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IT업체를 운영 중인 김세정 사장은 지난 5월1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대한상의 CEO간담회’에 참석했다. 오전 7시30분에 조찬을 한 뒤 8시부터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강연을 듣는 자리였다. 주제는 ‘최근의 대내외 경제환경과 정책과제’. 국내에서 국외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는 김 사장에게 국가 정책 담당자의 강연은 사업기획에 분명 도움 되는 자리다.
김 사장은 “한 달에 서너 번 조찬모임에 참석하는데 모르는 분들과 서로 인사하고 소통하며 인맥을 쌓기도 하고, 이번처럼 좋은 강연이 있을 땐 수험생처럼 공부하게 된다”며 “흘러가듯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나중에 정책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조찬간담회 현장에는 각 기업의 임원 이상 CEO급 인사 300여 명이 오전 7시부터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이들이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하고 지인들과 안부를 묻는 동안 헤드테이블에 김중수 총재가 자리하자 조찬이 시작됐다.
조찬모임은 한국적 기업문화
과연 CEO들의 아침상엔 어떤 음식이 오를까. 조찬에 준비된 음식은 우거지 갈비탕과 김치, 명란젓, 전복 무침 등 1식5찬. 30분간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시작된 강연에 앞서 김 총재가 조찬모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유학생활을 합쳐 10여 년의 외국생활과 수많은 외국 출장을 다녔지만 한 조직의 장들이 이렇게 아침부터 모여 간담회에 참석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유럽에선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한국은 이러한 기운이 모여 발전을 거듭하는 것 같습니다.”
CEO급 임원들이 조찬간담회 등 모임에 적극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우선 모임의 멤버들과 인맥을 형성하고 사업과 관련된 의견을 나누는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신사업 진출을 기획 중인 기업이나 중소기업 임원들은 서로 비즈니스 영역을 넓히기 위해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전수혜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은 “CEO에게 시간은 금이다. 아침이 아니면 모르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인맥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며 “여성경제인들도 조찬모임의 이러한 장점을 몸소 체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임에 참석한 김세정 사장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 CEO 코칭 등을 통해 조찬모임, 운동, 세미나 등 다양한 모임에 일부러라도 참석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운동은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편하게 참여해 사람을 깊게 사귈 수 있고, 포럼이나 세미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면 사업에 도움이 되는 오피니언 리더들과 자연스럽게 안면이 생겨 징검다리 형식으로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인맥보다 강연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강연자의 콘텐츠가 확실하다면 대기업 총수들의 참석도 활발해진다. 간담회장에서 만난 박용만 두산 회장은 “한 달에 서너 번 조찬 간담회에 참석한다”며 “김 총재 같은 경우는 한국의 경제나 사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분 아닌가. 사적으로 만나 얘기 나눌 기회가 흔치 않은데 이런 자리에서 정책 운영을 담당하는 분에게 살아있는 얘기도 듣고 질문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이야기했다.
함께 자리한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도 콘텐츠에 집중하는 CEO. 박 대표는 “들을 만한 얘깃거리가 있는 자리만 골라서 다닌다”며 “한 달에 한두 번 찾게 되는데 강연자의 콘텐츠가 확실하다면 꼭 다시 찾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간담회 말미에 김중수 총재는 직접 질의 응답시간을 진행하며 약 20여 분 간 각 기업 CEO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예를 들어 금리조정에 민감한 기업체 CEO에게 이러한 질의응답 시간은 사업 구상에 더없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호텔업계는 아침이 성수기
미국발 금융위기 등으로 움츠러들었던 조찬시장이 다시금 활기를 띠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대규모 조찬간담회 외에 대여섯 멤버가 모이는 비공개 소규모 모임을 비롯해 동창회, 친목모임 등도 아침시간을 빌어 진행되곤 한다. 기업 임원진들의 아침 행보가 분주해지자 직장인들 사이에선 “집에서 아침 먹는 게으른 직장인은 별을 달 수 없다”는 농이 현실처럼 회자되곤 한다.
