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개 계열사(BC카드 포함) 간에 협력과 시너지 효과를 강화하는 그룹 경영을 본격화하겠다.”
지난 5월26일 KTF와 합병 2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석채 KT 회장은 이전부터 그려왔던 ‘KT의 그룹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재벌이 아니기에 무조건적인 몸집 불리기는 안 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말하는 그룹경영은 어떤 것인가. KT 본연의 영역인 통신뿐 아니라 비통신 영역의 매출을 전체 매출의 45%까지 확대하고 글로벌 사업 확대로 압축된다. 어느 한 분야에서만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열사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가시적인 성과는 2015년 매출 40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30개(BC카드를 아직 완전히 인수하기 전) 계열사를 두고 있으며 재계순위 10위권에 해당하는 KT와 이석채 회장의 원대한 포부다. 조직만 놓고 보면 KT는 이미 회장(이석채)-부회장(석호익)-사장단-부사장단 체제를 갖춰 그룹화 돼 있다.
위기의 KT에 취임한 첫 관료 출신 CEO
KT 분당 본사.
KT에게 올해는 중요한 해다. ‘공기업’ KT가 민영화된 지 만 10년째 돌입하고 KTF와 합병한 지 2년이 넘는 해다. 또 이석채 회장은 올해가 임기(3년) 마지막 해로 내년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해다. 지금으로서는 이 회장의 연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KT의 경쟁업계 한 관계자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연임하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레 말했다. KT 측은 “아직 왈가왈부할 단계가 아니다”는 말로 대신했다.
하지만 무슨 변수가 튀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임 남중수 사장(KT에서 ‘회장’이라는 직함을 쓴 건 이석채 회장 때 와서다)의 낙마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CEO에 대한 평가는 항상 임기말에 좌우된다. 따라서 이 회장의 연임 여부는 올 하반기가 변수다. KT와 이석채 회장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달렸다.
정부 방침에 따라 공기업 KT의 민영화가 완료된 것은 2002년 5월이다. 그러나 KT는 여전히 ‘공기업’의 모습을 떨치지 못했다. 민영화되기 전은 물론 민영화 후에도 상당 기간 KT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2008년까지 계속 매출이 11조원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임직원 수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 조직은 비대해지기만 했다.
2000년대 들어 국내 통신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화했다. 국내 통신시장의 절대강자로 인식됐던 KT는 별다른 이슈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KT는 유선전화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터라 급속히 확대되는 이동통신 부문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철밥통’ 시절의 공기업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공룡’ KT가 안주하는 동안 이동통신 부문에서 SK텔레콤(SKT)의 독주체제가 굳어져 갔다. 이동통신뿐 아니라 초고속 인터넷, IPTV 등 변화를 먼저 포착하고 새로운 영역을 먼저 점령하는 치열함이 없으면 통신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KT는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2008년 말 남중수 사장의 비리 사건이 터졌다. 더욱이 남 사장은 2008년 초 열린 KT 정기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해 민영 3기를 이끌어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2008년 11월5일 남 사장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차명계좌로 납품업체의 돈을 받은 것이다. 당시 자회사였던 KTF의 조영주 사장도 이미 같은 혐의로 먼저 구속됐다. KT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상황이었다.
이런 KT에 새바람을 몰고 온 사람이 이석채 회장이다. 이 회장이 KT 사장으로 내정될 당시 많은 사람은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지낸 관료 출신인 데다 당시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의 입장도 어정쩡했을 뿐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다른 사장 후보들이 중도에 하차하고 이 회장 단독으로 사장 후보에 추천됐기 때문이다. 또 통신사를 관리·감독하고 규제하던 입장에서 규제받는 입장으로 바뀌는데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우려감도 있었다.
사장 취임 후 6일 만에 KTF와 합병 결정
민영화 이후 여전히 공기업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KT에 첫 관료 출신 사장이 취임하자 공기업으로 회귀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민영화 작업을 마무리한 이상철 사장(현 LG유플러스 대표이사 부회장), 민영 1기 이용경 사장, 민영 2기 남중수 사장이 모두 KT 출신이었다는 점과 극명하게 대비됐던 것이다.
2009년 1월 당시 KT 사장으로 취임한 이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변화와 혁신, 개혁을 외쳤다. 2002년 민영화된 이후에도 7년간 공기업 이미지와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고 판단한 이 회장은 방만한 조직의 슬림화, KTF와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 부정·비리·부패 척결, 통신시장의 리더가 되기 위한 변화 등을 모색했다. 이 같은 구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 당시 위기에 처한 KT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 회장은 KT 사장으로 취임한 그날 전격적으로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아울러 주인의식과 혁신, 효율이라는 경영 3원칙을 통한 전면적인 경영 쇄신 의지를 밝혔다.
가장 먼저 단행한 일은 KTF와의 합병이었다. 사장 취임 후 6일 만에 발표한 결정이었다. 집 전화로 대표되는 유선전화사업을 주축으로 하던 KT가 점점 치열해지는 통신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이동통신사인 KTF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회장이 예견한 ‘유무선 통합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해서도 KTF의 필요성은 절실했다.
