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마케팅의 승부처는 질 좋은 하이엔드 제품이 아니라 고객의 시간이 됐다. 브랜드가 마련한 공간에 VIP가 얼마나 오래, 깊이 있게 머무느냐가 관건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한 수입 가구 브랜드의 지점장은 “최근 하이엔드 쇼룸들의 형태가 거실, 주방, 심지어 침실로 진화하고 있는 이유”라며 “고객이 그 공간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투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집처럼 꾸미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현시점의 VIP들은 과시적인 소비보다 나를 위한 맞춤형, 오직 나만 갖고 있는 무엇에 집중한다”며 “공간이 그들만의 은밀한 커뮤니티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자동차 브랜드 중 럭셔리카를 꼽으라면 어떤 브랜드가 수위를 차지할까. ‘롤스로이스’와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그런 의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럭셔리 브랜드다. 이 두 브랜드 모두 서울에 고객을 위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판매량이 높다는 방증이다.
우선 롤스로이스모터카는 2024년 11월 서울 송파구 잠실 시그니엘 서울 호텔에 ‘프라이빗 오피스 서울’을 개관했다. 영국 굿우드 본사인 ‘홈 오브 롤스로이스’의 프라이빗 오피스를 제외하고 두바이, 상하이, 뉴욕에 이어 네 번째로 마련된 오피스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선 처음 선보이는 비스포크(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맞춤으로 생산) 공간이다. 이곳에는 영국 본사에서 파견된 비스포크 디자이너와 고객 경험 매니저가 상주하며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한다. 차를 의뢰한 고객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롤스로이스를 구상하는 데 적극 참여한다. 초기 디자인이 확정된 후에도 이곳을 통해 영국 굿우드 장인들과 소통하며 전체 여정을 함께할 수 있다. 일례로 롤스로이스의 일반 매장에서 외장 컬러를 주문하면 4만 4000개의 조합이 가능한데, 이곳에선 어떤 제한도 없다. 한옥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프라이빗 오피스 서울은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된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주문하는 차량 가격은 평균 10억원 이상. 아이들을 동반하는 이들을 위해 키즈룸도 마련돼 있다. 롤스로이스 오너들은 같은 브랜드를 소유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일례로 차량 구매 고객에게 제공되는 모바일앱 ‘위스퍼(Whispers)’를 통해 다른 오너들과 관심사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다. 롤스로이스 측은 이들을 위한 오프라인 모임을 주선하기도 한다. 영국 굿우드 본사에서의 파티나 행사는 기본, 뉴욕 필하모닉의 비공개 공연이나 아트 바젤 VIP 프리뷰 초대 등 특별한 순간이 제공된다.
지난해 7월 서울 압구정동에 개관한 ‘마이바흐 브랜드센터 서울’은 세계 최초의 마이바흐 고객 전용 전시장이자 서비스센터다. 압구정 한복판, 예전 SM엔터테인먼트 사옥이 있던 자리에 마련됐다. 다니엘 레스코우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AG의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총괄은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이곳은 패션업계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견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오프라인 리테일 공간”이라며 “건축적 미학, 고품격 고객 서비스, 고급스러운 디자인은 마이바흐 브랜드의 가치와 위상을 완벽하게 구현한다”고 소개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공식 딜러 HS효성더클래스가 운영하는 이곳은 지상 4층, 지하 1층, 연면적 2795㎡ 규모의 독립형 5층 단독 건물로, 외관은 한복과 한옥에서 영감을 받았다. 