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기록한 펜, 몽블랑!”
세계의 역사를 결정짓는 순간에는 언제나 몽블랑이 함께 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그들의 서명이 바로 몽블랑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뼈아픈 기억이 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 당시에도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몽블랑으로 신청서에 서명했다. 이런 이유로 몽블랑은 단순한 만년필을 넘어 시대를 가로지르는 전설이 됐다.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상징으로 사회지도층의 인격을 대변할 정도로 ‘전설’이 된 것이다.
만년필로 시작해 액세서리와 럭셔리 수제 시계까지 ‘명작’이 되고 있는 몽블랑의 100년 역사를 살펴봤다.
전설적인 명작 ‘마이스터스튁’
만년필의 명작으로 불리는 몽블랑은 1906년 독일 함부르크의 문구상인이었던 클라우스 요하네스 포스(Claus Johannes Voss), 알프레드 네헤미아스(Alfred Nehemias), 아우구스트 에버스타인(August Eberstein)으로부터 시작됐다.
1908년 회사명을 ‘심플로 필러 펜 컴퍼니(Simplo Filler Pen Company)’로 등록하며 ‘Rouge & noir’ 펜을 출시한 몽블랑은 당대 지성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1909년 회사명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다. 또 몽블랑의 상징인 화이트 스타와 로고를 모든 제품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브랜드 로고로 사용되고 있는 ‘화이트 스타’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몽블랑의 눈 덮인 여섯 개의 봉우리를 상징하며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몽블랑은 이후 1924년 전설적인 명작 ‘Meisterstuck(마이스터스튁, 독일어로 명작) 149’ 펜을 탄생시켰다. 이 마이스터스튁 만년필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중요한 문서에 서명하는데 사용됐으며 당시 생산된 펜은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마이스터스튁 펜은 1929년 ‘4810’이란 숫자를 새긴 새로운 버전을 출시했는데 이는 몽블랑 산의 높이(4810m)를 의미한다.
몽블랑이 이처럼 높은 명성을 얻게 된 가장 큰 배경은 바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은 장인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 현지 생산공장에서는 멀쩡한 펜이 버려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돋보기를 통해 살펴보면 미세한 스크래치가 있기 때문에 완성된 펜이 될 수 없어 버려지는 것이다.
하나의 완성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무려 6주 이상의 시간이 걸리며 250가지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18K 골드를 소재로 한 만년필 펜촉의 경우에는 별도로 35단계의 공정과 15종류의 테스트를 통과해야지만 완성품으로 탄생된다.
그래서일까. 몽블랑은 지난 100년 동안 당대 지성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서독의 슈미트 전 수상,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스페인의 소피아 여왕 등이 몽블랑의 열렬한 팬이며 존 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들도 몽블랑 애호가를 자처하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은 몽블랑 만년필 애호가로 유명하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클래식
몽블랑은 1934년 회사명을 ‘몽블랑 심플로(Montblanc Simplo GmbH)’로 변경하면서 문구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1935년에는 오펜바흐(Offenbach)의 가죽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인수해 몽블랑 상표의 데스크 액세서리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1986년에는 귀금속으로 만든 ‘마이스터스튁 솔리테르 컬렉션(Meisterstuck Solitaire Collection)’을 출시했다.
이미 만년필 하나로 명품 반열에 올라선 몽블랑은 전 세계가 금융위기로 긴장하고 있던 1997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바로 시계 산업이다. 몽블랑은 현재 스위스 시계산업의 중심지인 ‘르 로끌 매뉴팩쳐(Manufacture Le Locle)’와 하이엔드 시계 제조를 위해 특화된 ‘빌르레 매뉴팩쳐(Manufacture Villeret)’를 통해 수제 시계를 선보이고 있다. 이중 르 로끌 매뉴팩쳐는 지난 2008년 몽블랑의 자체 기술력으로 완성시킨 최초의 무브먼트를 공개했다.
‘니콜라스 뤼섹’이란 최초의 크로노그래프를 발명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몽블랑 스타 니콜라스 뤼섹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Star Nicolas Rieussec Monopusher Chronograph)’는 기존 크로노그래프와 달리 핸드는 수직으로 고정돼 있고 아래 다이얼디스크가 회전하는 독특한 타입이다. 이와 함께 스위스 빌르레 지방에 위치한 빌르레 매뉴팩쳐에서는 하이엔드 시계만을 제조하고 있다. 빌르레 매뉴팩쳐는 150년 전통의 스위스 수제 시계회사였던 미네르바를 몽블랑이 인수하면서 사명을 변경했다. 현재 이곳에서는 몽블랑의 고급 시계 컬렉션인 ‘빌르레 1858’ 만을 제조하고 있다.
몽블랑 측은 현재 전체 매출의 18%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시계 부문이 앞으로 5년 내에 필기구 부문(45%)을 뛰어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만년필에서 문구액세서리와 수제 시계까지 사회지도층들의 눈길을 끌고 몽블랑은 이 같은 배경으로 ‘장인들의 열정과 정성’을 꼽고 있다. 몽블랑(Montblanc)의 CEO인 루츠 베이커(Lutz Bethge) 회장은 지난해 5월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을 위해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새로운 제품을 완성되면 디자이너들을 모아 놓고 늘 똑같은 질문을 한다”며 “우리 제품을 가진 고객들이 20년 후에도 자랑스러워하겠는가라고 묻는다”고 말했다. 한 순간의 유행에 휩쓸리는 디자인이 아닌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클래식을 추구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부모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상품이 바로 몽블랑이 추구하는 디자인이라고 베이츠 회장은 강조했다.