이 회장은 ‘불도저’, ‘투사’로 불리기도 한다. 업무추진력이 워낙 빠르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는 식이다.
그 좋은 예가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초고속정보통신사업을 추진한 것과 세계 최초로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을 상용화한 일이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사시킨 이 두 가지 사업은 우리나라를 IT강국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초고속 인터넷과 휴대전화(이동통신)는 우리나라 IT의 힘으로 대표되는 것”이라며 “이 회장이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KTF와 합병 과정은 이 회장이 왜 ‘불도저’, ‘투사’로 불리는지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KT-KTF의 합병은 KT의 오랜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경쟁업체들의 반발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성사시키지 못한 일이었다. 이 회장은 합병의 모든 절차를 단 5개월 만에 이뤄냈다.
KT-KTF 합병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회장은 60여 일 만에 두 기관의 승인을 받아냈다. KT-KTF 합병 승인이 얼마나 빨랐느냐는 SKT(011)와 신세기통신(017)의 합병 승인이 100일이 넘어서야 난 것과 비교하면 잘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정부와 기관에서 이 회장의 ‘편의’를 봐주고 밀어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동안 업계의 반발이 심했던 KT-KTF 합병을 신속하게 처리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2009년 1월 KT의 신임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이례적으로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직접 영상 축사를 보낸 것도 빌미가 됐다. 최 위원장의 영상 축사는 정부에서 이 회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의구심을 들게 하는 데 충분했다. 업계에서는 신속하게 진행된 합병 승인도 그런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아무튼 이 회장은 숙원사업이었던 KTF와 합병에 성공, 2009년 6월1일 통합 KT를 출범을 시킴으로써 흔들리던 KT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 아이폰 도입 전 KT 측에서는 이 회장의 가장 큰 공을 “KT-KTF 합병”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 회장은 2009년 3월 사장에서 ‘회장’으로 올라섰다. 없던 자리를 마련해 올라선 것을 두고 ‘변화와 혁신’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KT 측은 “공식석상에서 사장이라는 직함은 많은 제약이 있다”며 “새로운 KT를 열어가는 데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때부터 이 회장은 ‘그룹경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아이폰 도입 통신 트렌드 주도
애플의 아이패드2가 국내 출시된 지난 4월29일 서울 광화문 KT올레스퀘어에서 사람들이 아이패드2를 체험해보고 있다.
KTF와 합병을 마무리한 뒤 이 회장이 단행한 것은 조직 슬림화와 효율극대화다. 이 회장은 명예퇴직 형식으로 3만7000여 명에 달하는 직원 수를 3만1000여 명으로 확 줄였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감축이었다. 또 직원 3000여 명을 현장으로 배치했다. 이 같은 개편을 통해 방만한 조직을 추스르고 효율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이는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비록 ‘노사합의를 통한 명예퇴직’ 형식을 취하긴 했으나 하루아침에 6000여 명의 직원을 내몬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회장 스스로 여러 차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못 박았던 터였다.
이 회장은 2009년 2월25일 한 기자간담회에서 연간 1000억원씩 5년간 모두 5000억원의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건비 절감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자연 퇴직할 때 그걸 보충하지 않는 방안도 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KT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2009년 말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6000명 남짓 직원을 ‘명퇴’시켰고 일부 임원급에 권고사직을 주문했다.
이 회장이 통합 KT의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내세운 것이 ‘올레(olleh)경영’이다. KT-KTF 합병을 토대로 한 통합 KT의 출범을 ‘제2의 창업’으로 생각하고 발표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다.
KT에 따르는 올레에는 크게 4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우선 헬로(hello)를 거꾸로 한 말로서 ‘역발상의 혁신적인 사고’를 의미한다. ‘미래가 온다’(올來)는 뜻으로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의미한다. 또 올레는 제주도 방언으로 ‘좋은 길’을 뜻한다. 이는 통합 KT가 고객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과 동시에 ‘KT로 올래?’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올레는 ‘환호와 탄성의 감탄사’로서 고객에게 늘 감동을 주어 고객의 환호를 자아내겠다는 KT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따라서 올레경영은 역발상경영, 미래경영, 소통경영, 고객감동 경영을 뜻한다.
‘올레’에 대한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유무선 통합서비스인 ‘쿡앤쇼’와 함께 올레는 단숨에 KT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올레’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아 아예 사명을 KT에서 올레로 바꾸자는 제안도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KT라는 사명을 변경하기는 곤란해 ‘올레 KT’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이 회장은 또 KT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는 이 회장이 KT의 신임사장으로 부임하게 된 배경과 맞닿아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글로벌 IT 컨버전스 그룹
지난 5월30일 이석채 KT 회장(오른쪽)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일본 도쿄 베르사르 시오도메 이벤트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컴퓨팅 공동 서비스를 위해 약 700억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 회장의 결단의 절정은 2009년 11월 ‘아이폰 도입’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시절 이 회장은 애플의 아이폰을 독자적으로 들여와 출시했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고 ‘외화 유출’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이 회장은 특유의 기질을 발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회장의 아이폰 도입은 우리나라 통신시장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이동통신 사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도 확 뒤집었다. SKT에 밀려 만년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던 KT가 통신시장 흐름의 주도권을 쥐는 계기도 됐다.