이러한 조찬열풍에 대해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지속되는 물가상승이 비즈니스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 격”이라고 전했다. 점심이나 저녁 미팅보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맑은 정신으로 모임을 갖고 회의를 진행할 수 있어 환영받는 추세라는 것.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주요 호텔의 1분기 조찬행사 예약 건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10~20% 늘었다.
서울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의 조찬모임은 올 4월 예약률이 지난해 동기 대비 33% 상승했다. 가장 많이 팔린 조찬 메뉴는 아메리칸 스타일.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세미나를 시작하거나 비즈니스 미팅에 들어갈 수 있어 환영받는 메뉴다. 리츠칼튼 서울의 경우에도 지난해 3월 동기대비 조찬모임 예약이 약 10%가량 늘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우거지 갈비탕. 일식당의 소규모 조찬모임도 약 10% 상승했다.
파크 하얏트는 주로 공기업과 IT기업 CEO 등 임원급 인사가 자주 찾는다. 전체 비즈니스 미팅 중 조찬 미팅이 약 20%를 차지한다. 웰빙 음식들로만 구성된 ‘헬시 브랙퍼스트(Healthy Breakfast)’가 가장 인기 있는 메뉴. 곡물, 채소 등을 100% 그대로 갈아 만든 건강 주스, 홈메이드 요거트, 유기농 샐러드, 홈메이드 브래드, 즉석에서 만드는 에그 오믈렛 등이 상에 오른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롯데호텔 서울의 경우 이탈리안 레스토랑&바 ‘페닌슐라’와 뷔페 레스토랑 ‘라세느’의 조찬이 인기다. 특히 라세느의 총 100여 가지 메뉴로 구성된 조찬 뷔페의 경우 비즈니스 미팅 외에 가족 조찬모임 등 캐주얼한 모임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애초 조찬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없었던 플라자호텔은 조찬모임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올 초부터 일식당 ‘무라사키’에서 조찬 영업을 시작했다. 서울시청 주변 젊은 여성 직장인 등 커리어우먼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신라의 나도연 주임은 “아침식사 메뉴가 다양하고 모임 공간이 풍부한 곳 중 호텔만한 곳이 없다”며 “최근엔 호텔신라의 ‘더 파크 뷰’ 등 뷔페식당의 조식 시간을 이용한 비즈니스 미팅이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공간이 분할된 뷔페식당이 인기”라고 전했다. 조찬모임이 늘자 호텔의 조식 시간도 보통 오전 7시에서 6시30분으로 앞당겨졌다. 호텔신라의 더 파크 뷰는 오전 5시30분부터 손님을 받는다.
■ 일반인도 참석할 수 있는 조찬세미나SERICEO 조찬세미나 2002년 4월 시작됐다. 국내 최대 규모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운영하는 ‘SERICEO’ 회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다. 매회 800여 명의 대기업 임원과 정부관료, 고위 공무원 등이 참가한다. 참가비 연회원 개인 150만원(VAT별도) 법인 150만원(5명 이상 할인 120만원) / 조찬모임 참가비 없음. 문의 02-3780-8127 홈페이지 www.sericeo.org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CEO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일반인도 참석할 수 있다. 회원 중에는 공통관심사를 갖고 있는 이들이 소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한다. 참석은 회원 우선으로 진행된다. 참가비 연회원 개인 100만원 법인 300만원(조찬모임 참가비 별도, 회원 4만원 / 비회원 8만원) 문의 02-2203-3500 홈페이지 www.khdi.or.kr
21C리더스모닝포럼 한국능률협회 주최로 2006년 10월부터 진행되고 있다. 기업 임원급을 대상으로 열린다. 참석자 규모는 500명 선. 차세대 리더의 리더십 등 전문지식을 전달한다. 참가비 능률협회 회원사의 경우 2명 무료 초청 가능 (정회원 기준, 추가 1명당 10만원 / 비회원사 20만원) 문의 02-3274-9200 홈페이지 www.kma.or.kr
[안재형 기자 ssalo@mk.co.kr│사진 = 정기택 기자·매경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