주름진 외벽은 한복 치맛자락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우아하게 형상화됐고, 코너를 향해 역동적으로 솟아오르는 건물 오른쪽 기둥의 지붕선은 한옥의 처마를 연상시킨다. 내부에는 흡사 대성당과 같은 인테리어가 고객을 맞이한다. 1층에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차량 전용 전시 공간과 서비스 예약이 가능한 고객 라운지가, 2층에는 차량 인도를 위한 전용 핸드오버 존, 3층에는 고객이 차량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프라이빗 살롱 프리베(Salon Prive0 e)와 맞춤형 개인화를 위한 마누팍투어(MANUFAKTUR) 스튜디오가 자리했다. 3층의 중앙에는 도심 속 오아시스 콘셉트의 정원이 조성돼 바리스타가 준비한 스페셜티 커피가 제공된다. 물론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는 공간이다. 방문 시 전담 세일즈 컨설턴트와 제품 전문가가 배정돼 고객을 맞는다. 방문 고객에겐 전용 멤버십 서비스, 전문 발레파킹, 시그니처 F&B 서비스, 마이바흐 오너만을 위한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국내 최초의 프라이빗 제트 플랫폼 ‘본에어(VONAER)’가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 전용 라운지에선 멤버십 가입과 상담이 진행된다. 본에어 측은 “최근 전용기는 대기업 총수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시간을 핵심 자산으로 여기는 3040 신흥 부유층의 필수 비즈니스 도구로 재평가받고 있다”며 “기존의 주요 고객층인 법인 고객과 엔터테인먼트사를 중심으로, 신흥 자산가와 파워 인플루언서 등 ‘영앤리치’ 고객들의 직접 방문도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용기 이동 시 빈 구간이 생길 때 회원들에게 특가 판매가 진행되기도 하는데, 최근 공개된 서울과 베이징 노선 걸프스트림 G550(15명) 기기 전체의 요금은 2만6300달러(약 3860만원)였다. 전용기 이용 고객이 명품 브랜드 고객보다 구매력이 높다고 인정받는 이유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라운지는 안락한 거실 혹은 오피스가 연상된다. 방문 고객에겐 최근 웰컴 드링크로 선정된 ‘페리에 주에’ 샴페인을 비롯해 개인 취향에 맞춘 싱글몰트 위스키, 커피, 초콜릿 등이 제공된다. 본에어 측은 이러한 접객 서비스가 단순한 의전을 넘어선 ‘멤버십 온보딩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라운지에서 파악된 고객의 식음료(F&B) 취향 데이터는 실제 제트기 탑승 시 기내식과 웰컴 드링크 구성에 반영돼 지상에서부터 최적의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이미현 본에어 사장은 “접근성이 뛰어난 청담동에 거점을 마련해 고객과의 접점을 넓혔다”며 “시간을 통해 새로운 성공 기회를 창출하려는 자산가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라운지 예약은 전화와 네이버 예약을 통 본에어 통해 가능하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운영하는 ‘란스미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애용하는 남성복 브랜드다. 2015년 10월에 서울 이태원에 개장한 ‘란스미어 한남’은 전 세계의 프레스티지 브랜드와 남성복 트렌드를 제시하는 공간이다. 전체 530여㎡에 VVIP고객을 위한 남성복 콘텐츠를 구성해 국내 최대 남성복 전문 편집 매장으로 알려졌다. 이곳엔 특히 국내 최고 수준의 장인(마스터 테일러)이 상주하며 고객 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최상급 상품들을 생산한다. 세계 3대 남성복 중 키톤, 체사레 아톨리니의 원단을 갖추고 있어 이탈리아 현지에 가지 않아도 이들 원단을 바탕으로 맞춤복을 제작할 수 있다. 매년 양사의 현지 테일러와 세일즈 디렉터가 방문해 트렁크쇼도 진행된다. ‘한남 아뜰리에(Hannam Atelier)’라 불리기도 하는 이 공간에선 오로지 고객 단 한명을 위한 차별화된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런 이유로 연간 50벌의 맞춤복만 한정 제작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의류 외에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용품, 가구 등을 맞춤 제작하는 서비스도 제공된다. 에르메스 가죽 납품 브랜드인 죠반냐라의 MTO(Made-To-Order)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5호 (2026년 2월) 기사입니다]