이는 실적으로 반영됐다. 오랫동안 매출 11조원대를 뛰어넘지 못했단 KT는 2009년 15조9000원을 기록하더니 2010년에는 20조원을 넘어섰다. 2010년에는 영업이익 2조원, 순이익 1조원을 넘어섰다.
“삼성도 하지 못한 일 아닙니까. 아이폰 도입 하나만으로도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웬만한 회사들은 회사에서 지원해가면서까지 아이폰 사용을 권장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제조사가 아닌 탓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스마트 시대를 열었다는 점, 우리나라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그나마 스마트폰 대응에 더 늦지 않게 했다는 점 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KT 경쟁업체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경쟁업체 관계자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KT 내부에서 아이폰 도입에 대한 이 회장의 결단을 얼마나 높이 평가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회장의 최근 관심은 ‘IT 컨버전스 그룹화’에 있다. 이 회장은 클라우드, 콘텐츠, 금융, 자동차, 보안 등의 분야와 KT 본연의 분야인 정보통신기술 분야를 융합해 IT 융합의 트렌드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이른바 ‘컨버전스 리더론’이다. KT가 금호렌터카를 인수하고 BC카드를 인수하기 위해 애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전체 매출 중 비통신 부문 매출 45%까지 확대, 글로벌 사업 강화, 2015년 매출 40조원 달성 등 이 회장이 그룹화를 선언하면서 약속한 이 같은 사업 및 성과들이 모두 IT 컨버전스 그룹의 구상과 함께 나온 것이다.
사실 컨버전스 구상은 이 회장만의 독자적인 발상은 아니다. 하성민 SKT 총괄사장의 구상이나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의 ‘탈통신’, ‘유비쿼터스’ 구상도 결국은 이 회장의 컨버전스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누가 먼저 시장을 선점하고 주도하느냐에 달려 있다.
통신업계에서는 ‘조만간 통신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시대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통신사업은 정부 규제가 날로 강화되고 소비자들의 반발도 잇따르는 사업이다. 실제로 통신비는 틈만 나면 인하 압박을 거세게 받고 있다. 국민정서와 관련된 터라 정치권에서도 들고 일어나기 쉬운 부문이다. 제4이동통신사 출범 등 통신사업 환경도 기존 사업자들에게 점차 불리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통신 3사는 계속 컨버전스, 탈통신, 유비쿼터스 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와 논란도 많아
그러나 이 회장이 민영화 10년을 앞두고 그룹경영을 본격화하겠다며 야심찬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앞길이 그리 순탄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KT체험매장·공연장인 KT올레스퀘어.
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 KT 내부의 ‘개혁 피로감’이 여기저기서 지적되고 있다. KT의 이전 사장이었던 이상철-이용경-남중수 사장은 모두 KT 출신이었다. KT의 첫 관료 출신 CEO로 이 회장은 기업경영에 관료적인 기질을 종종 발휘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강하게 밀어붙일 때 드러나는 관료적 기질로 쌓여가는 임직원들의 불만은 KT 안팎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특히 이 회장은 쿡앤쇼, 아이폰 등 취임 초기 통신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했지만 이후 별다른 아이템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매출 20조원, 영업이익 2조원, 순이익 1조원을 달성한 것도 아이폰 덕분이라는 평이 지배적인 가운데 ‘아이폰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폰이 SKT로도 출시되는 바람에 이제는 애플사와의 공조도 무너진 상태다. 더 이상 아이폰·아이패드를 국내에 독점 공급할 수 없는 상태에서 과연 뾰족한 수가 있느냐가 의문이다.
통신요금 인하 문제에서도 KT는 비판받고 있다. 오히려 SKT의 눈치를 보며 선뜻 요금을 인하하지 않고 있다. 요금 인하에 늘 한 발 앞섰던 SKT에 비해 KT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미온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일각에서는 “SKT와 상황이 다르다는 핑계를 대고 SKT의 눈치를 보는 2등 의식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KT와 이 회장은 또 정치권의 견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비록 민영화가 되긴 했지만 정권의 입김이 여전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KT는 정치권과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오너 없는 대기업의 경영진 횡포를 견제’하기 위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직접적인 타깃이 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이 회장과 KT는 이런저런 구설에 휘말리고 있다. 이른바 조직적으로 ‘직원 퇴출 매뉴얼’을 만들어 직원들을 내몰았다는 논란,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 등 정치권 인사들을 고위 임원으로 영입하는 등 낙하산 인사 논란 등이 그런 것들이다.
연임이 결정되지 않았기에 표면적으로 이 회장의 남은 임기는 6개월뿐이다. 이 회장의 마지막 경영 드라이브에 따라 이 회장 자신은 물론 민영화 10주년을 앞둔 KT의 미래도 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