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이 화두로 떠오른 이후 비즈니스맨들의 아침 풍경이 달라졌다. 일찍 출근해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 늘자 밥, 국, 김치로 대변되던 아침식사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발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2009년)에 따르면 아침식사를 거르는 한국인은 5명 중 1명(21.4%). 이중 20대의 결식률은 46%, 30~40대의 결식률은 22.6%로 조사됐다. 맞벌이 부부와 나홀로족 등 어쩔 수 없이 아침식사를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중심으로 출근길에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풍속이 트렌드화되고 있는 분위기. 덕분에 이들을 잡기 위한 식품업계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출근길이나 사무실에서 빠르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아침식사가 점차 늘 것으로 예상돼 다량의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 CEO들의 아침은 어떨까. 최근 오피니언 리더들의 아침 일정표에는 조찬회가 필수항목으로 자리했다. 각종 경제연구소, 경영대학원, 기업, 정부기관, 언론사 등이 주최하는 조찬모임이 비교적 대규모라면 이너서클(inner circle·내부 정보 공유 모임)들의 비공개 모임도 아침시간을 빌고 있다. 이쯤 되면 아침식사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고 있는 김 대리와 김 대표의 하루, 그들의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서울 신논현역에 위치한 중소무역업체 마케팅팀 대리로 근무하고 있는 김원선 씨는 오전 6시30분 기상해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 신정동에서 직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맞벌이 와이프와 7시에 집을 나서면 보통 8시10~20분 사이에 출근한다. 그 동안 일주일에 두 번, 오전 8시30분에 진행되는 회의에 참석할 때면 아침식사는 거르고 다니기 일쑤였다. 김 대리가 선택한 아침식사 해결책은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훼미리마트’. 처음엔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를 고르다 요즘엔 주 메뉴와 음료가 포함된 ‘아침愛세트’로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 4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신한 ‘아침愛카드’로 결제하면 추가 20%까지 할인받을 수 있어 동료들에게 한턱 쏘기도 부담 없다.
김 대리처럼 하루를 편의점에서 시작하는 직장인이 점차 늘고 있다. 보광훼미리마트가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아침시간대(오전 7~9시)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3%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별로는 도시락 매출이 무려 203.2% 증가하며 세 배 이상 증가했다. 김밥, 삼각김밥, 샌드위치 품목도 아침 대용식으로 인기를 끌며 각각 43.1%, 35.2%, 22.5% 증가했다. 훼미리마트에서 판매되는 소포장 과일류와 샐러드 상품 매출도 각각 66.7%, 59.2%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추세는 특히 서울 강남과 종로 등 사무실 밀집지역과 역세권에서 두드러졌다. 실제로 지하철 9호선 훼미리마트 24개 점포의 아침시간대 매출이 전체매출의 31.2%를 차지하고 있다. 사무실이 밀집된 신논현역점의 경우 아침시간대 먹을거리 상품의 매출이 하루 전체 매출 중 45.7%나 차지하고 있다.
송지호 보광훼미리마트 마케팅 팀장은 “바쁜 아침시간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아침을 해결하려는 고객이 편의점을 많이 찾고 있다”며 “앞으로 아침 대용식으로 인기 있는 도시락을 비롯해 먹을거리 상품을 더욱 다양하게 출시하고 아침愛세트 구성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침식사 시장을 겨냥한 외식 컨버전스
투썸플레이스의 모닝세트
직장인의 아침식사를 겨냥한 마케팅은 비단 편의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외식업계에선 아침식사 시장이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 이상 집 밥에 연연하지 않고 아침을 외식으로 해결하는 풍경이 일상화됐다고 진단한다.
