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 가입 화면에서 동물 알이 부화하고, 은행 앱에서 매일 퀴즈를 풀면 포인트가 쌓인다. 빙고판 미션을 채우면 금리가 올라가고, K리그 경기 결과를 맞히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가 적립된다.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어 식물에 물을 주면 경품 룰렛 기회가 생긴다. 과거 일부 재테크 앱의 전유물이었던 이 구조가 지금은 인터넷은행은 물론 시중은행에도 확산되고 있다.
잼테크는 단순히 새로운 금융 상품의 등장이 아니다. 고물가·저금리 환경 속에서 소비자를 ‘짠테크(짠돌이+재테크)’에 익숙하게 만드는데 이어, 이제는 절약과 저축 행위 자체에 재미라는 요소를 결합해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캐릭터, 미션, 확률, 리더보드 등 게임 속 요소가 금융상품과 앱 안으로 파고들면서 수익보다 습관과 경험에 방점을 찍은 소액 재테크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용자들의 목적은 큰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매일 앱을 열게 만들고, 저축을 끊지 못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이 시장의 설계 원리다. 이 같은 흐름은 저성장·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의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금융사 입장에서도 이용자가 앱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금융상품 노출 빈도가 높아지고 교차판매 기회가 늘어나는 구조다. 상품과 앱의 게임화가 단순한 마케팅 전술을 넘어 상품 설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배경이다.
특히 잼테크는 금융사의 모바일 전략 변화와 맞물려 있다. 과거 은행 앱은 송금, 조회, 대출 신청처럼 필요할 때만 여는 도구에 가까웠지만 최근에는 이용자가 특별한 용무가 없어도 매일 접속하도록 만드는 생활 플랫폼 성격이 강해졌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앱 방문 빈도가 높아질수록 예·적금, 카드, 대출, 투자 상품을 노출할 기회가 늘어난다. 이용자가 퀴즈를 풀고 포인트를 받는 짧은 행동도 장기적으로는 고객 접점 확대와 데이터 축적이라는 효과로 이어진다. 잼테크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금융 플랫폼 경쟁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이유다.
대표적인 건 게임형 적금 상품이다. 토스뱅크 ‘키워봐요 적금’은 가입 시 동물 알이 랜덤 지급되고 다음 날 부화해 거북이·문어·유령·망아지 네 종 중 하나를 6개월간 키우는 방식이다. 매주 자동이체 성공마다 캐릭터가 10단계에 걸쳐 성장하고, 25번 연속 성공하면 ‘전설의 동물’로 진화한다. 한 번이라도 자동이체가 끊기면 최고금리를 받지 못하는 미션형 구조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실패하면 손해’라는 긴장감이 저축 습관을 강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상품 이용자들은 “동물 성장 스토리의 재미와 귀여움 때문에 만기 후에도 계속 재가입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금리나 조건이 아닌 캐릭터 서사가 재가입을 유도하는 핵심 동인이 됐다는 점에서 이 상품은 기존 금융상품의 문법을 바꾼 사례로도 평가된다. 이용자들이 자신의 동물 캐릭터를 SNS에 인증하고 지인에게 공유하면서 상품이 광고 없이도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타고 확산됐다.
토스뱅크는 동물 캐릭터 4종의 실물 모찌 인형을 선착순 1500명에게 증정하는 인스타그램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금융사가 캐릭터 굿즈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드문 사례다.
같은 토스뱅크의 ‘굴비 적금’은 결이 다르다.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저축하고 6개월 만기만 지키면 최고금리를 받을 수 있고, 한 달 최대 30만원까지 납입 가능하다. 복잡한 미션 없이 만기만 지키면 되는 단순한 구조지만, ‘굴비’라는 친숙하고 개성 있는 소재를 상품명에 쓴 감각적인 네이밍이 이용자에게 고유명사처럼 각인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키워봐요 적금이 긴장감과 성취감을 즐기는 이용자를 겨냥했다면 굴비 적금은 부담 없이 저축 습관을 들이고 싶은 이용자를 공략한 셈이다.
두 상품은 이름도 금리 구조도 다르지만, 저축 행위에 이야기와 게임적 재미를 입혀 이용자를 끌어당긴다는 점에서 맥락이 같다.
또 다른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의 ‘26주적금’은 카카오프렌즈 캐릭터와 함께 26주 동안 납입액을 매주 자동 증액하는 구조로, 자동이체 연속 성공 시 우대금리가 적용된다. 첫 주에는 소액으로 시작해 점차 납입액이 늘어나는 설계로, 이용자가 어느새 목돈이 모인 경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처음부터 큰돈을 모은다는 부담감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캐릭터와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 26주라는 기간을 버텨내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토스뱅크의 상품과 같이 잼테크의 핵심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저축을 하나의 ‘도전’으로 재정의하면서 기존 금융상품이 제공하지 못했던 감성적 유인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인터넷은행들이 이 흐름을 먼저 확산시킨 배경에는 모바일 전용 금융사의 특성이 있다. 점포 기반 영업보다 앱 안에서 고객을 붙잡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용자에게 적금 가입은 더 이상 금리표를 비교해 선택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납입 성공여부를 확인하고, 캐릭터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만기까지 도달했다는 성취감을 얻는 일련의 경험이 상품 경쟁력의 일부가 됐다. 이 과정에서 금융상품은 숫자 중심의 계약에서 참여형 콘텐츠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시중은행도 게임 요소를 상품 설계 자체에 끌어들이고 있다. 우리은행이 올해 3월 출시한 ‘우리 빙고 적금’은 빙고 게임 구조를 적금 안에 그대로 이식한 상품이다. 가입하면 3×3, 총 9칸짜리 빙고판이 제공되고 각 칸은 일상 금융 거래와 연결된 미션으로 채워진다. 미션은 ‘반가워요’, ‘소비생활’, ‘소득입금’, ‘생활요금 납부’, ‘생일 축하’, ‘해외여행’, ‘소중한 나의 집’, ‘자산관리 첫걸음’, ‘또만나요 우리’ 등 9개 카테고리로 이뤄진다. 금융 거래를 미션으로 전환해 이용자가 빙고를 완성하는 재미를 느끼도록 설계한 것으로 큰 노력 없이도 달성 가능한 미션들로 쉽게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급여 이체, 카드 결제, 생활요금 납부처럼 월 단위로 반복되는 금융 행동들이 미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이용자가 일상을 그대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빙고판이채워지는 구조다.
