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텔 산업은 단순히 여행객이 머무는 공간을 넘어, 침체된 구도심을 되살리고 관광지의 정체성을 바꾸는 강력한 도시 재생의 촉매제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의 호텔은 단순 숙박 제공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호텔을 활용해 ‘사람이 머무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부유층 유입과 도시 리브랜딩의 앵커 역할을 하는 최고급 럭셔리 호텔은 자산가들을 유입시키고 인근 상권의 소비 수준을 통째로 끌어올리는 이른바 ‘럭셔리 효과(Luxury Effect)’를 증명하고 있다. 영국 런던 ‘배터시 발전소(Battesea Power Station) 아트오텔(art’otel)이 대표적 사례다. 1930년대 지어진 배터시 화력발전소는 한때 런던 주요 건물에 공급되는 전력의 5분의 1을 담당했다. 1983년 비용 문제로 가동을 멈춘 뒤 방치되다가 2012년 대대적 개발이 시작됐다. 영국 정부는 발전소의 역사적 의미를 존중해 외관은 그대로 둔 채 내부만 6층짜리 복합공간으로 개조했다. 10년간 90억 파운드(약 16조원)를 투입하고, 파리 에펠탑보다 세 배 넘는 강철을 사용했다. 재건축이 마무리되고 대중에게 공개된 건 2022년. 개관 이후 약 2년간 2200만 명 넘는 방문객이 배터시 발전소를 찾았고, 지난해 여름(7~8월) 발전소에 입점한 상점들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특히 이곳에 위치한 아트오텔과 복합문화공간 덕택에 이 일대는 글로벌 부유층이 모여드는 신흥 부촌이자 문화 중심지로 완전히 리브랜딩되었다.
미국 뉴욕 ‘아만 뉴욕(Aman New York)’ 역시 비슷한 사례다.
맨해튼의 역사적 건물을 초럭셔리 웰니스 호텔로 리모델링했다. 1922년 완공된 크라운빌딩이 전신이다. 블라디슬라프 도로닌 아만 뉴욕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개발사인 오코그룹이 2022년 사들여 호텔로 탈바꿈시켰다.
아만 뉴욕 호텔로 변모한 뒤 현재 건물에는 아파트 22가구와 더불어 호텔 객실 80여 실, 스파, 피트니스 센터, 식당 등이 있다. 거주자는 전용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3개의 식당과 와인룸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또 입주자에게는 경비는 물론 자녀 돌봄, 칵테일 파티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단순한 숙박을 넘어 전 세계 고자산가들을 위한 프라이빗 커뮤니티 거점을 형성하며, 미드타운 상권에 새로운 프리미엄 경제 활력을 불어넣었다.
고령화와 지방 소멸 위기를 겪는 지역에서는 빈집을 활용해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묶는 ‘분산형 호텔’ 모델도 눈에 띈다. 일본 오사카 후세 지역의 세카이 호텔이 대표적이다. 후세는 과거 쇼와 시대(1926~1989년) 때부터 번성했던 도시다. 이 지역은 저출생·고령화 영향에 후세의 기업들이 줄도산하며 침체기를 맞았다. 여기에 전철로 10분 정도면 도착하는 오사카시 난바 지역에 대형 쇼핑몰이 줄줄이 생겨나며 후세는 더 위축됐다. 상점가 내 700여 곳의 가게 중 반절, 350곳이 문을 닫는 지경에 다다랐다. 이내 상점가는 문 닫은 가게들의 셔터가 줄줄이 내려가 있는 거리를 뜻하는 이른바 ‘샷다도리(シャッタ通り)’라는 오명을 샀다.
하지만 후세의 역사에 주목한 한 부동산 회사가 이 지역에 호텔을 지으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2018년 9월 25일 ‘세카이 호텔’이 문을 열었다. 곳곳에 방치된 건물 10채를 사들여 객실 30곳을 만들었다. 폐점한 지물포·과자·마사지·카페 등 가게를 사들이면서 되도록 외관은 유지한 채 내부를 꾸몄다. 고풍스러운 거리 느낌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프런트를 나와 객실로 가는 길은 호텔 내부 엘리베이터도, 복도도 아니다. 상점가 골목길을 지나 배정받은 객실로 가는 방법이다. 호텔 내 사우나·레스토랑도 없다. 이용을 원하는 손님은 ‘패스권’을 들고 호텔과 협약을 맺은 동네 목욕탕과 식당 등을 방문하면 되는 식이다. 무료·할인 등 혜택을 받는다. 호텔이 화제가 되면서 후세 현지를 찾는 관광객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역사적 골칫거리를 관광 핵심 기지로 구축하고 과거의 산업 유산이나 역사적 건물을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의 호텔로 재생한 사례들은 도시의 헤리티지를 극대화한다. 싱가포르 ‘더 풀러턴 호텔(The Fullerton Hotel)은 과거 총독부 우체국 건물을 최고급 호텔로 개조했다. 싱가포르 금융지구의 중심에서 역사적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국가대표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로이드 호텔(Lloyd Hotel) 역시 이민자 숙소, 교도소 등으로 쓰이며 어두운 역사를 간직한 건물을 아티스트 호텔로 재생했다. 독창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나며 낙후되었던 동부 항구 지역의 문화적 리브랜딩을 견인한 셈이다.
이처럼 최근 글로벌 호텔 트렌드 역시 단순한 친환경을 넘어 지역 사회를 복원하는 ‘재생 관광(Regenerative Tourism)’에 집중하고 있다. 일방적인 개발로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려면, 호텔이 들어서는 기획 단계부터 지역 자산과의 유기적 연결망을 짜는 정교한 로컬 브랜딩 전략이 핵심이다.
이미화 오사카 세이케이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사실상 노인들만 남은 동네를 리뉴얼해 젊은 사람이 찾아오게 하고 경제가 순환하게끔 만든 시스템”이라며 “한국에서도 ‘일상+관광’이라는 힌트를 응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 호텔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의 도시 재생이 벽화를 그리고 도로를 정비하는 ‘보여주기식 하드웨어’에 치중했다면, 현대의 호텔 결합형 재생은 ‘생활 인구가 실제로 머무는 소프트웨어 경제’를 만든다”면서 “호텔이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활력을 불어넣는 진정한 앵커가 되려면, 외지 자본과 지역 자산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