한편 몽블랑은 1977년 영국의 던힐(Dunhill)에 인수됐다가 1988년 던힐과 함께 까르띠에(Cartier), 클로에(Chloe), 반 클리프&아펠(Van Cleef & Arpels), 보메 메르시에(Baume & Mercier) 등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스위스 명품그룹 리치몬트(Richemont)의 가족이 됐다.
몽블랑이 진행하는 ‘2011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에 선정된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몽블랑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몽블랑이 ‘문화예술 후원자상’으로 선정했던 존 F.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br>몽블랑이 ‘문화예술 후원자상’으로 선정했던 버락 오바마 현 미국 대통령.
몽블랑이 1929년 선보인 ‘마이스터스튁 4810’. 18k 골드를 소재로 사용해 특별함이 강조됐다.<br>메세나’의 어원이 된 가이우스 메세나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메세나 에디션(Mecenat Edition)’
문화예술 사상 최대의 전성기로 불리는 중세 르네상스. 다빈치를 비롯해 미켈란젤로 등 수많은 예술인들과 지성인들이 등장하며 ‘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그 시절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한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로렌조 디 메디치’다.
그는 금융업을 통해 축적한 가문의 재산을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에 지원했다. 다비드상을 조각한 미켈란젤로와 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는 그가 후원했던 대표적인 예술가들이다.
이처럼 뛰어난 예술가 뒤에는 언제나 그들을 지원해주는 후원자들이 있었지만 정작 그 후원자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뛰어난 작품만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 뿐 그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후원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몽블랑은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Montblanc de la Culture Arts Patronage Award)’이란 행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도록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은 인물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축하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2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20회째를 맞이한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시상식은 한국을 비롯해 독일, 러시아, 멕시코, 미국,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일본, 중국, 프랑스, 홍콩 등 전 세계 12개국에서 개최되고 있다.
시상에 앞서 각 나라마다 3명의 심사위원과 3명의 수상 후보가 선정되는데 이는 모두 ‘몽블랑 문화재단’ 주관 하에 이루어진다. 심사위원은 예술가, 작가, 음악가, 디자이너, 영화감독 등 직접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다. 이렇게 선발된 국제 심사위원단이 각 국가별 3명의 후보 중 1명의 최종 수상자를 선정해 발표한다.
현재까지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의 주인공이 된 이들은 전 세계 총 167명에 달한다. 최초 수상자는 1992년 미국의 록펠러 재단(미국)과 조르주 퐁피두 부인(프랑스)이 선정됐으며 2000년에는 홍콩 출신 배우에서 할리우드 액션스타가 된 성룡(홍콩)도 수상자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수상자가 배출됐다. 고 박성용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이 대한민국 최초로 제13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수상한 것. 이어 2005년 박영주 이건문화재단이사장, 2007년 김영호 일신문화재단 이사장, 2008년 이세웅 신일문화재단 이사장(예술의전당 이사장), 2009년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 지난 2010년에는 신창재 대산문화재단 이사장(교보생명 회장)이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 ‘제20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자로는 영국의 찰스 황태자(The Prince of Wales), 스페인의 소피아 왕비(Queen Sofia), 일본의 오노 요코(Ono Yoko) 등이 선정됐다. 한국 수상자로는 한국 전통문화인 국악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꾸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이 지난 7월4일 올해의 후원자상에 선정돼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수상했다.
윤 회장은 국악을 향한 열정을 갖고 2007년 민간기업 최초의 전통국악단인 ‘락음국악단’을 창단했으며 국악 꿈나무 경연대회를 통해 국악의 아름다움을 알림과 동시에 국악의 미래발전을 이끌어 갈 젊고 재능 있는 국악인 발굴에도 심혈을 기울인 공로로 몽블랑의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자가 됐다. 문화예술인이 아닌 후원자들을 위한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이 관심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부상으로 수여하는 만년필(Patron of Art Edition)에 있다.
해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한정수량 생산되는 후원자 펜은 해당 인물이 추구했던 문화예술 양식 또는 시대의 특징을 디자인에 반영해 애호가들 사이에서 귀중한 수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는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을 일컫는 단어 ‘메세나(mecenat)’의 어원이 된 가이우스 메세나(Gaius Maecenas)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메세나 에디션(Mecenat Edition)’이 제작됐다. 로마 양식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된 ‘메세나 에디션’은 로마 사원의 웅장한 기둥을 표현하는 바디와 로마 검을 상징하는 펜클립 등이 인상적이다.
문화예술 후원자 펜의 디자인 영감이 된 가이우스 메세나는 로마제국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며 정치가다. 호레스와 버질과 같은 당대 최고의 천재 시인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 ‘예술가 후원’의 어원이 된 단어 ‘메세나(Mecenat)’의 주인공이 됐다.
한편 올해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시상식’의 한국 심사위원으로는 박인자 한국발레협회 회장,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택주 숙명여대 음대 학장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