우대금리는 빙고 줄 수에 따라 달라진다.
1줄 완성 시 연 1.0%포인트, 2줄 연 2.5%포인트, 3줄 이상 연 4.5%포인트, 전체 완성 시 연 7.5%포인트가 기본금리 연 2.5%에 더해져 최고 연 10%에 달한다. 12개월 만기 자유 적립식에 월 납입 한도는 50만원이다. 우리은행은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출시 당시 선착순 4000명에게 올리브영·다이소 쿠폰(각 3000원 상당)을 지급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재미 요소를 첨가하는 이 같은 흐름은 개별 상품을 넘어 은행 앱 전체 설계로 번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KB스타뱅킹에 ‘매일 포인트 받기’ 서비스를 출시했다. 만 14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페이지 접속만으로 포인트가 적립되는 ‘단순 참여형’과 SNS 구독·카카오톡 채널 추가 등을 완료해야 지급되는 ‘미션 달성형’ 두 가지 유형으로 구성된다. 출석체크와 미션 수행으로 받은 물과 영양제로 앱 내 식물을 키워 레벨 7이 되면 경품 룰렛을 돌릴 수 있는 ‘머니트리’ 기능도 함께 운영된다. 앱에 접속할 이유를 매일 만들어 이용자가 자연스럽게 금융 상품에 노출되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스타퀴즈, 매일걷기, 대박 터트리기 등 다수 콘텐츠를 현재도 운영중이며 적립된 스타포인트는 현금처럼 쓸 수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자 KB스타뱅킹 내 혜택 서비스를 확대했다”며 “앱 이용으로 더 많은 혜택과 즐거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한금융그룹의 통합 앱 ‘신한 슈퍼SOL’은 야구·상식 퀴즈를 결합한 ‘쏠퀴즈’를 일일 미션으로 운영한다. 쏠, 몰리, 플리, 레이 등 신한 캐릭터를 골라 미션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숙제처럼 하는 앱테크가 아닌 재미있는 미션을 표방한다. 적립된 마이신한포인트는 현금 전환이 가능하다. 신한은행·카드·증권·보험·저축은행 5개 그룹사 서비스를 한 앱에 묶어놓은 구조상, 퀴즈 하나를 풀기 위해 접속한 이용자가 금융상품까지 자연스럽게 둘러보도록 유도하는 교차판매 효과도 기대된다.
신한이 KBO 공식 스폰서라는 점을 활용해 야구 퀴즈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포츠 팬덤을 금융 앱 일상 방문으로 연결하는 전략은 경쟁 은행들이 공통적으로 구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나은행은 K리그 공식 스폰서라는 지위를 활용해 앱 안에 축구와 관련한 재미 요소를 추가했다. 올 2월 리뉴얼해 열린 하나원큐 앱 ‘축구 Play’ 플랫폼에서는 매일 자정 K리그 퀴즈가 출제되고 정답을 맞히면 ‘원큐볼’이 적립된다. 원큐볼은 1대1 비율로 하나머니로 전환 가능해 카드 결제 등에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퀴즈 난이도를 낮게 설정해 축구를 잘 모르는 이용자도 간단한 검색만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K리그 29개 구단 콘텐츠를 앱에 담아 스포츠 팬의 일상 방문 동기를 금융 앱에 심어두는 방식으로 스폰서십과 고객 확보를 동시에 노린 설계다.
하나은행은 또 농구 팬을 위한 농구 특화 콘텐츠 ‘하나원큐 농구 Play’도 운영 중이다. 하나원큐 농구Play에는 ▲버저비터 게임 성공 시 금리쿠폰·굿즈 응모권·원큐볼 지급 ▲여자프로농구·국가대표 경기 티켓 예매 ▲경기일정·하이라이트 제공 ▲홈경기 초대 이벤트 등 다양한 혜택이 담겼다.
수익보다 재미와 습관에 방점을 찍은 잼테크 열풍은 고물가·저성장 시대를 관통하는 소비자 심리를 반영한 현상이다. 더 이상 금리만으로 이용자를 붙잡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은행들은 재미 요소를 추가해 고객 잡기에 나섰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핀테크를 넘어 국내 주요 시중은행이 앞다퉈 게임 요소를 상품과 앱에 도입하면서 금융 앱과 일상의 경계가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잼테크 상품의 실익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고금리나 경품 혜택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실제 이자는 납입 한도와 우대조건에 따라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포인트 역시 현금처럼 쓸 수 있더라도 적립 단위가 작고, 일부 미션은 광고성 채널 추가나 마케팅 동의와 연결돼 있다. 금융권이 재미 요소를 앞세우는 만큼 소비자 입장에서는 재미와 혜택을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 잼테크가 ‘큰 수익을 내는 재테크’라기보다 금융 습관을 유지하게 만드는 보조 장치에 가깝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공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