커피숍에 샌드위치가 등장하고 제과전문점에서 커피를, 도넛전문점에서 제과제품을, 버거전문점에서 베이글을 메뉴에 올리는 등 영역이 모호해진 ‘외식 컨버전스’ 현상도 아침식사 시장을 염두에 둔 결과다. 한 외식업체 관계자는 “아침을 사먹는 게 일상인 시대에 아침식사 시장은 여전히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라며 “커피 시장이 5000억원 규모라면 아침식사 시장은 그 두 배인 1조원”이라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외식 컨버전스 현상의 선두주자는 도넛 브랜드 ‘던킨도너츠’다. 지난 2008년부터 잉글리시 머핀 등 핫브레드 메뉴로 아침 시장을 공략한 던킨도너츠는 2009년 220%, 2010년 130%의 매출신장을 기록했다. 최근 커피 매출이 전체의 40%에 달할 만큼 컨버전스 효과로 재미를 본 던킨도너츠는 모닝 세트 메뉴를 제2의 커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던킨에서 아침식사하자’는 콘셉트를 내걸고 출시한 핫브레드는 지속적인 판매 점포 확대를 통해 현재 전매장의 80%에서 판매되고 있다. 베이글과 잉글리시 머핀, 햄, 계란, 치즈 등을 사용해 담백한 맛을 강조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프리미엄 디저트 카페 ‘투썸플레이스’의 모닝세트와 브런치 메뉴 4종도 인기다. 투썸플레이스 측은 “밥 대신 간단한 아침식사를 원하는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샌드위치와 커피가 조합된 모닝세트를 기획했다”며 “모닝세트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올 초 오피스가에 위치한 전략 매장을 중심으로 브런치 메뉴를 출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모든 브런치 메뉴에는 공정무역커피 혹은 우유가 제공된다.
제과브랜드 ‘뚜레쥬르’ 또한 간단한 아침식사를 선호하는 고객을 겨냥해 지난 4월부터 패스트라미 샌드위치, 햄앤치즈 샌드위치, 에그햄 샌드위치 등 샌드위치 3종을 출시하고 커피와 함께 ‘모닝세트’로 판매 중이다. 직장인이 많은 신사역점, 압구정점, 분당 서현점 등에는 샌드위치뿐만 아니라 가벼운 샐러드를 판매해 건강과 미용에 관심이 많은 여성 직장인에게 어필하고 있다.
식품업계에 불고 있는 아침식사 캠페인
최근 직장인에게 인기 있는 아침 대용식 제품의 특징은 첫째,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간편한 휴대성. 둘째, 웰빙 트렌드에 따라 건강에 좋은 원재료 사용. 셋째, 적은 양을 먹어도 충분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든든함. 넷째, 입에 붙는 맛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외식업계가 컨버전스로 아침식사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면 식품업계는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한국식품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침식사가 두뇌 활동을 깨워 일의 능률을 높이고 고등학생의 경우 매일 아침식사를 한 학생이 주 2회 이하 식사한 학생보다 수능성적이 평균 19점 높았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해외에서도 속속 보고되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의대 예방학과의 린다 밴 혼 교수는 아침식사를 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인슐린 저항이나 비만이 35~50% 가량 낮고 심장병 발병 위험도 훨씬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규칙적으로 아침식사를 할 경우 업무나 학업 성취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당뇨병이나 고혈압, 심장병 등의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고 비만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아침식사 시장에서 식품업계의 화두는 ‘웰빙’이다. 더불어 아침식사 캠페인을 진행해 마케팅 요소를 첨가했다. 1992년 ‘양반참치죽’을 출시하며 죽시장을 개척해 온 동원F&B는 2009년부터 ‘양반죽과 함께하는 아침 밥먹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양반죽 무료체험이벤트, 특별기획 할인행사 등을 통해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동원F&B 관계자는 “평소 아침에 한식을 먹는 이들은 한국식 식단이 입에 맞는다”며 “바쁜 아침시간에 한식에 드는 품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즉석죽은 훌륭한 아침 대용식”이라고 소개했다.
