의 그립 뺀 부분 안에 공이 들어오는 정도다. 하지만 이 ‘거리’에 정답이 없다. 언제는 OK가 되고 또 언제는 안 된다. 누군가 3퍼트를 하고 2m 정도가 남으면 동반자들 모두 기분 좋게 OK를 외친다. 너무 고통 받지 말고 기분 좋게 홀을 끝내라는 배려다.
하지만 1m 안쪽으로 남은 파 퍼팅이면 어떨까. 이때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스킨스게임을 할 때 동반자 두 명이 먼저 파를 했다면 모두들 “오케이”를 외치며 공을 집어준다. 하지만 넣으면 동타가 되고 실패하면 혼자 상금을 독식하게 될 때에는 갑자기 과묵해진다.
또 한 가지. OK는 ‘라이’도 탄다. 오르막과 내리막, 옆으로 휘는 라이에 따라서도 들쭉날쭉하다. 프로골퍼들도 부담스러워 하는 퍼트가 50㎝도 되지 않는 내리막 옆라이 퍼팅이니 아마추어들이야 그 부담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OK 한 번에 동반자들과 싸늘한 분위기가 오가기도 한다. 상황을 한번 보자. “조금 전에 이 거리에서 내가 OK 줬잖아”라고 치사하다는 듯 누군가 불평을 하자, 상대방은 “내 건 오르막이었고 네 건 내리막에 옆라이잖아”란다. 이때 OK를 못 받고 한 퍼팅이 성공이라도 하면 OK주지 않은 사람은 소심하고 째째한 사람이 되거나 “거봐, 내가 넣을 줄 알고 일부러 안 준거야”라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한다. 만약 실패하면 아마 둘의 라운드는 이때가 마지막일 수가 있다.
이렇게 미묘한 심리가 오가는지라 OK에도 싱글이 있다. 상황에 따라 OK를 이용해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이 바로 OK 싱글이다. 이런 골퍼는 평소에는 후하게 OK를 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크’를 외친다. 이때 상대방은 ‘어! 지금까지는 이 거리 OK 줬는데 왜 이러지? 오늘 쇼트퍼팅 별로 안 해봐서 감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잔뜩 긴장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면 만약 그 홀에서 퍼팅에 성공해도 다음 홀부터 샷 리듬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국내 프로골프대회 중 매치플레이 대회에서 해프닝이 일어난 것도 이와 비슷하다. 앞선 홀에서 OK를 줬던 거리만큼 남아 공을 집었다. 하지만 상대편은 OK를 주지 않았고 임의로 공을 집었다고 얘기해 결국 공을 집은 골퍼는 그 홀에서 패하고 말았다. 두 선수가 이후 두고두고 앙숙이 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하지만 ‘달콤한 유혹’ OK를 많이 받는다고 상대방을 너무 좋은 골퍼라 칭찬하지는 말자. 50㎝ 안팎의 퍼팅은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거리다. 무조건 넣어야 하고 만약 실패하면 그 파장이 두고두고 갈 수 있기 때문. OK를 후하게 주는 골퍼는 당신의 쇼트퍼팅 능력을 갉아먹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OK를 자주 받는 당신 좋아하지 말자. 자주 쳐보지 않으면 영원히 ‘싱글’이 될 수 없는 보기플레이어로 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