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단어,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협업: 모두 일하는, 협력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공동 출연·경연·합작·공동 작업)’의 열풍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 콜라보레이션은 타 브랜드와의 차별화된 이미지 제고를 위해 그 동안 다양한 브랜드에서 진행돼 왔다. 소득 수준은 여전히 중산층일지라도 문화적, 교육적 수준이 예전보다 높아지면서 사회적 신분 상승 욕구가 아주 높은 ‘비트윈 소비자’ 계층은 소위 ‘스몰 럭셔리’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남과 다른 나, 더 소중한 나를 위해 월세를 살고 있을지라도 수만 원 짜리 향초를 켤 수 있는 삶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새로운 소비자들은 특정 유명 럭셔리 브랜드에만 치우쳐 열광하기보다 자기만족을 위한 브랜드를 선호하고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선택, 구매할 수 있는 영민하고 전략적인 소비자들이다. 이렇게 똑똑한 ‘비트윈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근 거의 모든 브랜드들이 공통적으로 행하고 있는 마케팅 행위가 바로 이 콜라보레이션이다.
다양한 확산이 돋보이는 패션계의 콜라보레이션
디자이너 제레미 스콧이 디자인한 롱샴의 ‘르 플리아쥬 백’
콜라보레이션은 그 어느 분야보다 패션계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패션계의 콜라보레이션은 브랜드의 입장에선 지루해진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에 브랜드 정체성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래의 이미지와 개성은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라인을 추가해 소비자의 입장에선 같은 브랜드 내에서 다양한 상품을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니클로’ 같은 저가 브랜드가 비싸디 비싼 질샌더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선보인 하이 라인 ‘+J’가 있으며 ‘H&M’과 협업해 탄생한 ‘칼라거펠트’, ‘빅터앤롤프’, ‘랑방’ 재킷이 있다. 이처럼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에 구입할 수 있는 일은 저가 SPA 브랜드와 세계적으로 유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콜라보레이션이 아니었다면 감히 일어날 수 없는 패션의 기적과도 같다.
패션계의 콜라보레이션은 이제 브랜드와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와 브랜드, 브랜드와 스타,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콜라보레이션 등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예술과 패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패션은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옷으로 디자인되기도 하고 패션에서 영감을 얻어 예술 작품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렇게 예술과 상업적인 패션이 함께해 그 두 가지 면을 최대로 끌어 올리는 콜라보레이션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앤디 워홀, 빈센트 반 고흐, 잭슨 폴락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의 작품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옷장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을 ‘아트 인스피레이션(art inspiration)’이라 하는데, 지금까지 패션 디자이너들은 여러 방법으로 미술과 패션의 접목을 시도해 왔다. 미술과 패션의 손잡기의 효시는 아마도 1960년대에 ‘이브 생 로랑’이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그림을 드레스에 입혀 완성한 몬드리안 룩일 것이다.
또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앵그르 작품이 담긴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드레스도 있었다. 이렇게 과거에는 미술과 패션의 콜라보레이션이 미술 작품의 이미지를 투영시키는 정도였다면 최근엔 아티스트가 해당 브랜드의 디자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콜라보레이션의 의미가 더욱 다양해지고 깊어지고 있다. ‘루이비통’은 일본의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모노그램의 다양한 색깔의 조화와 깜찍한 캐릭터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되찾았다. 아줌마들의 백으로 전락할 뻔했던 루이비통을 젊은이들에게 다시 사랑받을 수 있도록 부활시킨 발판이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마련된 셈이다.
신세계 강남 남성관 리뉴얼을 위해 작업한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장 필립 델롬의 작품
또한 앤디 워홀의 영향 아래 미술, 음악, 패션의 융합을 시도했던 스테판 스프라우스의 펑키하고 와일드한 그래피티가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스테판 스프라우스 컬렉션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한편 영국의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는 그의 작품 ‘나비’와 ‘스핀’을 리바이스의 데님 재킷과 팬츠에 입혔다.
그런가 하면 그 못지않은 영국의 스타 작가 트레이시 에민은 ‘롱샴’ 가방을 아플리케(서양 자수의 일종)와 패치워크, 핸드 페인팅으로 꾸몄다. 일본의 캐주얼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는 미국의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티셔츠로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슈즈 브랜드 ‘캠퍼’는 초현실주의 대표 작가 호안 미로의 작품이 담긴 ‘호안 미로 트윈스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였다.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 ‘컨버스’는 앤디워홀, 리히텐슈타인의 이미지를 차용한 ‘2010SS 콜라보레이션’ 라인을 선보여 평범한 슈즈에 예술의 깊이를 더했다. 캐주얼 브랜드 ‘GAP’은 제프 쿤스, 척 클로스 등 유명 작가들과 협업해 ‘아티스트 에디션스 티셔츠’를 내놓았다. 국내의 경우 ‘금강제화’와 박영숙 작가의 협업으로 ‘금강 핸드백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악어가죽 가방으로 유명한 ‘콜롬보’는 9명의 한국 작가와 밀라노의 장인들이 합심해 만든 총 40여 점의 진귀한 가방들과 악어가죽 모빌과 설치 작품, 영상 등을 선보이며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장 필립 델롬이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남성관 리뉴얼을 기념한 일러스트레이트 공동 작업을 통해 6명의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남성들을 이미지로 표현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의적으로 발상의 테두리를 부수고 있는 패션과 예술의 콜라보레이션은 패션의 예술성과 예술의 대중성을 기대하며 새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인스턴트 패션에 대한 반성과 예술의 상업적인 논란이 불거진 것도 사실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단순히 즐기고 소비하는, 의식적인 소비란 덕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