20여 년 전 출시됐을 때만 해도 소비자에게 낯설었던 즉석죽은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며 안정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양반죽만 놓고 보면 지난 20년 동안 약 1억5000만 개가 판매되며 1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하루 동안 전 국민이 하루 세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양이다. 현재 편의점 죽 시장 규모는 약 200억원. 동원F&B의 경우 전복죽이 출시되던 2001년 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가공 죽 시장 1위(시장점유율 40%)에 올라선 이후 11년 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현재 시장점유율은 70%, 연평균 10%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부족한 단백질과 칼슘, 미네랄을 보충할 수 있는 콩이 주재료인 두부도 인기다. 여성 직장인에겐 다이어트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CJ프레시안의 ‘모닝두부’는 소포제나 유화제를 첨가하지 않은 건강식으로 두부에 함께 들어있는 오리엔탈소스를 뿌리면 달콤한 푸딩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
풀무원식품의 ‘소이데이’는 1등급 국산콩으로 만든 생식용 두부. 단백질, 칼슘 등 두부가 가진 영양성분은 살리면서 기존 생식두부 제품과 차별되도록 플레인, 고구마, 오곡, 호두 등 네 가지 맛을 가미해 다양한 연령층의 입맛을 고려했다. 두부에 계란을 넣은 ‘계란찜’도 맛이 부드러워 젊은 여성들에게 아침식사 대용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스트리트 푸드의 진화
식품업계는 떡볶이, 호떡 등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도 선보였다. 단순히 아침식사 시장만이 아닌 간식 개념의 접근이다. 위생과 휴대성이 뛰어나 직장인들의 간식거리로 떠오르며 시장 규모를 넓혀가고 있다.
길거리 대표음식인 호떡은 2005년 국내 최초로 삼양사에서 ‘큐원 찰호떡믹스’를 선보인 이래, CJ제일제당, 오뚜기, 대상 등 주요 식품업체에서 연이어 호떡믹스를 출시했다. 국내 떡볶이소스 시장의 규모는 50억원. CJ제일제당, 풀무원, 송학식품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약 1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 아침식사 건강 가이드 Point 5
미국 농업연구청(USDA)의 건강 지침서 ‘푸드가이드피라미드’는 아침식사를 통해 단백질과 비타민, 광물질 등 하루 필수 영양소 25%를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 지방에서 얻는 에너지가 해당 식사의 총 에너지 중 30%를 넘으면 안 된다. 중국의 경우, 식품안전연구소에서 아침식단을 통해 영양의 질을 평가하고 있다. 영양의 균형을 다룬 제안서는 먼저 음식을 4종류로 분류한다. 곡물, 육류, 유제품, 채소와 과일 등이다. 이 4종류에 속하는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면 아침식사의 영양 균형이 충분하다. 3종류만 섭취해도 굿. 하지만 2종류 이하는 불충분한 식사메뉴다.
1. 아침식사는 젊음의 명약
수면 중 분비된 소량의 위산을 아침식사가 중화시킨다. 그러니 아침을 거르면 위점막이 자극을 받아 불편하다. 또한 몸에 아침식사 에너지가 없어 체내에 저장했던 단백질과 당을 사용해 활동해야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덕분에 피부가 건조해지고 주름이 늘어난다.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은 이보다 빨리 늙어갈 확률이 높다.
2. 아침식사는 담결석 예방약
아침식사를 거르면 수면 중 소모한 수분과 영양을 보충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혈액의 점성이 증가하고 중풍, 심근경색 발병 가능성도 높아진다. 공복 상태가 지속되면 체내 콜레스테롤 함량과 농도가 증가해 담결석으로 발전할 수 있다.
3. 아침식사는 다이어트의 첨병
아침에 고열량 음식을 섭취하고 점심과 저녁에 저열량 음식을 섭취하면 체내에 쌓이는 지방이 현저히 줄어든다. 하지만 아침에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면 지방 소모 능력이 떨어지고 점심과 저녁에 폭식하게 된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배우로 활동할 때 아침에 포식하는 셀러브리티로 유명했다.
4. 아침식사는 운전 도우미
인체는 필요로 하는 열량을 당에서 보충한다. 잠에서 깨면 어림잡아 8~10시간 동안 위가 비어있기 때문에 혈당치도 그만큼 낮다.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혈당치는 더 낮아진다. 아침식사를 거르면 혈당 공급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몸이 피곤하고 짜증이 심해진다. 미국의 영양학 관련 연구결과는 이러한 상황에서 운전하는 것은 음주운전만큼이나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5. 아침식사는 점심과 저녁식사보다 중요
아침에 섭취하지 못한 영양분을 점심과 저녁식사로 섭취하긴 어렵다. 아침을 대충 건너뛰면 하루 종일 영양이 부족하다. 심각할 경우 철분 결핍, 빈혈 등의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